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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태 국가를 자처하는 프랑스,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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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16일, 프랑스 파리 국립동양언어문화대학(Inalco)에서 프랑스 국방부와 전략연구재단(FRS) 등 4개 기관 공동주최로 국제회의가 열렸다. 주제는 '인도·태평양 지역의 다자주의'. 참가국은 프랑스와 영국 등 유럽 국가는 물론, 한국·인도네시아·스리랑카 등 아시아 국가, 미국과 호주, 유럽연합, 그리고 중동의 아랍에미리트연합(UAE)까지를 망라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회의와 리셉션에 참가하면서 태평양에서 동떨어진 프랑스가 왜 인·태국가를 자처하고 나섰는지를 알 수 있었던 몇 가지 장면을 소개한다.
# 장면1. 인·태전략 국제회의를 주최한 것은 프랑스 외교부가 아니라 국방부였다. 프랑스는 인·태지역에 8,000명의 병력을 주둔시키고 있다. 뉴칼레도니아와 같은 프랑스령 도서에는 160만 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세계에서 두 번째 규모를 자랑하는 프랑스 배타적 경제수역(EEZ)의 93%가 이 지역에 위치해 있다. 프랑스는 인·태지역에서 영토 방위와 주민 보호라는 명분을 앞세우고, 해양안보와 환경보존이라는 협력의제를 강조한다. 2019년 프랑스가 유럽 국가 중 최초로 인·태전략을 담은 3개의 문서를 발표할 때도 앞장을 선 것은 외교부가 아니라 국방부였다.
# 장면2. 회의장 바깥으로 나오자 누군가 우리 일행에게 다가왔다. 주프랑스 중국 대사관 명함을 내놓은 이 관계자는 느닷없이 프랑스가 인·태지역에 진출하려는 의도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한중 친선관계를 강조하면서 유럽 국가의 인·태진출이 한국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점도 암시했다. 그러나 정작 이 관계자는 회의장에 들어오지 않았다. 주최 측에서 회의 참석을 권했지만 거절했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들었다.
# 장면3. 그날 저녁 회의 참석자들과 외부 초청자들을 위한 리셉션이 열린 곳은 주프랑스 호주 대사관저였다. 에펠탑이 가장 멋지게 보이는 위치를 선택했다는 주최 측 설명은 틀리지 않았다. 에펠탑 불꽃축제가 열릴 때마다 호주 대사관은 파리 주재 대사들을 초청해 볼거리를 제공한다. 그러나 더 중요한 이유는 숨겨져 있었다. 질리안 버드 호주 대사는 아세안 초대 대사와 유엔 대표부 대사를 지낸 중량급 외교관이다. 프랑스와 호주 간 양자관계의 무게감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호주와 프랑스의 관계가 처음부터 좋았던 것은 아니다. 프랑스가 태평양에서 핵실험을 벌이고 호주 웨스트 퍼스의 프랑스 영사관이 폭탄테러를 당했던 것이 1995년의 일이었다. 인·태시대를 항해하는 프랑스와 호주는 과거사를 뒤로 하고 한 단계 높은 전략적 파트너십을 추구하고 있다. 리셉션장에서는 프랑스 정부가 내년에 인도와 일본에서 인·태국제회의를 개최하겠다는 구상이 공개되었다.
# 장면4. 리셉션에서 아시아계로 보이는 젊은 여성을 만났다. 프랑스 국회의원 보좌관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여성은 프랑스령 폴리네시아 출신이었다. 얼굴을 본 적 없는 중국 광둥성 출신의 증조할아버지가 강제노역을 위해 태평양의 외딴섬에 실려 오면서 프랑스는 그녀의 모국이 되었다. 중국에는 가본 적이 없다. 휴가를 얻으면 남태평양의 고향에 간다. 로스앤젤레스를 경유해 꼬박 24시간이 걸리는 여정이다. 프랑스가 추구하는 인·태전략에는 식민지 시대의 역사가 배태한 슬픔도 한편에 자리를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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