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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있는 야생동물은 불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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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팬지 광복이·관순이, 큰돌고래 태지. 이름이 알려진 야생동물들은 다 불행한 것 같아요."
예전에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야생동물 관련 이야기를 하다 진행자로부터 들은 말이 떠올랐다. 당시에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라고 생각하고 무심코 넘겼는데, 지금 와 보니 일리 있는 얘기였다.
반려동물에게 이름을 부르는 건 낯설지 않다. 이름을 부르지 않는 게 오히려 더 이상하다. 지금보다 동물복지에 대한 인식수준이 낮았을 때, 심지어 잡아먹기 위해 기르던 개에게도 사람들은 이름을 붙였다. 하지만 야생동물은 다르다. 우리가 이름을 붙일 수 없는 존재들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김춘수 ‘꽃’)는 유명한 구절은 모든 생명에 적용되나 보다. 야생동물 중에서는 사람과 관계를 맺게 됐을 때부터 이름이 불리게 된다.
먼저, 야생동물이었지만 지금은 동물원에 사는 전시동물이 이름을 갖게 된 경우가 대표적이다. 앞서 언급한 쇼를 하는 인도네시아 동물원에 팔려갈 뻔한 서울대공원 침팬지 광복이와 관순이, 돌고래 전시관이 문을 닫은 뒤 다른 돌고래쇼 업체를 전전하는 큰돌고래 태지도 전시동물이다. 전시동물 중에서도 외모가 귀엽거나 멸종위기종으로 '대우'받고 있는 동물은 이름으로 불린다. 반면 동물원 속 사슴이나 캥거루의 이름을 기억하는 이들이 있을까. 아예 없지는 않지만 이 경우는 안타깝게도 부정적인 상황에 놓여 있을 때가 많은 것 같다. 올해 3월 동물원을 탈출했던 얼룩말 '세로', 2018년 사람의 실수로 동물원을 탈출했다 사살된 퓨마 '뽀롱이'가 그렇다.
사람으로 인해 멸종 위기에 놓였지만 다시 복원을 위해 방사되거나 사람의 오락을 위해 붙잡혔지만 다시 야생으로 돌아갈 기회를 얻은 동물들의 경우도 살펴보자. 지리산에 방사되고 있는 반달가슴곰의 경우 처음에는 이름을 붙였지만 사람들이 친근감을 느끼고, 곰에게 초코파이를 나눠주는 상황까지 생기면서 2007년부터는 관리번호로 불렀다. 그럼에도 2015년 10월 지리산에 방사된 'KM-53'은 화려한 지리산 '탈주 시도' 때문에 많은 화제를 낳으며 '오삼이'라는 애칭으로 더 불렸다. 2005년 제주 비양도에서 불법포획돼 돌고래쇼에 동원돼온 남방큰돌고래는 '비봉이'라는 이름으로 17년을 살다 지난해 10월 제주 앞바다에 방류됐다. 8번째 방류되는 돌고래였기 때문에 지느러미에는 숫자 '8'이 새겨졌다.
하지만 이 둘은 결국 사람 때문에 죽었다. 오삼이는 배터리 교체를 위해 쏜 마취총을 맞고 이동하다 계곡 물에 빠져 익사한 것으로 추정됐고, 준비 없이 방류된 비봉이는 지금까지 감감무소식인데 전문가들은 사망에 무게를 두고 있다. 모든 생명의 가치는 동일하지만 이름이 불렸던 동물들의 죽음에 더 마음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이들은 죽음을 통해서도 우리에게 묵직한 메시지를 주었다. 오삼이는 지리산 서식권 밖으로 벗어나는 반달곰 관리의 필요성을, 비봉이는 방류만이 정답이 아니었음을 말해주었다. 뽀롱이는 동물원의 부실한 관리 문제에 경각심을 갖게 했다. 이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이들이 말해준 과제들을 고민하고 해결해야 한다. 이름 있는 야생동물의 불행이 끝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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