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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삼 다짐해 보는 과묵형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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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내가 누군가를 싫어한다고 할 때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이기적이거나 잘난 척이 심해서 다른 사람에게 모멸감을 느끼게 하는 사람이 대표적이다. 쓸데없이 남의 말을 옮기고 다니는 사람,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 사람도 싫다. 그리고 갑자기 나타나 세상 제일 친한 친구가 될 것처럼 접근하다가 뭐 하나 틀어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쌀쌀맞게 돌아서는 사람이 제일로 싫다.
물론 살아가면서 싫어하는 사람보다 좋아하는 사람이 더 많아야 행복하다는 것쯤은 나도 안다. 그래도 싫은 건 어쩔 수 없다. 며칠 전에도 아내가 유명한 식재료 중간상에게 주문했던 해산물을 택배로 받으며 "이 사람은 참 싫지만 식재료 품질이 좋아. 내가 당신 좋은 거 먹이려고 할 수 없이 또 주문했다"며 웃었다. 그 사람이 왜 싫으냐고 물었더니 자신의 고객을 셀럽(셀러브리티)과 일반인으로 철저히 나눠서 셀럽들에겐 간이라도 빼줄 태세로 잘하는 반면 그렇지 않은 사람에겐 차갑게 굴거나 은근히 무시한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나에게도 떠오르는 사람이 몇 명 있었다. 강자에겐 약하고 약자에겐 강한 사람, 누가 힘들다고 말하면 나는 더 힘들다고 받아치는 사람, 세상이 언제나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야 직성이 풀려서 '페북을 떠나 있다가 몇 달 만에 돌아왔더니 세상은 나 없이도 잘 돌아가고 있네' 같은 글을 올리는 사람. 쓰다 보니까 싫은 사람 천지인 것 같지만 사실 이런 '악덕'은 겸비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실제 개체 수는 그리 많지 않다.
이렇게 '심각하게' 싫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조금 안타깝게 싫은 사람이 있는데, 바로 말이 많은 사람이다. 한번은 아내와 KTX를 타고 목포로 갈 일이 있었는데 앞 좌석에 앉은 아주머니가 옆의 아주머니에게 끊임없이 얘기를 하고 있었다. 대화의 내용은 '잘난 아들과 그에 어울리지 않는 마음에 안 드는 며느리' 얘기였는데 말이 대화일 뿐, 실상은 한쪽 아주머니의 일방적인 속사포 발언이었다. 내용도 마음에 안 들지만 무엇보다 할머니 혼자 떠드는 목소리가 너무 컸다. 나는 복도로 나가 "선생님. 죄송하지만 조금만 작게 얘기해 주시겠습니까?"라고 부탁을 드렸다. 아주머니가 "아니, 뒤에서도 휴대폰으로 사진 퍽퍽 찍고 그러더구먼!"이라며 항의를 하길래 "저희도 더 이상 스마트폰 카메라를 사용하지 않겠습니다"라고 정중하게 약속을 했다. 아주머니가 얘기를 그치자마자 옆에 앉은 아주머니의 코 고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그 아주머니는 맞장구를 치느라 잠도 못 자고 있다가 우리 덕분에 해방을 맞은 것이었다.
학창 시절에 노래를 좀 하는 편이었는데 나중에 유행한 노래방은 정말 싫어했다. 왜 그런가 생각을 해보니 다른 사람이 노래를 부를 때 그걸 듣기보다는 자신이 부를 다음 노래를 고르느라 다들 선곡표에 얼굴을 처박고 있는 모습이 보기 싫어서였다. 식당이나 버스 안에서도 시끄러운 무리에 가 보면 딱 한 명만 떠들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사람들의 특징은 남의 말을 잘라먹고 제 얘기만 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입은 하나인데 비해 귀가 두 개인 것은 그만큼 듣는 게 중요하다는 조물주의 뜻이라는 말이 있다. 나이 들수록 입은 다물고 지갑을 열어야 한다는 신종 격언도 등장했다. 오늘 낮에 경기 파주 출판단지에 가서 출판사분들과 점심을 먹다가 내가 말을 너무 많이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에 여러 번 숨을 멈추어야 했다. '잘 듣는 사람이 글도 잘 쓴다'고 책에 쓰기까지 한 주제에 여전히 떠들며 살고 있다. 과묵하다는 평을 들을 때까지 당분간 말을 줄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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