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여름을 기다렸던 음악가가 있다. 사람들이 더위로 기진맥진할 때 외려 창작의 봇물을 터뜨렸는데 영화 '헤어질 결심'에 등장하는 '아다지에토'의 작곡가 구스타브 말러(Gustav Mahler)가 그러했다. 심지어 그는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가장 바쁜 음악가였다. 빈 국립 오페라단과 빈 필하모닉을 동시에 이끌었던 막중한 임무를 지니고 수많은 단원, 성악가들과 복닥거리며 살았다. 늘 빽빽한 스케줄을 소화했으니 본업인 작곡가보다 지휘자란 감투가 우선이었다. 그러므로 말러에겐 극장이 문을 닫는 비시즌이 너무나 소중했다. 해마다 여름이 오면 북적거리는 도시를 떠나 한적한 시골로 향했고, 거대한 악단을 이끄는 지휘자의 무거운 부담에서 해방되어 오로지 작곡에 몰입할 수 있었다.
1901년, 41세 중년에 접어든 말러는 뵈르트 호수(Wörthsee)가 위치한 마이에르니히(Maiernigg)의 여름 별장에 머물며 작곡에 매진한다. 여름의 일상에 스민 말러의 창작 루틴은 다음과 같았다. 오전 6시에 일어나 작은 오두막에서 작곡에 집중했고, 정오 무렵엔 호수에서 수영을 즐기는가 하면, 오후엔 숲속을 산책하며 대도시의 치열한 일상에 병든 심신을 치유했었다.
말러의 삶과 작품은 강한 결속으로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작품으로부터 개인사를 분리시키는 여타 작곡가와는 사뭇 다른 경향이라 하겠다. 교향곡 5번의 4악장 '아다지에토'도 말러가 겪었던 일상적 사건이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다. 1901년 2월, 말러는 심각한 장출혈로 목숨을 잃을 뻔한 위기를 겪는다. 하루에 2개의 중요한 공연이 연달아 잡혀있었는데 오후엔 빈 필의 브루크너 5번을 지휘하고 저녁엔 오페라 극장에서 모차르트의 마술피리를 이끌어야 했다. 무리한 강행군은 내장에 탈을 일으켜 위험한 수술까지 받게 된다. 그렇게 심신의 에너지가 고갈되던 중 우연히 한 여인을 만나게 된다. 알마 쉰들러, 지인이 주선한 모임에서 마주친 이 여인 덕택에 말러는 다시 충전의 실마리를 찾게 되고 운명적 사랑에 빠져버린다.
말러보다 19세나 어린 알마는 미술과 음악에 재능을 드러내며 빈 사교계 화제의 중심으로 떠오른 여인이었다. 사랑의 감정으로 달뜬 말러는 4악장 아다지에토를 작곡해 알마에게 전달한다. 아무런 언어 없이 음표로만 새긴 사랑 고백은 악보를 가장한 연애편지와 다름없었다. 일체의 관악기와 타악기를 배제한 채 현악기군과 하프만으로 자아내는 몽환적 울림은 말러가 악보에 직접 지시했듯 seelenvoll(영혼이 가득한) 악상으로 구현된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아다지에토의 제2주제가 지닌 독특한 연결고리이다. 저음역에 짙게 드리운 선율은 뤼케르트 시에 의한 가곡 '나는 세상에서 잊혀졌네(Ich bin der Welt abhanden gekommen)'와 음악적 결속력을 갖고 있다. 여름의 새벽, 작은 오두막에서 창작된 바로 그 선율이다. 가곡에서 성악가가 "나는 나의 천국에서, 사랑에서, 노래 속에서 홀로 산다"라 노래하는 구간이 교향곡 5번의 아다지에토에선 첼로와 더블베이스의 저음역 현악기군에 뿌리내린다. 두 작품을 연이어 들어보면 서로 다른 음향으로 구현된 연결고리를 찾을 수 있다. 세상의 혼잡함에서 벗어나 여름의 새벽에 느꼈던 고독과 평화를 투영하는데, 다양한 작품을 접하며 느끼는 음악감상의 매혹은 여기서도 발현된다.
영화 '헤어질 결심'에 등장한 이 몽환적 선율은 우리에게 교향곡 5번의 아다지에토로 친숙하지만, 사실 그 이전 여름의 오두막에서 작곡된 뤼케르트 가곡에서 태동했었다. 통상적인 예술가곡은 피아노가 성악가를 반주하지만 말러는 피아노 대신 오케스트라를 동반자로 삼았다. 덕택에 훨씬 깊이 있고 입체적인 음향을 만날 수 있다. 뤼케르트 가곡에 스민 말러의 여름, 그 오두막의 시간을 교향곡 5번 아다지에토와 연결해 만나보자. 투명하면서도 절제된 서로 다른 음향이 여름의 피로를 충전해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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