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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이 끝나고 난 뒤'… 보관 못하면 뜯겨 사라지는 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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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하루에 약 1㎏에 달하는 쓰레기를 버립니다. 분리배출을 잘해야 한다는 건 모두가 알고 있지만, 쓰레기통에 넣는다고 쓰레기가 영원히 사라지는 건 아니죠.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고 버리는 폐기물은 어떤 경로로 처리되고, 또 어떻게 재활용될까요. 쓰레기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간만에 좋은 공연 한 편을 보기 위해 공연장을 찾았습니다. 기대감에 달뜬 분위기 속, 객석에 앉아 무대를 바라보니 벌써부터 설레네요. 화려한 무대 세트를 보고 있자니 이미 이곳이 외부와 차단된 새로운 세계로 느껴집니다. 화려한 배우들의 의상과 다양한 소품들은 관객이 극에 100% 빠질 수 있도록 '리얼함'을 더해줍니다. 막이 오르고, 관객들은 잠시 시공간을 이동해 극에 흠뻑 녹아듭니다.
공연이 끝난 뒤 박수갈채가 잦아들 때쯤, 정신을 다시 현실세계로 끌어내리며 문득 이런 생각을 합니다. 공연이 종료되면 무대 위 세상은 어디로 가는 걸까? 다시 사용할 수 있는 무대는 어떤 것이고, 그럴 수 없다면 어떻게 버려지는 걸까? 지금부터 조명이 꺼진 뒤 무대 세트가 향하는 곳을 따라가보겠습니다.
무대 세트는 연극과 오페라, 뮤지컬 등 극의 종류에 따라 규모와 형식 면에서 다양하지만, 대부분은 그리 오랜 기간 살아남아있지 못합니다. 오페라 무대의 경우 설치에만 몇 달이 걸리지만, 공연장 대관 등의 문제로 두어 번 공연이 올려진 뒤 바로 철거되는 경우가 부지기수입니다. 국립극단에서 공연되는 연극의 경우 셋업(준비)부터 공연 기간까지 합쳐도 겨우 한 달 남짓 무대가 설치돼있다 철거된다고 하네요. 비교적 오랜 기간 공연하는 대형 뮤지컬들도 재공연 계획이 없다면 대부분 무대는 폐기처분됩니다.
뜯어낸 무대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쓰레기는 목재와 철재입니다. 통상 나무 합판과 쇠파이프, 철판 등으로 무대 세트를 짓기 때문이죠. 목재와 철재 모두 해체만 제대로 하면 재활용이 가능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홍영진 국립극단 무대제작감독은 "무대마다 디자인의 특수성이 있어 재활용이 어렵고, 일부는 디자이너 저작물이라 다른 공연에 활용하기가 어렵다"고 설명합니다. 나무 재질로 벽을 세우더라도 특정 공연에 맞는 색으로 페인트칠을 하는 순간 재활용이 어려워지는 셈이죠.
스티로폼이나 무대 의상, 소품들은 '혼합 폐기물'로 분류됩니다. 소품은 공연마다 종류가 천차만별인데요, 소파나 탁자, 침대 같은 가구부터 플라스틱, 가발, 음식물까지 다양합니다. 공연을 하는 동안 소모되거나 손상되는 소품은 당연히 폐기되지만, 한두 번 사용해 멀쩡한 소품도 버려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최근엔 무대에 새로운 재료를 활용하는 경우가 많아 쓰레기 종류도 다양해졌습니다. 실제 대나무를 공수해 무대 위에 숲을 만든 작품이나 바닥 또는 벽면 전체를 유리나 LED로 만드는 경우 등이 대표적입니다. 무대 규모에 따라 다르겠지만, 하나의 무대를 폐기하는 데 적게는 수십만 원에서 많게는 수천만 원까지도 든다고 하네요. 재활용이 어렵기 때문에 철재를 제외하면 대부분 쓰레기는 소각 또는 매립됩니다.
수억 원을 들여 애써 제작한 무대 세트가 그대로 폐기될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는 보관할 곳이 마땅치 않다는 데 있습니다. 그나마 국고 보조를 받아 형편이 나은 국립극단이나 국립오페라단 등은 창고를 임대해 일부 무대를 보관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공간과 비용의 한계 때문에 정기적으로 '솎아내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특히 재공연 여부가 불확실한 경우 무기한 무대 세트를 보관할 수가 없어 눈물을 머금고 폐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네요. 규모가 작은 극단이나 예술단의 경우 창고 임대 비용을 감당하는 것보다 무대를 폐기하는 게 저렴한 경우도 있어 쓰레기가 계속 생산되는 구조라고 합니다.
무대 세트 쓰레기가 덜 생기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튼튼하게 만들어 공연 때마다 재사용하는 겁니다. 일부 해외 유명 극장들의 경우 장기 사용을 염두에 두고 오랜 시간 공들여 무대를 제작하고, 20~30개에 달하는 무대를 한꺼번에 보관할 수 있는 창고를 두고 있다고 합니다. 그 덕분에 50년 동안 재활용되고 있는 무대 세트도 있죠. 사실 우리나라 여건상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다행히 최근 공연계에도 '녹색 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2021년, 영국 국립극장은 친환경 공연 제작 가이드라인 '더 시어터 그린 북(The Theatre Green Book)'을 내놨습니다. 이 가이드북은 공연 프로듀싱 단계부터 세트와 무대를 짓는 과정, 무대 소품을 준비하고 공연을 운영하는 과정까지 전 단계에서 지속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기초 원칙은 △모든 재료의 50%가 재사용 또는 재활용품인지 출처를 확인하고 △그 중 65%가 보관 또는 재사용을 통해 다음에도 사용될 수 있도록 하며 △유해하고 지속 불가능한 물질은 사용하지 않기 등입니다. 전세계 많은 공연 제작팀이 이를 참고해 지속가능한 공연 제작에 노력하고 있다고 하네요.
우리나라에서는 국립극단이 쓰레기를 줄이기 위한 노력에 가장 앞장서고 있습니다. 무대 제작 시 보유품 재활용 비율을 매번 기록하고 있는데, 지난해 올라간 '기후비상사태: 리허설'이라는 공연의 경우 보유품 재활용 비율이 90%에 육박했습니다. 아깝게 폐기되던 소품은 나눔을 통해 재사용 방안을 찾았습니다. 지난해 국립극단이 의상과 소품, 장신구 등 공연 물품 1,500여 개를 민간 극단 60곳의 신청을 받아 이들에게 나누는 '장터'를 열었는데, 반응이 폭발적이었다고 하네요. 이런 노력이 계속된다면 황홀한 무대를 더욱 마음놓고 볼 수 있게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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