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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친 있어?" "여친이랑 여행 가?"…곤란한 사생활 질문, 관심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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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쟁이의 삶은 그저 '존버'만이 답일까요? 애환을 털어놓을 곳도, 뾰족한 해결책도 없는 막막함을 <한국일보>가 함께 위로해드립니다. '그래도 출근'은 어쩌면 나와 똑같은 문제를 겪고 있는 노동자에게 건네는 전문가들의 조언을 담습니다.
지난달 회사를 옮긴 30대 직장인 A씨. 얼마 전 팀원들과 함께한 점심 자리에서 난감한 일을 겪었다. 팀장이 "남자친구는 있냐"는 질문을 던진 것. 새로운 팀원과 함께 어색한 분위기를 깨고 관심을 보여주려 했겠지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사생활 관련 내용을 답해야 하는 A씨는 불편함을 느꼈다고 한다.
어쩌면 가벼운 대화 주제가 될 수도 있지만 부끄러움을 느낀 그는 우물쭈물해버렸고 얼굴도 발갛게 달아올랐다고 한다. A씨는 "그닥 친하지도 않은 많은 사람들 앞에서 사랑하는 사람의 존재를 말해야 하는 것이 부담스러웠다"며 "불편한 질문이라 제대로 답하지 못했는데 떳떳하지 못한 사람처럼 보였을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이어 "같은 사무실 사람이라도 사생활 관련 질문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생활 질문을 받아 곤혹스런 직장인은 주변에서 흔하게 찾을 수 있다. 한 제조기업에서 일하는 30대 초반 직장인 B씨는 즐거운 마음으로 여름휴가 계획을 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했던 3년 동안 제대로 가지 못한 해외여행을 떠올리며 휴양지도 꼼꼼하게 알아봤다. 휴가 관련 결제도 문제없이 받은 뒤 들떴던 마음은 "여자친구랑 놀러가냐"는 회사 선배의 질문에 꼬여버렸다.
평소 몇 번 업무 관련 대화를 나눴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맞다"고 답했는데 꼬리를 무는 질문에 진땀을 뺐다. "여자친구를 얼마나 만났냐" "휴가지에 얼마나 있다 올 거냐" "여행지에서 여자친구랑 뭐하고 놀 거냐" 등 이어지는 질문들이 사적 영역의 선을 넘나들었기 때문. 선배의 질문에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지 못했다는 B씨는 "친구나 직장에서 동등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 물었으면 아무것도 대답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답답해했다. 그는 이어 "같은 공간에서 계속 얼굴 보고 일을 해야 하는 상급자가 묻다 보니 웃으면서 답했지만 괴로웠다"며 "이런 것도 직장 내 괴롭힘 같다"고 했다.
사생활 관련 질문은 언뜻 직장 내 괴롭힘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애매한 경계선에 놓인 것처럼 보이지만 전문가들은 분명히 괴롭힘에 해당한다고 진단했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직장 내 괴롭힘은 ①사용자 또는 근로자가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해 ②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③근무 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여야 한다.
돌꽃노동법률사무소 김유경 노무사는 "직장 안에서 특히 상급자의 사생활 질문은 지위상 우위가 작용하고 업무와도 관계가 없다"며 "곤란한 질문을 받는 구성원에게 정신적 고통을 주고 근무 환경도 나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에 명백한 괴롭힘"이라고 강조했다.
직장갑질119는 직장 내 괴롭힘을 세분화해 스물다섯 가지 유형으로 나눴는데 애인이 있는지를 묻는 등 사생활을 침해하는 것은 그중에서 '간섭 괴롭힘' 영역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간섭 괴롭힘은 의복, 생활방식, 가정생활 등 사적 영역에 지나치게 개입하는 것을 의미한다. 박점규 직장갑질119 운영위원은 "애인이 있는지 묻는 것은 개인의 생활 방식이나 가정생활에 끼어드는 것"이라며 "업무상 적정 범위를 벗어나고 타인에게 고통을 주는 직장 내 괴롭힘 유형"이라고 말했다.
비슷한 피해 사례는 다양하게 존재한다. 결혼을 할 생각이 없는 40대 중반 직장인 C씨는 사람들을 만날 때 종종 난처함을 겪는다. 많은 이들이 당연히 그가 결혼을 했을 것으로 생각하고 "아이는 몇 살이냐" "자녀는 몇 명이나 있냐" 등을 묻는다는 것. 그는 매번 "결혼 생각이 없다"고 자신의 가치관을 설명한 뒤 그 이유까지 말해야 하는 상황이 피곤하다. C씨는 "결혼이나 가족계획 같은 질문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토로했다.
회사생활에 직접적인 어려움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 D씨는 "직장 동료들에게 남자친구가 있다는 사실을 알린 뒤 '오늘 금요일인데 남자친구랑 데이트 안 하냐', '휴가는 남자친구랑 같이 가냐' 같은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골치가 아프다"면서 "회사에서 이미지가 망가진 것 같다"며 고개를 저었다. 무엇보다 이성 친구, 연애 관련 질문의 수위가 갈수록 높아지는 것도 큰 스트레스다.
"여자친구, 남자친구 있냐"는 질문에 차별적 인식이 담겼다고 보는 시선도 있다. 질문 자체에 '남자친구나 여자친구가 당연히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깔린 만큼 애인이 없는 사람을 마치 문제 있는 사람처럼 여기는 분위기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30대 직장인 E씨는 "여자친구가 없다고 하면 꼭 돌아오는 질문이 '솔로 기간은 얼마나 됐냐', '연애를 왜 안 하냐'는 것"이라며 "연애 공백기가 긴 사람을 마치 하자 있는 사람처럼 여기는 분위기가 생겨 불편하다"고 말했다.
20대 후반 직장인 F씨도 마찬가지. 그는 "아직까지 연애를 한 적이 없는데 관련 질문을 받을 때마다 사람들이 놀랍다는 반응을 보여 '내가 뭔가 모자란 사람인가'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며 "나는 잘못이 없는데 '연애 경험이 있는 것처럼 거짓말이라도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어 괴롭다"고 하소연했다.
성소수자에겐 정체성과 관련해 상처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동성애자에게 겉모습만 보고 이성 친구가 있느냐고 묻는 것은 한 사람의 성적 가치관을 무시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사생활 관련 질문을 받은 성소수자들이 사회적 시선 때문에 자신의 정체성과 반대되는 대답을 한 뒤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박 운영위원은 "상대방이 특정 성을 좋아할 것이란 전제를 깔고 하는 질문"이라며 "가볍게 던진 질문이라도 누군가에겐 큰 상처가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 같은 고충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결국 직장 내 교육을 통해 인식을 개선하는 것이다. 박 운영위원은 "사생활 관련 질문은 50대 이상 관리자와 젊은 구성원 사이의 인식 차이가 큰 영역"이라며 "사업체 운영자를 만나거나 직장 내 교육을 할 때마다 '상대방 여자친구, 남자친구 얘기 입 밖으로 꺼내지도 말라'고 당부한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가벼운 질문이라도 누군가에겐 관심이 아니라 고통"이라며 "직장에서 정기 교육으로 사생활 존중에 대한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노무사는 "과거에는 사생활 질문이 법 위반이 아니었을 수 있고 관습적인 부분도 있었을 것"이라며 "하지만 사회 분위기가 크게 달라졌고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만들어진 이상 법 위반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교육을 통해 생각을 바꿀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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