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관객은 있는데 만날 곳이… 김태한·김성호에게 '목마른 무대'

입력
2023.06.26 10:00
20면

편집자주

20여 년간 공연 기획과 음악에 대한 글쓰기를 해 온 이지영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이 클래식 음악 무대 옆에서의 경험과 무대 밑에서 느꼈던 감정을 독자 여러분에게 친구처럼 편안하게 전합니다.

4일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성악 부문에서 우승한 바리톤 김태한이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수상 소감을 밝히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제공

4일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성악 부문에서 우승한 바리톤 김태한이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수상 소감을 밝히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제공

'2023 교향악축제'가 막을 내렸다. 평소 궁금했던 협연자, 지휘자, 교향악단, 레퍼토리 조합으로 공연을 찾은 사람들 덕분에 6월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은 분주했다. 이 기간 중엔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우승한 바리톤 김태한과 BBC 카디프 싱어 오브 더 월드 2023(카디프 국제 성악 콩쿠르) 가곡 부문 우승자인 테너 김성호의 뉴스도 연일 화제였다. 엄청난 승전보가 들려온 가운데 교향악축제 총 17개 교향악단 공연 중 성악 협연자의 무대가 단 한 번뿐이었다는 점이 눈에 띄었다.

교향악축제가 끝나갈 무렵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는 국립오페라단의 '일 트로바토레'가 무대에 올랐다. 소프라노 서선영, 테너 국윤종, 바리톤 이동환 등이 출연해 최고의 기량과 연기를 펼치며 감동과 감탄의 무대를 만들었다. 이 공연은 지난 5월 4일부터 6월 25일까지 4개 극장에서 열린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의 마지막 무대였다. 교향악축제와 비슷한 맥락의 오페라 축제로 볼 수 있지만 참가 단체는 국립오페라단을 제외하면 모두 민간단체였다. 지자체마다 교향악단과 합창단이 있지만 아쉽게도 안정적 운영이 가능한 한국의 공공 오페라단은 국립, 서울시, 대구시, 광주시 네 곳뿐이다.

테너 김성호가 16일 영국 웨일스 카디프의 세인트 데이비드홀에서 열린 'BBC 카디프 싱어 오브 더 월드 2023' 가곡 부문 결선 무대에서 열창하고 있다. BBC 카디프 콩쿠르 페이스북 캡처

테너 김성호가 16일 영국 웨일스 카디프의 세인트 데이비드홀에서 열린 'BBC 카디프 싱어 오브 더 월드 2023' 가곡 부문 결선 무대에서 열창하고 있다. BBC 카디프 콩쿠르 페이스북 캡처

소나타나 협주곡을 연주하는 기악은 교향악단과 어우러진 콘서트홀이 주무대지만 성악은 오라토리오나 가곡 리사이틀을 제외하면 무대, 연기, 연출, 조명, 의상을 갖춰야 하는 오페라극장이 주 무대다. 일반 콘서트와 비교해 오페라는 제작비는 물론 공연 준비 기간도 훨씬 더 많이 필요하다. 언어가 포함된 성악은 추상예술로서 음악을 감상하고 싶은 이들에게 조금은 다른 형태의 이해를 요한다. 매우 구체적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에 음악과 함께 전하고 싶은 내용을 직접적으로 인식하게 해 주지만 시대와 문화, 사고, 감수성이 현재 관객의 그것과 충돌할 때가 많다. 음악적 상상력만으로는 공감이 어려울 때가 있고 내용을 이해하고 즐기려면 배경지식과 안목과 시간이 필요하다. 이런 이유로 해외에서도 성악보다는 기악 공연에 관객이 더 많지만 그래도 성악가들의 무대는 턱없이 적고, 오페라단 예산은 허덕일 만큼 부족하다.

"고군분투하는 사립단체들은 실력 있는 가수들을 수용하기에 벅차 보입니다. 스타를 소개하고 배출하는 순수 성악계의 무대는 요원해 보이다 보니 성악가들은 TV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인지도를 올리고 있죠." 서울시오페라단장을 지낸 연출가 이경재의 말이다. 각종 노래 경연 프로그램은 전 국민을 들썩이게 할 만큼 인기가 많고 세계적 오페라극장에서 한국인 전속 가수를 찾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가수와 관객은 있는데 이들을 이어 줄 접점과 무대는 왜 없는 것일까.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무대에 섰던 유명 성악가가 한국에서 자신을 알리기 위해 KBS '열린음악회' 출연이 꿈이라고 했던 말은 농담이 아니었다.

오페라 '일 트로바토레'에서 루나 백작 역의 바리톤 이동환과 레오노라를 맡은 소프라노 서선영이 열연하고 있다. 국립오페라단 제공

오페라 '일 트로바토레'에서 루나 백작 역의 바리톤 이동환과 레오노라를 맡은 소프라노 서선영이 열연하고 있다. 국립오페라단 제공

최근 성악 분야에 대한 지원과 후원, 협의와 새로운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는 자각과 함께 정책자들이 나섰다. 어떤 변화가 이뤄질지 기다려봐야겠지만 기존의 오페라단, 지자체 산하 합창단의 정체된 활동에도 개혁이 필요하다. 수장에 따른 역량 차이가 크게 보이는 부분은 기획력과 정성과 실력에 따른 캐스팅이다. 부천시립합창단과 몇몇 단체를 제외하면 음악 애호가 입장에서 궁금하지도 않고 찾고 싶지도 않은 맥락 없는 무대가 너무 많다. 성악가들이 스스로 무대를 만들기 위해 TV 경연 프로그램 '팬텀싱어'를 찾는 이유도 그래서가 아닐까.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2003년 교향악축제는 '젊은 거장'이라는 타이틀과 함께 10대 손열음부터 30대 박종훈까지 젊은 연주자들을 무대에 세웠다. 객석 절반도 채우지 못한 경우도 많았지만 기업의 안정적 후원과 스타 연주자들의 다양한 시도로 지인이 자리를 채워주는 음악회는 사라지고 애호가가 찾고 싶은 무대로 자리매김했다. 매해 경연처럼 펼쳐진 축제는 지자체 교향악단을 발전시키고 알리는 기회가 되며 선순환을 가져왔다. 이경재 연출가의 말처럼 이제 성악가들을 위한 새로운 기획도 절실하다.

"순수 음악에 관심 있는 관객들을 타깃으로 하는 친화적 프로그램이 기획돼야 세계적 성악가들을 만날 창구가 생깁니다. 기악 연주자들처럼 기대주들을 위한 무대도 꾸준히 만들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죠. 다양한 문화 콘텐츠로 넘쳐나는 현대 관객들에게 오페라는 생소한 장르가 아니라 새로운 장르로서 감동을 전하는, 저력이 있는 콘텐츠이기 때문입니다."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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