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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4일 근무제, 나흘만 일해도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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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 1990년대를 대표하는 민중시인, 노동시인으로 활동하다 1994년 작고한 김남주 시인은 생전에 하나뿐인 아들 이름을 김토일(金土日)이라고 지었다. 이 땅의 노동자들이 금(金)·토(土)·일(日)요일은 쉬어야 한다는 뜻이라고. 벌써 30년 전 일인데 지금 논의되는 주 4일 근무제(이하 주 4일제)를 예견한 놀라운 예지가 숨어 있는 것도 같다.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면서 주 4일제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졌다. 직접적으로는 20대 대선 때 정의당이 공약으로 제시한 것이 논의를 촉발했고 팬데믹을 지나면서 달라진 노동환경이 논의에 불을 지핀 것 같다. 나도 주 4일제를 정의당의 대선 공약 현수막을 통해 처음 접했는데, 그때는 왠지 낯설고 황당한 느낌이었고 '저게 될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관련 자료를 찾아보면서 실현 가능성이 꽤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미 시범 또는 부분 실시하고 있는 국가와 기업이 있고 실시 결과에 대한 평가도 나쁜 것 같지 않다. 요컨대 노동일수를 줄였음에도 노동생산성은 오히려 소폭 증가했다는 것. 그러나 소득 감소, 노동양극화의 심화 등을 이유로 우려하거나 반대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그런데 이러한 논의는 대개 근로기준법을 비롯한 법적 관점, 경제정책, 사회·복지정책의 관점에서 이뤄질 뿐, 이 문제를 일이나 노동의 본질과 관련하여 그 근원에서부터 살핀 글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일본 교세라 창업자이자 전설적 경영자 이나모리 가즈오는 '왜 일하는가'라는 책에서 동서양 간 노동관의 차이를 이렇게 설명한다. 서양은 구약성경 창세기에 나오는 인간의 타락 이후 일에 대한 저주 이야기에서 보이듯이 일은 고역이라는 인식 때문에 최대한 짧은 시간에 끝내는 것이 좋다는 노동관이 생겼고 동양 특히 일본에는 일은 고생 이상으로 기쁨과 긍지, 보람을 가져다주고 인격을 수양하는 존엄한 행위라고 여겼다는 것이다. 오해의 소지가 있는 단선적 서술의 면도 있지만(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 의하면 서구에서 종교개혁 이후 일(직업)은 신이 주신 소명으로 파악되므로, 서양의 노동관을 일은 고역이라는 식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일단 이러한 분류를 따른다면 서양이 동양보다 더 주 4일제에 친화적일 것이라고 예상해 볼 수 있겠다.
주 4일제는 4차 산업혁명 시대 노동의 미래에 관한 시금석처럼 보인다. 인공지능(AI)이나 로봇기술을 통한 노동의 자동화, 디지털화로 말미암아 머지않아 상당수 일자리가 사라지거나 업무 형태가 급격히 변화할 거라는 예측이 많다. 한편으로는 노동의 디지털화에 상응하여 노동의 인격성도 다시 조명받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주 4일제 논의는 일의 본질에 대한 숙고와 더불어, 노동의 디지털화와 인격성에 대한 고려를 바탕에 두고 이뤄져야 할 것 같다.
대학생 시절 재빠른 수강 신청과 시간표의 효율적 구성을 통해 일주일에 나흘만 학교에 출석하는 친구들을 당시 학생운동의 한 정파인 주사파(主思派)에 빗대어 주사파(週4派)로 불렀던 기억이 난다. 어찌 보면 대학생에게나 가능했던 주 4일제가 전체 노동환경에서도 가능할 수 있게 되었으니 놀라운 변화다. 그런데 일주일에 하루를 더 쉴 수 있다는데도 주 4일제를 바라보는 시선에서 불안과 우려가 쉬 가시지 않는 것은 내가 나이가 들어서일까? 그만큼 노동의 미래가 불확실해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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