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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진 기금 고갈, 지지부진 연금개혁… 월급 3분의 1 뜯길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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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100만 명에 달했던 한 해 출생아가 2002년 40만 명대로 내려앉은 지 20여 년. 기성세대의 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2002년생 이후 세대들이 20대가 되면서 교육, 군대, 지방도시 등 사회 전반이 인구 부족 충격에 휘청거리고 있다. 한국일보는 3부 12회에 걸쳐 '절반 세대'의 도래로 인한 시스템 붕괴와 대응 방안을 조명한다.
# 37년 뒤인 2060년. 서울에 거주하는 3인 가구의 가장 A(45)씨는 월급 명세서를 볼 때마다 한숨이 나온다. 잘살지도, 그렇다고 가난하지도 않은 A씨의 세전 월 소득은 1,440만 원(2015~2023년 3인 가구 기준중위소득 연평균 증가율 3.23% 감안해 추산)인데, 매달 국민연금 보험료로만 210만 원(부과방식비용률 29.8% 가정) 넘게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국민연금 기금은 이미 5년 전인 2055년에 말끔히 소진(제5차 국민연금 재정추계)됐다. 이듬해부터 연금 지급에 필요한 재정을 그해에 보험료를 걷어 충당하는 부과방식이 시행됐는데, 부과방식비용률(보험료율)이 30%까지 치솟았다.
# 그나마 A씨는 직장을 다녀 보험료의 절반을 회사에서 부담하지만, 자영업을 하는 동갑내기 친구 B씨는 A씨와 비슷한 월 수입에도 국민연금 보험료가 420만 원 넘게 나온다. 버는 돈의 약 3분의 1을 노년층 연금 지급을 위해 내놓는 셈이다. B씨 입에서는 연금 빚덩이를 떠넘긴 부모 세대에 대한 푸념이 끊이지 않는다.
돌이켜 보면 충분히 예견된 일이었다. 2015년생인 A씨와 같은 해 태어난 아이는 43만8,420명(통계청 인구동향조사)으로 1981년(86만7,409명)과 비교하면 반토막이 났다. 2021년에는 연간 출생아가 26만 명에 불과할 정도로 출생률은 더욱 가파른 하락곡선을 그렸다.
생산연령인구는 급속히 감소했는데, 전체 인구 중 연금 수급자인 65세 이상 노인 비율은 43.8%(통계청 2020~2070년 장래인구추계)까지 상승한 게 2060년에 직면한 현실이다. 사실상 젊은이 한 명이 노인 한 명을 부양해야 하는 시대다.
먼 미래의 일이 아니다. 현 국민연금 제도가 유지된다는 가정 아래 기존 통계 자료를 활용해 구성한 시나리오지만 지금 아이들이 중장년이 되면 직면할 가능성이 충분하다. 25년째 9%로 고정된 보험료율을 조금 끌어올리고, 국민연금 기금투자수익률을 높인다면 몇 년쯤 늦춰지겠지만 기금 고갈이라는 암울한 결말을 피할 수는 없다. 유례없는 인구 감소 속에 공적연금에 내재된 한계이자, 2007년 이후 차일피일 미루며 연금개혁을 외면한 결과다.
28일 정부기관과 연금 전문가 등에 따르면 국민연금 재정계산 뒤 종합운영계획을 수립해야 하는 올해도 기초연금, 군인·공무원연금 등 직역연금, 퇴직연금까지 아울러 연금제도의 틀을 바꾸는 구조개혁안이 나올 가능성은 희박하다.
국민연금법에 따라 5년마다 재정계산은 의무 사항인데, 올해 5차 재정계산에 맞춰 지난해 7월 여야 합의로 출범한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는 산하 민간자문위원회부터 합의가 불발돼 개혁안을 내놓지 못했다. 특위는 올해 10월까지 활동 기간을 연장해 연금 구조개혁 방안을 논의하지만 남은 시간과 내년 국회의원 선거를 감안하면 설사 개혁안이 도출된다고 해도 장기 과제가 될 공산이 크다.
당장 남은 건 정부 개혁안이다.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을 10월 말까지 수립해 국회에 제출해야 하는 정부는 재정계산위원회 논의 결과를 토대로 국민 의견 수렴 과정을 거칠 예정이지만 보험료율이나 급여 산식 등을 조정하는 모수(母數)개혁이 유력하다. 근본적 구조개혁보다 재정 적자 시기를 다소 늦추는 조치에 그칠 거라는 얘기다.
당장 65세 이상에게 지급하는 기초연금만 해도 국정과제에 40만 원으로 10만 원 인상이 포함돼 있다. 선거를 앞두고 틀을 흔들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익명을 요구한 재정계산위원회 위원은 "국회 연금특위 논의는 별개로 하는 것이고, 정부안은 모수개혁이 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모수개혁 시 연금 보험료율 인상은 기정사실로 굳어진 분위기다. 보험료율이 1998년 6%에서 9%로 인상된 이후 25년째 고정된 데다 후대를 위해 '기금 고갈'을 늦춰야 한다는 공감대도 예전에 비해 확산했다. 보험료율이 10%를 넘을 것이 확실한 가운데 남은 것은 인상 폭과 연도별 인상률을 어느 정도로 할지 정도다.
소득대체율(가입 기간 평균 월급 대비 연금액 비율) 조정은 훨씬 민감한 사안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7년 2차 연금개혁으로 50%였던 소득대체율은 2008년부터 매년 0.5%포인트씩 내려가 올해는 42.5%이고, 2028년에는 40%가 된다. 시민사회단체 중심으로 노후소득 보장을 위해 상향을 촉구하지만 소득대체율을 높이면 보험료율 인상 효과가 상쇄돼 기금고갈시계의 속도를 늦추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 국회 연금특위 민간자문위도 이를 놓고 격론을 벌였지만 결론에 도달하지 못했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은 "매번 그랬는데 아직까지 국회나 정부나 자신들만의 뚜렷한 개혁안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며 "2007년 연금개혁은 당시 정부가 지지층까지 비판을 해도 확고한 철학과 리더십으로 밀고 나갔기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청년들은 국민연금 자체를 처음부터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인식한다. 1988년 시작돼 연금 역사가 일천한 우리나라는 초창기에 가입한 현 수급자와 기성세대가 '덜 내고 더 받는' 구조인 반면, 뒤로 갈수록 '더 내고 덜 받는' 현상이 심화하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연구원이 지난해 3월 발간한 정책보고서를 봐도 2007년 소득대체율을 60%에서 40%로 낮추는 연금개혁 이후 현 청년세대인 2000년생과 미래세대인 2020년생의 소득대체율은 1970년대생에 비해 14%포인트 이상 하락한다. 반면 총보험료는 1,255만 원이 올라간다.
안 그래도 불평등한 구조인데, 개혁 논의마저 지지부진한 상황이 이어지자 청년들의 불만과 불신도 커지고 있다. 프리랜서 김현욱(30)씨는 "국민연금 보험료를 많이 내더라도 예전에 비해 받는 돈은 점점 줄고 있어 청년은 불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연금제도를 제대로 바꿔야 하는데, 지금 거론되는 대안들은 썩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했다. 직장인 최지원(29)씨는 "안 그래도 살기 팍팍한데 왜 국민연금을 부어야 하는지 반문하는 청년들이 많다"며 "노후가 멀게 느껴지기도 하고 연금이 고갈된다는 불안감도 커 다른 곳에 투자하려는 경향도 강하다"고 말했다.
올해 확실시되는 보험료율 인상 등 모수개혁이 청년들 불만을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일 것이라는 뜻이다. 올해 10월 정부 개혁안이 나온 뒤 청년들의 강한 반발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김설 청년유니온 집행위원장은 "청년들이 유난스러워서 국민연금을 불신하는 것이 아니라 짧은 연금 역사 때문에 제도가 불안정해 불신이 높을 수밖에 없다"며 "정부가 연금제도에 대한 신뢰성을 높이고 재정 안정성에 대해 청년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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