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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방 요구 받는 지리산 마지막 '비경' 칠선계곡 가보니...쉼 없는 초록의 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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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달려 도착한 지리산 칠선계곡의 아침은 눈부시게 푸르렀다.
한라산 탐라계곡, 설악산 천불동계곡과 함께 국내 3대 계곡으로 꼽힌다는 지리산 칠선계곡은 이중 유일하게 계곡 일부가 2027년까지 특별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있어 가이드의 도움 없이 산행하는 것은 불법이다. 그것도 1년에 4달(5~6월, 9~10월), 한 달에 4주, 한 주에 금~일 3일, 하루에 60명으로 인원이 제한돼 있다.
인원을 제한하다 보니 당연히 칠선계곡 입구 함양군 마천면 추성리 상인들은 불만이 많다. 이웃 백무동만 하더라도 등산객과 글램핑 야영객들을 상대로 쏠쏠한 매출을 올리는데 이곳은 인원도 적은데다 대부분이 차를 갖고 와 매출이 미미하기 때문이다.
이곳 상인들은 추성주차장과 등산로 입구에 ‘안전시설 갖춰 약속대로 개방하라’ ‘30년 제한해서 생태계가 살아났나’ 등의 개방 요구 플래카드를 내걸고 보호구역 해제를 요구하고 있다.
추성리 선부용 이장은 “인원을 조금 늘린다고 해서 추성리 경제에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면서 “이곳만 이렇게 오랜 기간 제한하는 것은 형평성에도 맞지 않고 설득력도 떨어지는 만큼 다른 데처럼 보호방안을 마련한 뒤 전면 개방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 주민은 “오래 전부터 개방요구를 해왔지만 이번에는 10년 주기로 진행되는 국립공원 구역조정 타당성 조사 발표를 앞두고 플래카드를 내걸었다”면서 “국내최고 원시림을 보호한다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합리적 보존방안을 마련한 뒤 개방할 수도 있을 텐데 너무 하는 것 아닌가 싶다”고 하소연했다.
어쨌거나 개방요구 압력 수치가 올라가는 마지막 비경 칠선계곡은 추성주차장~비선담(상원교) 구간만 상시 개방돼 있다. 비선담부터 천왕봉까지 5.4㎞ 구간은 가이드와 동행해야 한다. 이를 위반하면 5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 받는다.
24일 오전 6시 30분 국립공원사무소 직원들이 인원을 점검하고 가벼운 체조로 산행을 준비했다. 원래 인원 점검할 때 배지를 나눠주는데 지난 회 때 동이 났단다.
한 직원이 “일행과 떨어져 걸을 때 거미줄이 걸리면 등산로가 아니니 다시 되돌아 와야 한다”면서 “거미줄이 있다는 것은 아무도 그 길로 지나가지 않았다는 뜻이 되니까 명심하라”고 살짝 겁을 줬다.
주차장에서 1.5㎞ 남짓 걸으니 두지동마을이 나온다. 이곳이 뒤주같이 생겼다고 붙여진 이름이란다. 보라색 자주달개비꽃과 호두나무가 인상적이었다.
샘물로 땀을 식히고 본격적으로 산행을 시작하니 시원하고 웅장한 계곡이 자태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가히 천불동계곡과 용호상박이었다. 비가 많이 오지 않아 수량이 줄었다는데도 규모가 상당했다. 물 빛은 투명해 쳐다 만 봐도 서늘함이 느껴졌다.
이제 본격적인 계곡 산행이다. 옥녀탕과 선녀탕을 지나 비선담까지 너덜길과 계곡길이 이어진다. 선녀탕은 일곱 선녀가 내려와 목욕했다는 곳으로 이 계곡 이름의 기원이다. 전설에 따르면 곰이 이들 선녀의 옷을 훔쳤다가 걸려 한신계곡으로 쫓겨났다고 한다. 전설이 맞는지 칠선계곡은 보호구역임에도 반달곰은 잘 나타나지 않는다고 한다.
비선담까지는 개방구간이라 비교적 등산로가 잘 정비돼 있어 수월하게 오를 수 있었다. 예약을 안 한 등산객들은 이 곳을 조금 지난 상원교에서 발길을 돌려야 한다. 산행 중 몰래 끼어든 사람은 아까 말한 배지로 확인해 쫓아낸다.
계곡을 걷는 데 저 아래 제법 큰 동물의 사체가 떠 있다. 맷돼지 새끼인 것도 같고, 자라 같기도 하다. 산과 골이 깊으니 저런 것도 보나 싶었다.
해발 835m 표지목을 지나 계곡이 깊어지면서 바위는 이끼투성이고 바위 주변은 대형 고사리같이 생긴 관중 천지다. 조금 과장해서 고사리이끼가 정말 고사리만한 것도 있다. 바위도 초록이고 풀도 초록이고 나무도 초록이고 그야말로 초록의 향연이다.
숲길을 일렬로 걷다 보니 어느덧 칠선폭포에 도착했다. 등산객들이 시원한 물줄기를 배경으로 인증샷을 찍느라 분주했다. 선녀탕의 수량에 조금 실망했는데 칠선폭포가 위안을 줬다.
칠선폭포를 뒤이어 대륙폭포, 삼층폭포가 줄을 잇는다. 이 셋을 아울러 폭포수골이라고 부른다. 지리산은 다른 산과 달리 물이 많다. 해발 1000m가 넘는 곳에서도 샘물이 솟고 계곡에 물이 흐른다. 그 중 칠선계곡은 압권이라고 할 만 하다.
국립공원공단에 따르면 이곳에는 이름도 생소한 사스래나무, 산겨릅나무, 시닥나무, 부게꽃나무, 나래회나무가 있고 초본류로는 지리터리풀, 산오이풀, 두루미꽃, 자주솜대, 귀박쥐나물, 바위발말도리, 호오리새, 기름새, 쌀새(새가 아니라 풀 이름이다) 등과 단풍취∙나도옥잠화∙자주솜대 군락지가 있다.
칠선계곡에는 이처럼 해발고도에 따라 다른 곳에서는 보기 힘든 다양한 동식물군이 분포하고 있다고 한다. 이 중에서 한, 두 개 만 알면 대단한 식물 상식의 소유자라고 자부해도 될 것 같다.
삼층폭포를 지나면서 길이 험해지기 시작한다. 혼자 온다면 길을 찾는 것은 불가능할 것 같다. 그 흔한 등산로 안내 리본도 한 개 보이지 않는다. 솔직히 말하면 빨간 색 리본을 하나 보긴 봤다. 누가 장난스럽게 보이지도 않는 곳에다 묶어놨다.
한 가이드는 “예약제로 운영하다 보니 굳이 산악팀을 홍보할 일이 없어 등산리본을 붙이지 않고 간혹 붙여져 있는 것은 우리가 뗀다”고 말했다. 그 가이드는 “사람이 많이 다니면서 이제 등산로가 잘 보여 굳이 등산리본 없어도 다들 길을 잘 찾는다”고 덧붙였다. 어디 길이 잘 보인다는 말인지 궁금했다.
마지막 마폭포에서 천왕봉 정상까지 1.7km가 깔딱고개다. 고도 530m를 치고 올라가야 한다. 여기서부터 등산객들이 갈리기 시작한다. 선두그룹과 후미그룹이 벌어지면서 어떨 때는 2시간 격차가 나기도 한단다.
사람 키보다 큰 조릿대를 지나 고갯길을 오르다 보니 숨이 턱에 찬다. 교목이 줄어들고 주목이 나타나면서부터 뒤에 웅장한 산세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중간 중간 쉬면서 숨도 돌리고 경치도 감상한다. 운해와 초록이 엇갈리니 그냥 그림이다.
가쁜 숨을 부여잡고 나무계단과 철계단을 힘겹게 올랐더니 천왕봉이 툭 튀어나온다. 1,915m다.
가이드들이 마지막으로 인원을 체크하고 백무동쪽으로 하산한다. 가이드들도 온 길로 되돌아가지는 않는다.
국립공원공단 관계자는 “칠선계곡을 개방하려면 안전시설 등을 설치해야 하는 데 시설을 설치한다는 건 곧 개방한다는 뜻이 되므로 굉장히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공단은 개방 요구를 의식해 지난해까지 수∙목∙토요일(왕복하기) 월요일(올라가기) 4회 160명을, 올해 금∙토(올라가기)∙일요일 주말 3회 180명으로 늘렸고 개방구간도 비선담까지에서 상원교까지 소폭 늘렸다.
1999년부터 특별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출입이 제한된 칠선계곡은 2027년 이후 개방 여부가 다시 논의된다.
등산객 김모씨는 "한라산 탐라계곡에 여러가지 편의와 안전시설을 설치하는 공사가 진행되면서 많이 훼손됐다"면서 "원시림의 품격을 갖춘 이 곳 만큼은 개방 여부를 신중하게 결정했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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