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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휴직 중에도 승진한다… ‘성과 단절’ 없는 세계 최고 SW 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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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100만 명에 달했던 한 해 출생아가 2002년 40만 명대로 내려앉은 지 20여 년. 기성세대 반도 미치지 못하는 2002년생 이후 세대들이 20대가 되면서 교육, 군대, 지방도시 등 사회 전반이 인구 부족 충격에 휘청거리고 있다. 한국일보는 3부 12회에 걸쳐 '절반 세대'의 도래로 인한 시스템 붕괴와 대응 방안을 조명한다.
2016년 미국 소프트웨어 기업 세일즈포스에서 일하는 애비게일 홀링스워스의 배 속에 천사가 찾아왔다. 결혼 10년째를 맞은 홀링스워스 부부에게 임신은 축복과도 같았지만, 부부는 이 희소식으로 인해 고생을 감수할 수도 있다는 걸 직감했다. 아내가 맡은 장기 프로젝트가 한창 진행 중이었고, 당시까지 성과가 꽤 성공적이었기 때문이다. 이대로 잘 이어만 간다면 승진도 기대할 수 있었다. 아이를 낳고 잠시라도 기르려면 '경력·성과 단절'을 피할 수 없는 상황. 내심 '임신이 몇 달 만 늦었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단다.
그렇게 아이를 낳은 홀링스워스는 프로젝트 마무리를 두 달 앞두고 육아휴직에 들어갔다. 원래는 3개월만 쉬려고 했지만, 세 달 만에 복귀해 전과 똑같은 에너지로 일하는 게 어려운 일이란 걸 이내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회사가 보장하는 6개월 휴직을 전부 쓰기로 했다.
다시 찾아오지 않을 가족과의 시간에 전념하기 위해, 커리어를 잠시 포기한 홀링스워스. 때는 연초였고, 아직 회사로 복귀하지 않고 있던 휴직 기간이었다. 그때 상사로부터 뜻밖의 전화를 받았다. "애비게일, 당신은 작년 한 해 놀라운 성과를 보여줬어요. 승진을 축하합니다." 휴직 전에 보여준 10개월의 성과를 인정받아, 시니어디렉터(팀장급)로 진급했다는 소식이었다.
15일(현지시간) 샌프란시스코 세일즈포스 본사에서 한국일보와 만난 홀링스워스는 "아이가 태어났다는 사실이 내가 이전까지 이룬 성과를 깎아내리지 않았다"며 임신·휴직·복직으로 이어진 당시 상황을 돌이켰다. 육아휴직 중에 승진한 것이 놀랍다는 반응에, 그는 "세일즈포스엔 이런 사례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육아휴직 때문에 불이익을 받아선 안 된다.' 이 당연하면서도 당연히 지켜지지 않는 원칙이, 세계 최고의 고객관계관리(CRM) 소프트웨어 회사에선 상식으로 통하고 있다.
직원 복지가 뛰어나기로 소문난 실리콘밸리에서도 육아휴직 중 승진은 흔치 않은 일이다. 세일즈포스도 이런 '예외'를 '일상'으로 만들기까지 꽤나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①출산·육아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제도를 만들고 ②이를 실제 쓸 수 있도록 장려하며 ③제도를 이용했을 때 아무 불이익이 없다는 것을 지속적으로 증명해 보였다. 이 세 가지가 세일즈포스에 '성과 단절'이 없는 비결이라고 홀링스워스는 말했다.
세일즈포스는 시가총액이 260조 원에 달하는 기업용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전 세계 약 8만 명의 직원을 두고 있다. 올해로 9년째 세일즈포스에 근무하는 홀링스워스는 지금 글로벌 복지 제도를 총괄하는 부사장을 맡고 있다.
사실 미국은 육아휴직을 위한 국가적 지원 쪽에서는 오히려 한국보다 부족한 나라다. 육아휴직을 유급으로 할지 말지를 각 사업주가 자체적으로 결정한다. 이 때문에 출산·육아로 휴직하는 많은 직장인들이 무급을 감수한다.
그러나 세일즈포스는 직원들에게 최대 26주의 유급 육아휴직을 보장하고 있다. 성별에 관계없이 주 양육자는 26주까지 휴직할 수 있다. 휴직 후 최대 4주 동안은 주4일 근무가 가능하다. 직장에 서서히 적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취지다. 또 출장을 가면 집까지 모유를 배송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출산 용품 및 아기 용품 구입액 일부도 지원한다.
육아휴직 중 승진을 했던 홀링스워스는 이 제도를 직접 조직한 주인공이다. 다만 그는 "제도는 만드는 것 못지않게 실제로 쓰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제도가 서류로만 존재하지 않도록, 누구나 이를 실제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게 핵심이란 것이다.
그렇다면 육아하는 직원이 '불이익을 받지나 않을까' 걱정하지 않고 휴직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은 뭘까. 그의 대답은 간단했다. "아이가 없는 사람도 눈치 보지 않고 휴직하는 것"이다. 세일즈포스는 그래서 △출산·육아하는 여성 △아이를 갖고 싶은 예비 부모 △대리모를 통해 아이를 낳고 싶은 여성 △아이를 입양하려는 남성 △사춘기 자녀를 둔 남성 등을 위한 맞춤형 지원책을 갖추고 있다. 홀링스워스는 "미국 내 세일즈포스 직원은 대리모나 입양과 관련된 비용에 대해 최대 4만 달러(약 5,100만 원)를 환급받을 수 있다"며 "실제로 아이를 원하던 성소수자 직원이 회사에서 비용 일부를 지원받아 딸을 입양하고, 24주 간 육아휴직을 사용한 사례도 있다"고 소개했다.
세일즈포스의 지원은 자녀 관련으로만 국한되지 않는다. 아픈 부모를 돌보려는 구성원, 자신의 마음을 치유하려는 구성원도 예외가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돌보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필요한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사실상 모든 사람이 지원 대상이 될 수 있기에, 육아휴직이 특혜나 역차별로 비칠 여지가 아예 없다.
홀링스워스는 "세일즈포스는 육아휴직 중 승진한 사례, 회사의 지원을 받아 가족 부양의 부담을 던 다른 동료들의 일화 등을 구성원들에게 적극적으로 공유한다"며 "그래야 누구나 나를 위한 제도를 인지하고 온전히 누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제도가 있으니 쓰라'고 말만 할 게 아니라, 실제로 쓰는 사례가 주변에서 계속 나와야 '쓰는 문화'가 자연스럽게 정착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회사 리더급들이 '솔선수범'하는 것이라고 그는 조언했다.
"세일즈포스 직원들은 저를 보면서 생각할 거예요. '부사장도 하니까, 나도 할 수 있다'고요." 이런 사례를 자꾸 공유해야, 자신의 특별한 경험이 '특별한 사례'로 남지 않을 것이란 조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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