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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을 키운 8할은 믿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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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여보! 일어나 봐. 큰애가 안 자고 여태 스마트폰으로 게임하는 것 같아." 다급히 나를 흔들어 깨우는 남편. 시계를 보니 새벽 2시를 넘긴 시간이다. "일찍 일어나 공부한다고 한 애가 여태 게임하고 있나 봐. 빨리 일어나 봐." 걱정 가득한 음성으로 남편은 얼른 가보라며 나를 채근했다. 자다가 깨서 물 한잔 마시려고 방을 나섰다가 딸아이 방에서 들려오는 기계음에 화들짝 놀라 한달음에 내게 달려온 모양이다. "걔가 어디 그럴 애야?" 불퉁하게 중얼거리며 마지못해 방을 나섰다.
거실을 가로질러 딸아이 방에 다가가니 정말 무슨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가만히 방문에 귀를 대보니 속닥속닥 속삭이는 누군가의 말소리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금세 상황 파악이 된 나는 "당신은 당신 딸을 아직도 그렇게 몰라?" 핀잔을 주며 조심스레 방문을 열었다. 방 안에는 안대를 한 채 깊이 잠들어 있는 딸아이가 보였고, 베개 옆에 놓인 스마트폰에서는 한창 ASMR 유튜브 영상이 재생되는 중이었다. 중요한 시험이 다가오자 아무래도 예민해지는지 자야 할 시간에 잠들기가 쉽지 않다며 아이는 얼마 전부터 수면안대와 ASMR 혹은 빗소리 영상 등의 도움으로 잠을 청하고 있었다.
남편이 아이들에 대해 나만큼 알지 못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자기 딸을 게임을 하려고 부모에게 거짓말하는 아이로 생각했다는 게 섭섭했던 나는 한참 남편을 나무랐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자식을 의심부터 하면 되겠냐, 부모가 아이 말을 믿지 못하면 어떻게 우리 아이가 기를 펴고 세상을 살아가겠냐며 말이다. 워킹맘이었기에 부족한 점도 많았겠지만 엄마로서 내가 가장 신경 썼던 건 가족 안에서 긴장과 불안을 느끼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유는 단 하나, 아이들이 부모에게 뭔가를 감추거나 속이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일이 없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들어주고, 말로 충분히 표현하지 못하는 마음까지도 헤아리는 '넓고 큰마음'을 내려고 애썼다. 자신의 의견을 경청하는 부모에게서 성장하는 아이라면 세상을 살아가며 굳이 거짓된 모습을 위해 불필요한 정신적 에너지를 쓸 리가 없을 것이라 믿었다. 그래서 그런지 딸아이는 유치원 때부터 자기 생각과 감정을 분명하게 말로 표현해 주변 어른들을 당황하게 할 때도 있었지만, 자기가 원하는 것을 분명히 인식하고 표현하는 성인으로 자라주어 내 노력이 보상받은 듯해 뿌듯하다.
물론 내가 잘못 키우고 있는 건 아닌가 싶은 순간들도 있었다. 주변인들의 말에 흔들린 때도 많았고, 남들처럼 사교육에 힘써야 했나 후회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이만큼 키워놓고 보니 적어도 우리 아이들에겐 내 방식이 옳았다 싶다. 초등학생 때도 학원에서 하는 반복 학습을 유난히 힘들어했고, 더 자라 고등학생이 되어서까지도 문제풀이식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는 아이에게 공부를 강요할 수 없었다. 입시를 위한 공부는 싫어했지만, 책 읽는 것을 좋아하고, 그림에 재능이 있으며, 지치고 힘든 날엔 귀여운 동물 영상을 찾아보며 스스로 마음을 돌볼 줄 아는 대학생이 된 딸에게 어릴 때부터 사랑한다는 말만큼이나 자주 해 주는 말이 있다. "너는 이 모습 이대로 이미 완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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