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국민 10명 중 8명이 병원에서 사망하는 현실. 그러나 연명의료기술의 발달은 죽음 앞 인간의 존엄성을 무너뜨린다. 과연 우리는 어떻게 죽어야 할 것인가.
50대 여성 환자가 대학병원 중환자실에서 사망했다. 환자는 6년 전 위암으로 진단받아 수술과 항암제 치료를 받았다. 그 후 5년간 안정적인 경과를 보이다가, 재발되어 수술을 했으나 이미 암이 퍼져 재발한 암종 제거가 불가능한 상태였다. 전신 상태가 악화하여 더 이상 치료를 해도 회복이 불가능한 말기로 판단한 의료진은 거주지 요양병원이나 호스피스-완화의료기관으로의 전원을 추천하였다.
그러나, 환자와 가족들은 새로운 항암치료를 시도해 주기를 요구하면서 퇴원을 거부했다. 음식물을 외부에서 소장으로 직접 주입할 수 있는 관을 통해 영양공급을 하며 7개월 동안 병실에 머물다가 폐렴으로 호흡곤란이 발생하자 중환자실로 옮겨져 3개월간 연명의료를 더 받았다.
항암제 투약 후 부작용으로 응급실을 통해 입원한 환자가 있었다. 부작용에서 회복되었으나 퇴원을 거부했다. "지금 병실이 없어 응급실에 대기하고 있는 환자가 많이 있으니, 그분들을 위해 집으로 퇴원하거나 요양병원으로의 전원을 고려해달라"고 말했더니, 환자의 아내가 직접 찾아와 거칠게 항의했다. "한 번 퇴원하면 다시 입원하기 얼마나 힘든 줄 아세요? 내 남편이 중병에 걸렸는데 왜 남까지 생각해야 하나요?"
4대 중증 환자의 경우, 입원비의 5%만 본인이 부담하면 된다. 따라서 집에서 개인적으로 간병하는 것보다 병원에 계속 입원해 있는 것이 경제적으로도 유리하다. 또 실손 보험금을 더 받기 위해 통원치료가 가능한데도 입원을 요구하는 환자들도 있다.
비슷한 이유로 요양병원으로의 전원을 거부하고 수년간 대학병원에서 병상을 차지하고 있는 경우도 많다. 병원이 전원을 강력히 추진하면 민원과 법적 분쟁이 발생하게 되는데, 수년에 걸친 소송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 문제는 응급환자를 실은 119구급대가 여러 병원에 문의하였으나 받아주는 병원이 없어 환자가 사망하는 안타까운 현실과 맞물려 있다.
병원이 응급환자를 못 받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빈 병상이 없다'라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인구 1,000명당 입원 병상수는 12.4개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3배 수준이고, 응급의료기관 및 중환자실 병상도 선진국들과 비교하여 전혀 부족하지 않다. 그런데 왜 입원할 병상이 없어 응급환자들이 길에서 헤매다 사망하는 일이 일어나는가?
우리나라의 평균 입원 일수는 19.1일로 OECD 평균의 2배 이상이고, 미국(6.1일)이나 영국(6.8일)의 3배 수준이다. 응급실을 내원한 환자는 응급조치 후 일반 병상이나 중환자실로 이동하는데, 병실 회전율이 낮아 수도권 대학병원들의 응급실과 병실은 항상 만원이다. 요양병원에서도 진료가 가능한 환자 한 명이 1년간 상급종합병원에 입원해 있으면, 1주일 입원이 필요한 급성기 응급환자 52명이 기회를 잃게 된다.
한국에 비해 인구당 병상수가 적은 다른 선진국에서는 어떻게 응급 병상을 운영하고 있을까? 세금으로 의료제도를 운용하는 영국에서는 중증 응급환자를 항상 수용할 수 있게 병상의 10~15%를 비운 상태로 유지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이를 위해 의료진이 이미 입원 중인 환자들을 지속적으로 재평가하여 중증도가 낮은 환자 순으로 거주지 지역병원으로 전원시킨다. 의사가 전원이 가능하다고 판단했음에도 대학병원에 계속 입원해 있기를 원하는 환자는 더 이상 국가로부터 의료비를 지원받지 못하고, 모든 비용은 개인 부담으로 처리된다. 미국은 중증 환자 중심으로 의료보험이 지원되고, 감기와 같은 경증 질환으로 응급실을 방문하면 고액의 의료비를 본인이 부담하게 하여, 응급진료가 꼭 필요한 환자만 응급실을 방문하게 유도하고 있다.
응급의료기금을 통해 3조 원 이상의 국가 재원이 투입되었음에도 응급의료체계는 개선되지 않고 있다. 중증 응급환자를 구하기 위해서는 응급센터 증설보다 더 시급한 일이 중증도별로 환자의 치료 우선순위를 정하여 한정된 의료자원을 합리적으로 분배할 수 있게 만드는 새로운 규칙에 대한 논의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