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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만 구할 수 있다면…" 지방 살아도 좋다는 절반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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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100만 명에 달했던 한 해 출생아가 2002년 40만 명대로 내려앉은 지 20여 년. 기성세대 반도 미치지 못하는 2002년생 이후 세대들이 20대가 되면서 교육, 군대, 지방도시 등 사회 전반이 인구 부족 충격에 휘청거리고 있다. 한국일보는 3부 12회에 걸쳐 '절반세대'의 도래로 인한 시스템 붕괴와 대응 방안을 조명한다.
좋아서 하는 일들이지만, 사실 N잡러가 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에요
서울을 떠나 고향 전북 장수군으로 돌아온 박하영(26)씨
지난달 20일 전북 장수에서 만난 박하영(26)씨는 장수군의 '하이디'로 불린다. 샌들을 신고도 오르막 산길을 척척 오르고, 트럭에서 모종판을 내리는 모습도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다. 반려견인 보더콜리 '하늘이'를 데리고 뒷산에서 염소를 몰기도 한다.
서울 소재 대학을 다니던 하영씨는 친구들이 취업준비에 몰두하던 2020년 12월, 돌연 고향인 장수로 돌아왔다. 풀 한 포기 보기 어려운 원룸촌에 코로나 방역까지 더해지자, 하영씨는 서울이 자연과 동물을 사랑하는 이들이 살기엔 적합하지 않은 도시라는 판단이 섰다.
고향에 자리를 잡은 하영씨는 4년째 'N잡러'로 살고 있다. 지자체 청년사업 예산을 받아 '시무골예술제' '장수트레일레이스' 등 지역 행사를 기획했고, 농사를 짓고 염소농장 일을 도왔다. 글을 쓰고 강연도 나간다. 하영씨는 "7가지 일을 한 번에 한 적도 있다"고 전하며, 월 수입은 300만 원이 넘을 때도 있고, 100만 원이 채 되지 않을 때도 있다고 했다. 현재는 장수의 첫 서점이 될 북카페를 열 준비로 들떠 있다.
귀향한 뒤 서울이 그리웠던 적은 한번도 없었지만, N잡러로 살다 보니 그간 이해하지 못했던 친구들의 '서울 타령'엔 어느 정도 공감하게 됐다. "왜 서울에 미쳤을까 했는데, 장수에는 번듯한 정규직 일자리가 군청 공무원뿐이에요. 저야 사무직으로 일할 생각 없고 여기에 기반이 있으니 그럭저럭 먹고 살지만, 다른 친구들이 오면 저처럼 살 수 있을까요? 친구들도 어쩔 수 없이 서울에 살고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일자리가 거기에 있으니까요."
5,000만 인구의 절반이 수도권에 사는 대한민국. 젊은이들도 대부분 서울 거주를 희망할까.
한국일보가 창간 69주년을 맞아 한국리서치와 실시한 '저출생·고령화에 따른 인구 변화 인식조사'에서 절반세대 47.2%는 지방에 거주하길 원하거나 거주지가 어디든 상관없다고 답했다. 특히 지방 출신(63.78%)은 수도권 출신(31.2%)보다 지방 거주에 대한 거부감이 적었다.
지방에서 서울 소재 대학에 입학한 젊은이들은 높은 집값과 인구밀도, 경쟁 스트레스를 서울을 기피하는 이유로 꼽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고향 창원으로 돌아가길 희망하는 송우현(21·가명)씨는 "서울엔 사람이 너무 많다. 혼잡한 지하철을 보면 이태원 참사 같은 게 날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경남 마산 출신의 윤은채(21·가명)씨는 "자녀에게 서울의 입시경쟁 스트레스를 주고 싶지 않다"며 "아이를 낳는다면 무조건 지방에서 살 것"이라고 단언했다.
연봉을 더 준다고 해도 수도권에 살고 싶지 않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경남에서 공무원이 되길 희망하는 박태현(23·가명)씨는 "돈 조금 더 번다고 서울에 갈 것 같진 않다"며 "어차피 서울 집값은 근로소득으론 살 수 없는 수준 아니냐"고 말했다.
이처럼 지방에 살고 싶은 청년들이 적지 않은데도, 수도권 과밀 문제가 해소되지 않는 이유는 일자리 때문이다. 원하는 일자리가 수도권에 몰려 있어 선택의 여지가 없다. 양승훈 경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예를 들어 마케팅 일을 하고 싶어도, 지방에는 관련 업체도 없고, 있다고 해도 경쟁력이 떨어진다"며 "서울로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사람 많은 것도 싫고, 문화생활에도 큰 관심이 없어 고향인 경남 양산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이선주(21·가명)씨도 "일자리만 구할 수 있다면"이라는 단서를 달았다. 윤은채씨도 고향에선 일자리 구하기가 쉽지 않다고 보고 일찌감치 진로를 변호사로 정했다.
청년들의 지방 정착을 유도하려면 인프라 구축이 필수적이다. 수도권으로 직장을 옮긴 최연수(22·가명)씨는 "강원도에서 근무할 때는 뮤지컬 관람도 못 했고, 주변에 필라테스 학원도 없었다"며 "인프라 수준이 떨어지는 것은 견디기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고향인 대전에서 일자리를 구한 이예진(27·가명)씨는 "지방이 싫다는 수도권 사람들의 심정도 이해는 간다"며 "나도 충남의 다른 중소도시에서 살라고 하면 자신이 없다"고 토로했다.
정부도 지방 일자리 부족이 수도권 과밀의 근본 원인이란 점은 알고 있다. 2019년까지 16년 동안 혁신도시 조성을 통해 총 153개 공공기관을 비수도권으로 이전했다. 하지만 수도권 인구는 감소하지 않았다. 지방으로 근무지를 옮긴 직원들은 그곳에 정착하기보단 서울로 출퇴근하거나 주말부부가 되는 길을 택했다.
전문가들은 인구 이동을 위한 근본적 개념을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이상림 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공공기관을 전국에 너무 골고루 분산시킨 게 혁신도시의 문제"라며 "지방에도 판교 같은 정보기술(IT)산업 중심지를 조성해 청년들이 서울이 아닌 곳도 대안으로 택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고 제시했다.
청년들을 반드시 지방에 정착시킬 필요가 없다는 의견도 있다. 낮시간에만 지방에 머무는 '생활인구'도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생활인구란 주민등록인구뿐 아니라 지역 체류자(통근·통학 등)까지 실질적 인구로 포함하는 개념이다. 행정안전부는 내년부터 89개 인구감소 지역을 대상으로 시범적으로 생활인구를 산정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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