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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댈 데 없어 기차 놓쳤다"... 대책 없는 오송역 '주차 몸살'

입력
2023.07.04 04:30
수정
2023.07.04 0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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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송역 이용객 급증... 지난해 '1000만' 육박
주차장 2000면 불구, 주변도로 '불법주차장'
"공항도 아닌데 출발 30분 전에는 도착해야"
버스노선·주차장 확대 필요하지만... '소극적'
세종시 "세종KTX역 신설시 문제 해소 가능"

1일 오후 충북 청주시 오송역 인근에 불법 주차된 차량들이 늘어서 있다. 주차장 빈자리를 찾아 헤매다 기차 시간이 다 돼 '불가피'하게 불법 주차를 한 경우도 적지 않다. 독자 제공

1일 오후 충북 청주시 오송역 인근에 불법 주차된 차량들이 늘어서 있다. 주차장 빈자리를 찾아 헤매다 기차 시간이 다 돼 '불가피'하게 불법 주차를 한 경우도 적지 않다. 독자 제공

주말이던 1일 오송역에서 KTX를 타고 서울 결혼식장으로 가려던 세종시민 권모(38)씨는 가까스로 기차에 몸을 실었다. 기차에 오르고 보니 비 오듯 쏟아진 땀 때문에 차려입은 옷은 엉망이 돼 있었다. 권씨는 “주차장 빈자리가 없어 역에서 600m가량 떨어진 마을 도로에다 어쩔 수 없이 ‘불법’으로 차를 대고서야 뛰어올 수 있었다”며 “주차장 부족 문제가 어제오늘 일도 아닌데, 더 큰 문제는 이 문제에 아무도 신경을 안 쓰는 데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연 1000만명 이용 역, 주차 공간은 2000대

충북 청주시는 물론 중앙 부처와 국가 기관들이 밀집한 세종시의 관문 역할을 하는 오송역이 ‘주차’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대중교통이 촘촘하지 않은 지역 특성상 많은 이용객이 자가용 차량을 이용하는 데서 비롯된 문제지만, 시설 관리를 맡은 국토교통부(철도공단)나 세종시, 청주시는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지난 4월 공정거래위원회가 나서서 주차비를 담합한 주차장 업체를 적발해 과징금을 부과한 게 전부다.

한국철도공단 관계자는 3일 “주차장을 늘리기 위해선 부지가 필요한데, 오송역에는 남은 철도 부지가 없다”며 “(문제 해결을 위한) 다른 대책도 현재로선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현재 오송역은 2,067대의 차량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6개의 주차장(A~E, K)을 갖추고 있다. A주차장(346면), B(437), C(88), D(480), E(470), K(2436) 등이다. 이 중 A, C 주차장은 코레일네트웍스가 운영하고, 나머지는 개인 등 민간이 운영한다.

오송역에선 주차장 부족으로 불법주차 차량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기차 출발 시간에 임박해 역에 도착한 이들은 사진처럼 역에서 가까운 인도 위에 주차를 한 경우도 더러 목격된다. 지난해 12월 촬영됐다. 정민승 기자

오송역에선 주차장 부족으로 불법주차 차량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기차 출발 시간에 임박해 역에 도착한 이들은 사진처럼 역에서 가까운 인도 위에 주차를 한 경우도 더러 목격된다. 지난해 12월 촬영됐다. 정민승 기자

공단 관계자는 “주차타워를 설치해 공급을 늘리는 방법이 있기는 하지만, 공단 업무 영역은 아니다”며 “주차타워 건립 등 주차면 추가 공급은 국토부와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토부는 “주차장 공급이 수요 대비 부족하진 않지만, 장기주차자 등 당초 계획에선 예상하지 못한 부분이 있는 건 사실”이라며 “인근 지자체에 대중교통을 확대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송역 이용객은 개통 이듬해인 2012년 150만 명(승하차)에서 호남고속철이 개통하던 2015년 410만 명으로 급증했고, 수서고속철(SRT)이 개통한 2016년 500만 명을 돌파한 뒤 지난해에는 KTX 704만 명, SRT 217만 명 등 이용객이 1,000만 명에 근접한다

인근 주민 민원에…지자체 “단속 한계”

주차장 부족 문제는 지난해 코로나19 방역이 크게 완화하고, 정부 기관 세종 이전 등 세종과 충청권 인구가 늘면서 더 심해지는 분위기다. 오송역 인근 불법 주차가 늘고 있고, 이에 따라 지역 주민 불편도 확대되는 실정이다.

충북 청주시 흥덕구청 관계자는 “마을 길 양쪽으로 불법 주차가 늘면서 주민들 민원도 빗발치고 있다”며 “과태료를 부과하고 있지만 단속만으로는 한계가 있어 불법 주정차에 따른 문제점 등을 알리는 데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흥덕구는 2015년부터 본격적으로 불법 주정차 차량을 단속했지만, 늘어나는 불법 주차 차량을 막지는 못하고 있다.

실제 오송역 주변에선 심심찮게 불법주차 차량을 볼 수 있다. 역에서 거리가 떨어진 길가에 주차된 차량은 물론, 인도 위에 세워진 차량도 있다. 오송역 관계자는 “비행기를 타는 것도 아닌데, 주차 문제 때문에 ‘30분 전 도착’이 불문율이 된 지 오래됐고, 그렇게 해도 빈자리를 못 찾아 차를 버리다시피 하고 열차에 오른 사람들의 차”라고 말했다.

불법 주차된 차량 때문에 오송역 주변 도로가 막히는 일이 다반사다. 충북 청주시에서 내건 계도 현수막 너머로 차량으로 꽉 찬 주차장이 보인다. 독자 제공

불법 주차된 차량 때문에 오송역 주변 도로가 막히는 일이 다반사다. 충북 청주시에서 내건 계도 현수막 너머로 차량으로 꽉 찬 주차장이 보인다. 독자 제공

청주의 한 제조업체 대표 이모(61)씨는 “지난달 서울역 근처에서 계약 관련 약속이 있었는데 빈 주차 공간 찾기가 쉽지 않다는 얘길 들었던 터라 20분 전에 오송역에 도착했고, 역 주변을 네 바퀴나 돌았지만 빈자리를 찾을 수 없어 결국 기차를 놓쳤다”고 말했다.

“오송역 가는 버스 있지만… 아직 불편”

사실 오송역 주차 부족 문제는 세종시나 청주시에서 접근하는 대중교통이 잘돼 있다면 생기지 않았을 문제다. 오송역이 행정구역상으론 청주에 속하지만, 청주 시내에서는 거리가 상당하고, 대중 교통도 불편해 청주시민들은 대부분 승용차를 이용한다. 청주에 사는 회사원 남모(51)씨는 “주차장이 부족하면 승용차를 줄이고 대중교통 이용을 권장해야 하는데, 청주 시내에서 오송까지 오가는 버스 노선은 일부 지역에 편중돼 있고, 자주 다니지도 않아 승용차를 이용한다”고 말했다. 택시도 있지만, 그 경우 서울 가는 고속철 요금(1만8,500원)보다 큰 비용을 치러야 한다.

세종시민들도 마찬가지다. 신도시에서 차로 20여 분이면 오송역에 닿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2, 3배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택시는 부족하고, BRT 버스를 타기까지의 시내 교통망이 불편해 집을 나설 때 아예 차를 끌고 간다는 것이다.

세종시 관계자는 “오송역 주차장 문제, 역 혼잡도 완화를 위해서라도 세종KTX역 신설이 필요하다”며 “전면 무료화 대중교통 정책과 함께 오는 10월 세종역 관련 연구용역 결과를 바탕으로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덕동 기자
정민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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