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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밋빛 꿈, 동일가치 노동과 동일 임금

입력
2023.06.23 00:00
27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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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오랜만에 노동조합을 대상으로 강의를 했다. 그것도 주로 비정규직, 불안정 노동자, 실업자, 저임금 노동자 등이 조합원인 노조. 그야말로 노동시장의 외부자들로 구성된 노조이다. 강의 제목은 '왜 임금체계 개편이 필요한가?' 이들이 연공급과 직무급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다. 공기업이나 대기업의 노사 간부들은 임금체계 개편의 필요에 대해 늘 미온적이었다.

오후 7시가 되기 직전, 하루 일을 마친 노조원들이 한두 명씩 강의장인 마포의 어느 사무실에 모여들었다. 사회복지사와 같은 저임금 서비스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를 지원하는 센터의 간부도 참여했다. 여성이 많았고 모두 청년이었다.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어떤 역사적 과정을 거쳐 형성되었고, 연공급이 어떻게 해서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부정적인 노동시장 효과를 산출하는지, 초기 직무급이 출현하였을 때 노조들이 어떻게 그것을 임금연대성의 도구로 만들었는지를 설명했다. 동일 직무를 수행하더라도 남녀 간 차별적인 임금을 제공하는 것이 사회적 관습이었을 때 남성이든 여성이든 동일노동을 수행한다면 동일한 임금을 받는 원리를 가진 직무급은 혁명적인 의미를 가졌다고 말했을 때 그들은 놀라워했다. 많은 지식과 숙련, 높은 난이도, 나쁜 근로환경을 요구하는 일을 수행하는 노동자가 높은 임금을 받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말했을 때 그들은 공감했다. 가장 현대적인 직무급의 사례를 소개하였을 때 그들은 우리의 현실과 비교하며 탄식했다.

직무급은 한국의 다국적 기업, 일부 공기업, 일부 민간기업, 공공부문의 공무직 그리고 조선산업의 하청기업, 영화판과 같은 외부노동시장에서 작동하고 있으며 그것이 한국의 노동시장에서 주요 임금체계로 뿌리내리기까지 긴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단번에 한국의 노동시장에 이식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재 집권 여당인 국민의 힘과 더불어민주당이 각각 추진 중인,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을 근로기준법에 명시하는 법안이 만들어져서 정규직과 유사한 노동을 수행할 때 비정규직의 임금이 갑자기 정규직만큼 올라가리라는 희망을 그들에게 말해줄 수는 없었다. 이 원칙을 근로기준법에 명시하는 것으로 비정규직의 임금이 갑자기 상승하는 마법이 일어날 것이라고 도무지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은 남녀차별이나 인종차별 등 차별금지법 속에서 채용되지, 단시간·기간제·파견노동자 등 고용형태의 차이에 의한 처우격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는 거의 채용되지 않는다. 성별과 달리 당사자 간 합의에 의해 결정된 고용형태의 차이를 이유로 하는 임금격차에 관해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명문화한 입법례는 존재하지 않는다.

유럽연합(EU)의 운영조약에서도 "각 가맹국은 동일노동 또는 동일가치노동에 대해 남녀 노동자가 동일한 임금을 받는 원칙이 적용되도록 보장하여야 한다"(157조 1항)고 되어 있다. EU 비정규직 노동 지침이나 회원국의 비정규직법에서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직접 규정하지 아니하고 '합리적 이유 없는 차별 금지'라는 불이익취급 금지 원칙을 규정하고 있다.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해소가 절박한 상태에서 정규-비정규직 간 격차 해소라는 좋은 취지의 입법적 노력을 하고 있는 만큼 전문가들과의 충분한 토의를 거쳐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길 바라마지 않는다.


정승국 고려대 노동대학원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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