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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팅커벨', '러브버그'...지구온난화에 국내도 '돌발 해충 습격' 늘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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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량 행렬이 이어진 도로가 순식간에 검게 변했다. 주변 나무와 건물들도 어둡게 물들었다. 지난 16일(현지시간) 미국 네바다주 엘코시 도로와 주택가가 갑자기 대거 출몰한 '모르몬 귀뚜라미'로 뒤덮였다. 이날 지역 주민들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귀뚜라미 떼에 습격당한 도시의 모습이 속속 올라왔다.
엘코시에 대거 출몰한 모르몬 귀뚜라미는 여칫과 곤충이다. 성체의 크기는 3.8~5㎝로, 날지 못하고 땅바닥을 기거나 뛰어다닌다. 건조하고 뜨거운 기후에서 잘 번식하는데, 최근 미국 서부 지역 가뭄으로 기온이 오르면서 개체수가 늘어났다. 모르몬 귀뚜라미라는 이름은 1800년대 유타주에서 모르몬교도들이 정착한 지역에 떼로 출몰해 경작지를 망쳤던 사건에서 유래됐다.
모르몬 귀뚜라미가 떼로 나타나면 농작물 피해가 크다. 개체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 토양 침식과 수질 악화 등으로 생태계에 악영향을 줄 수도 있다. 서로를 공격하는 습성도 있다.
곤충이 떼로 나타나 도시를 습격하는 것은 미국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국내에서도 해충들이 도시에 대거 출몰하는 경우가 잦아지고 있다.
지난달 서울 송파구 잠실경기장 일대에 등장한 '동양하루살이'가 대표적이다. 하루살이과 곤충인 동양하루살이는 몸통이 20~30㎜에 불과하지만 날개를 펼치면 50㎜에 이른다. 날개가 크고 화려해 '팅커벨'로도 불린다. 낮엔 풀숲에 서식하다 밤이 되면 불빛으로 날아든다. 이 때문에 환한 조명이 켜진 야구장이 동양하루살이로 하얗게 뒤덮였다. 수백만 마리가 야구장으로 몰려오면서 선수들의 시야가 가려져 경기에 차질이 빚어지고, 관객들은 공포에 떠는 소동이 벌어졌다.
동양하루살이는 한강 수질 개선으로 산란 환경이 크게 좋아져 크게 늘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또 수온 상승으로 이 벌레의 유충을 먹고 사는 물고기가 줄고, 개구리 등 천적이 감소해 개체수가 급증했다고 한다.
최근에는 서울 은평구와 마포구, 종로구 일대 ‘러브버그’(사랑벌레)가 대거 출현해 문제가 되고 있다. 지난해에도 경기 고양시와 인천 등에서도 떼로 발견됐다. 러브버그는 독성이 없고 질병을 옮기지도 않아 사람에게 해롭지 않지만 짝짓기 기간 무리 지어 다니고, 대거 출몰할 경우 공포심을 유발할 수 있다.
곤충들이 한국에서 무리지어 나타난 건 최근의 일만은 아니다. 2014년 늦여름 전남 해남군 일대 친환경 간척 농지에는 풀무치류가 떼지어 나타났다. 풀무치류는 벼에 달라붙어 잎과 줄기, 수확을 앞둔 낟알까지 갉아먹어 피해가 컸다. 당시 기온이 오르고, 비가 많이 내리지 않은 건조한 환경이 개체수 증가에 영향을 미쳤다. 또 농약을 살포하지 않은 친환경 농지도 개체수 증가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했다.
환경 변화로 자생종 개체수가 급격히 늘어나기도 하지만, 국내 생태계에 천적이 없는 외래종이 유입되는 경우가 더 많다. 중국 등에서 기류를 타고 날아드는 비래(飛來) 해충이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무역 등 국제 교류가 늘어나면서 물동량 이동에 따라 해충이 국내로 반입되기도 한다.
비래 해충의 대표적인 사례가 열대거세미나방이다. 2019년 6월 13일 제주 옥수수 농가 포장에서 처음 발견된 이 곤충은 주로 아메리카 대륙의 열대·아열대 지역에서 서식한다. 이 나방은 중국 남부(운남성, 광서성, 광동성), 동남아(베트남, 라오스) 등 따뜻한 지역에서 연중 서식 가능하고, 우리나라의 추운 겨울을 나는 것이 불가능한 점을 고려하면 매년 다시 기류를 타고 날아들어와야 국내 출몰이 가능하다(농촌진흥청)는 분석이다. 박홍현 농촌진흥청 작물보호과 연구관은 “2019년 이후 국내에 4년 연속 출현해 올해도 작물 피해가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해충 유입을 막기 위해 정부 및 학계는 다각도의 노력을 펼치고 있다. 국경을 넘나드는 교역이나 물동량에 따른 검역은 농림축산검역본부가, 기류 등을 통해 유입되는 비래 해충에 대한 대응은 농촌진흥청에서 각각 맡고 있다.
검역본부에서는 △국가 간 검역과정에서 검출된 금지병해충 정보 교류 △공항ㆍ항만, 수입된 날부터 1년 이내인 수입식물재배지역, 수출단지 내 수출식물재배지역, 격리재배지역에 대한 예찰조사 △국내 유입이 확인된 외래병해충 중 위험도가 높은 종을 대상으로 유입요인 파악 및 확산방지를 위한 역학조사를 하고 있다. 농촌진흥청도 전국 140여 곳에 설치한 포획 장치를 활용한 현장 조사를 상시 실시하고 있다. 또 과거 유입된 비래 해충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해, 해충으로 인한 작물 손실과 농작물 품질 저하 등을 최소화하기 노력 중이다.
이준호 서울대 명예교수는 “돌발 해충이 문제가 될 가능성은 상존한다”면서 “가장 큰 문제는 어떤 해충이 우리나라에서 문제가 될 것인지 등에 대한 예측 연구나 검토 연구가 현재 여건상 쉽지 않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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