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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보고 싶다··· 도시 공해가 된 '정당 현수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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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모르는 선거철이 도래하기라도 한 걸까? 원래 정치 현수막이 이리도 많았던가?’
언제부턴가 거리를 가득 메운 정당 현수막들을 보며 한 번쯤 떠올려봤을 물음이다. 지난해 말 ‘옥외광고물 등의 관리와 옥외광고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옥외광고물법)이 개정·시행되면서 정당은 신고·허가 필요 없이, 수량·장소 제한 없이 현수막을 걸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정당 활동 자유를 폭넓게 보장한다’는 당초 명분과 달리 일방적 주장이나 특정 대상에 대한 비난·조롱, 개인 홍보 등을 담은 형형색색 현수막들이 공공장소에 난립하기 시작했다. 거리의 풍경은 완전히 바뀌었다.
‘시각적 소음’과 ‘메시지 공해’를 유발하고 시민들의 안전까지 위협하는 무분별한 정당 현수막은 전국적인 민원 대상이다. 건축사 김모(32)씨는 "수준 이하의 과격한 내용을 담은 현수막이 거리를 뒤덮으며 도시 경관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법 시행 후 3개월 동안 정당 현수막 관련 민원이 2배 이상 증가했다. 또한 보행자가 현수막에 걸려 넘어지거나, 현수막 끈을 묶은 가로등이 쓰러져 차량이 파손되는 등의 안전사고도 8건 발생했다.
행정안전부는 지난달 8일 정당 현수막 문제를 해결하고자 '정당 현수막 설치·관리 가이드라인 개정안'을 마련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어린이·노인·장애인 보호구역에서는 정당 현수막을 걸 수 없고, 보행자나 운전자의 시야가 가리지 않도록 끈의 가장 낮은 부분이 2m보다 높아야 하며, 가로등(가로수)에 2개 이상 설치할 수 없다.
지난 19일부터 이틀간 은평구, 종로구, 강남구, 서초구, 영등포구 등 서울 8개 구의 정당 현수막 설치·관리 현황을 확인했다. 유동 인구가 몰리는 교차로에 들어서면 예외 없이 정당 현수막이 나타났다. 지하철역이나 백화점, 시장 인근에선 현수막 설치 밀도가 더욱 높았다. 규정을 복수로 위반한 채 버젓이 걸려 있는 정당 현수막도 상당수 확인됐다. 은평구 불광초등학교 인근 A사거리는 어린이 보호구역임에도 불구하고 2개 이상의 정당 현수막이 2m보다 낮은 높이로 가로수 하나에 묶여 있었다.
또한, 현수막을 제작할 때는 정당의 명칭과 연락처, 게시 날짜 등을 현수막 세로 길이의 10% 크기로 눈에 잘 띄게 작성해야 하는데, 대부분 지켜지지 않았다. 대신 후원 계좌번호 또는 국회의원과 지역 당협위원장의 얼굴 사진들이 큼지막하게 자리 잡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수량과 규격에 대한 제한이 없다 보니 특정 정당이 한 장소에만 25개의 현수막을 걸거나(서초구 대검찰청 인근 반포대로), 세로 4m × 가로 10m짜리 초대형 현수막 여러 개가 대로변에 걸리는 경우(강남구 강남역 사거리)도 있었다. 게시 기한을 어긴 정당 현수막도 다반사였다. 어느 아파트 입구에는 지난 총선에서 맞붙었던 지역 국회의원과 타 정당 당협위원장의 현수막이 나란히 게시 기한을 넘긴 채 방치돼 있었다(중구 지하철 6호선 버티고개역 인근 도로).
현재 국회에서는 난무하는 정당 현수막에 대한 규제 기준을 담은 옥외광고물법 재개정안 6건이 발의돼 있다. 가이드라인을 따르지 않던 당사자들이 같은 내용의 법안을 스스로 만들어 통과시킬 수 있을지, 만약 통과된다면 그 법이 온전히 지켜질지는 두고 볼 일이다.
인디언에겐 말을 타고 달리다 '멈칫' 말을 세우고 내려 뒤를 돌아보는 오래된 의식이 있었습니다. 발걸음이 느린 영혼을 기다리는 시간이라고 합니다. [하상윤의 멈칫]은 치열한 속보 경쟁 속에서 생략되거나 소외된 것들을 잠시 되돌아보는 멈춤의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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