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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만에 더 빨리, 더 많아진 '러브버그'의 습격... 박멸만이 능사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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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릉!”
21일 오후 서울 은평구의 한 주택가. 주민들이 산책로로 많이 이용하는 앵봉산과 경계를 맞대고 있어 평소에도 벌레가 많이 출몰하는 지역이다. 이날은 최근 민원이 빗발치는 ‘러브버그(사랑벌레)’ 퇴치를 위해 구청 방역 담당자가 출동했다. 연무기에서 뿌연 살충제가 뿜어져 나오자 검은색 벌레 형상이 또렷이 보였다. 자동차, 건물 벽 등 사방이 러브버그 천지였다. 무심코 팔을 허공에 휘둘러도 한 마리가 어렵지 않게 손에 잡힐 정도였다.
지난해 여름 서울 서북권과 경기 고양시에서 기승을 부린 러브버그가 은평구를 중심으로 다시 등장했다. 생전 처음 보는 벌레가, 그것도 떼로 몰려다니면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급속한 기후변화 여파 탓인지 다른 벌레의 도심 습격도 잦아지고 있다. 그러나 혐오감을 토로하는 주민 등쌀에 밀려 박멸에만 초점을 맞추다간 생태계를 파괴할 수 있어 방역에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은평구청에 따르면, 올해 러브버그 관련 민원은 이날 오전까지 900건 넘게 접수됐다. 지난해 이 벌레 때문에 ‘진땀’을 흘린 마포구와 종로구에도 각각 67건, 30건의 민원이 들어왔다. 자치구들은 민원 규모를 토대로 러브버그가 본격 활동한 시점을 17~19일로 보고 있다. 처음 등장했던 지난해(7월 초)와 비교해 출몰 시기가 열흘 정도 앞당겨진 셈이다.
출몰 범위도 넓어졌다. 박선재 국립생물자원관 연구관은 “경기 고양시와 서울 은평ㆍ마포ㆍ서대문구에 집중된 지난해와 달리, 올해는 관악ㆍ동작구 등에도 러브버그 발견 기록이 있다”며 “동쪽으로 세력을 넓히는 양상”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지난해 2, 3건 민원에 그쳤던 양천구에서는 올해 벌써 8건이 접수됐다.
신종 벌레의 출현에 깜짝 놀란 건 러브버그뿐이 아니다. 지난달 말 잠실야구장 하늘을 하얗게 뒤덮은 동양하루살이, 인천의 한 신축 아파트에서 대거 발생한 혹파리, 목재를 갉아먹어 주택ㆍ가구에 큰 피해를 준 흰개미가 서울 강남에 나타나는 등 벌레나 곤충이 일상을 위협하는 일이 급증하는 추세다.
일단 기후변화가 유력한 원인으로 보인다. 러브버그도 파리 알이 성충이 되기에 적합한 고온다습한 날씨가 빨리 찾아온 것이 확산 배경의 하나로 추정되고 있다. 다만 성급한 판단은 이르다. 박 연구관은 “최근 대출몰은 수도권 등 일부 지역에서 국지적으로 발생 중”이라며 “서식지와 먹이ㆍ천적 자원의 변화 등을 수년간 추적해야 실상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살충제를 대거 뿌리는 식의 방역만이 능사일까. 전문가들은 고개를 가로젓는다. 무차별 방역은 벌레의 개체 수를 조절해 줄 포식자 감소로 이어지고 생태계 전반에 악영향을 미친다. 파리의 일종(붉은등우단털파리)인 러브버그 역시 사람한테 피해를 주지 않고, 썩은 식물을 섭취한 뒤 분해하는 역할을 한다. 환경을 정화하는 ‘익충(益蟲)’인 셈이다. 정부희 한국곤충연구소 박사는 “장기적으로 사마귀, 딱정벌레, 지네 등 천적을 기르거나 병원성 미생물, 곰팡이 등을 활용하는 생태 친화적, 중장기적 방제 방안이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지자체들도 올해는 좀 더 신중하게 대처하고 있다. 은평구청은 산에 직접 살충제를 살포하는 대신 주민들에게 러브버그의 특성을 알리고 자체 대처 방법(분무기로 물 뿌리기 등)을 설명하는 유인물을 배포하고 있다. 마포구청 관계자도 “생태계 교란을 초래하지 않는 수준에서의 방역이 기본 방침”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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