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청년들 "팔다 남은 음식이 어때서?"...'잔반 블라인드 박스' 인기

입력
2023.06.25 11:00
수정
2023.06.25 11:06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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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기한 직전 음식, 청년층서 인기 끄는 이유는

중국의 한 네티즌이 인터넷에 자신이 구입한 '잔반 블라인드 박스' 안의 내용물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 중국에선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음식을 모아 놓은 잔반 블라인드 박스가 청년층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바이두 캡처

중국의 한 네티즌이 인터넷에 자신이 구입한 '잔반 블라인드 박스' 안의 내용물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 중국에선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음식을 모아 놓은 잔반 블라인드 박스가 청년층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바이두 캡처

먹는 일이라면 '대충'이 없는 중국에서 ‘잔반 블라인드 박스(剩菜盲盒)’가 인기를 끌고 있다. 유통 기한이 얼마 남지 않아 제값에 팔기 어려운 음식이나 재고로 남은 식품을 재포장한 것으로 청년들이 주로 찾는다. 내용물을 제대로 보이지 않게 포장한다는 의미에서 '블라인드 박스'라는 이름이 붙었다. 긍정적으로 보자면 '실속 소비'지만, 구직난에 한 푼이라도 아껴야 하는 청년들의 서글픈 자화상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중국 현지 매체 차이나뉴스위클리는 최근 "요식 업체들이 팔지 못한 음식을 상자에 담아 저렴한 값에 제공하는 잔반 블라인드 박스가 새로운 식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고 보도했다.

가성비 앞세운 잔반 시장..."2년 뒤 7조원 시장"

중국의 한 요식업체 직원이 잔반 블라인드 박스를 포장하고 있다. 웨이보 캡처

중국의 한 요식업체 직원이 잔반 블라인드 박스를 포장하고 있다. 웨이보 캡처

중국 온라인 상거래 플랫폼인 타오바오에 따르면 연간 210만 명이 타오바오에서 잔반 블라인드 박스를 구입하고 있으며, 지난해 337억 위안(약 6조1,100억 원) 규모의 시장을 형성했다. 2025년 무렵에는 401억 위안(약 7조2,700억 원)으로 시장 규모가 더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잔반 블라인드 박스의 매력은 단연 '가성비'다. 베이징에 사는 20대 청년 허시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검색해 19.9위안(약 3,600원)짜리 초밥 도시락을 발견했다. 정가는 50위안(약 9,000원)이지만,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아 30%나 싼 가격에 초밥 도시락을 먹을 수 있게 됐다. 허시는 "베이징에선 19위안으로 국수 한 그릇도 사 먹지 못하는데 그럭저럭 괜찮은 초밥 도시락을 건졌다"며 기뻐했다.

또 다른 청년 류창도 온라인 상거래 애플리케이션(앱)에서 27.9위안(약 5,000원)에 판매되는 잔반 블라인드 박스를 구매했다. 상자를 열어보니 큼지막한 도넛 4개가 들어 있었다. 해당 업체에서 제 돈 주고 샀다면 49위안(약 8,800원)어치다. 류창은 "20위안이나 아꼈다"며 흡족해했다.

"친환경적 문화" 호평 속 "청년층 경제난 자화상일 뿐" 지적도

지난해 6월 중국 후베이성 우한에 있는 화중사범대학에서 9,000여 명의 졸업생들이 졸업식에 참석하고 있다. 우한=AFP 연합뉴스

지난해 6월 중국 후베이성 우한에 있는 화중사범대학에서 9,000여 명의 졸업생들이 졸업식에 참석하고 있다. 우한=AFP 연합뉴스

유통 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음식을 싸게 판매하는 것 자체가 새로운 마케팅 기법은 아니다. "한 그릇을 먹어도 갓 요리한 뜨끈한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한 중국에선 이례적인 일이다. 현지 매체 상관뉴스는 "버려지는 음식을 줄이려는 요식 업계의 노력과 실속을 추구하는 청년 세대들의 요구가 맞아떨어진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중국 언론들은 대체로 "친환경적인 문화"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반면 대만 중앙통신은 "잔반 블라인드 박스의 주요 고객은 고용되지 못해 수입이 없는 청년들과 농민공(농촌에서 도시로 이주한 주민)"이라고 꼬집었다. 지난달 중국 청년실업률은 20.8%로 사상 최고치를 찍었다. 구직난에 시달리며 도시 생활을 힘겹게 이어가고 있는 청년들이 돈을 아끼기 위한 방편일 뿐 친환경적이라는 평가는 아전인수 격 해석이라는 것이다. 잔반 블라인드 박스 정보를 주고받는 커뮤니티의 한 네티즌은 "실직 이후 어느새 잔반 블라인드 박스가 나의 주식이 됐다"고 한탄했다.


베이징= 조영빈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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