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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다… 늙으면 움직이기 힘들겠다는 공포가 든다”

입력
2023.06.20 17:00
수정
2023.07.03 16:42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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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청년 실종 : 1회 포항]

김민지(왼쪽부터) 박은빈 양희연씨가 지난 4월 4일 포항시 북카페 'B급 취향'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다.

김민지(왼쪽부터) 박은빈 양희연씨가 지난 4월 4일 포항시 북카페 'B급 취향'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다.

포항과 경북에서 태어나, 청년이 떠나는 고향을 청년이 살 만한 곳으로 바꾸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세 명의 청년을 만나 그들의 고민과 꿈을 들어봤다.

-자기소개부터 부탁한다.

양희연(북카페 ‘B급취향’ 운영, 이하 양)=포항 토박이로 대구에서 공부하고, 졸업 뒤 노동조합 활동가로 서울과 대구 울산 경주 포항을 오가며 살았다. 노조 일을 그만둔 후 한국을 떠나고 싶은 마음에 신청한 캐나다 워킹홀리데이 비자에 합격했고 그 비용을 마련하느라 카페에서 일했다. 파트타임 알바 생활에 지쳐가던 중 독서 모임에 흥미가 생겼고, 개인적으로 관심 있는 분야의 책을 읽는 모임이 없어서 포항 지역 여성 독서 모임을 꾸렸다. 모임이 안정되고 코로나 사태로 캐나다행도 어려워지면서 2021년 청년의 거점 공간을 만들겠다는 목표로 독립 책방 겸 카페 ‘B급취향‘을 열었다.

박은빈(쉐어라이프 문화기획자, 이하 박)=경북 영덕에서 자라 대학을 포항에서 다닌 것을 포함해 6년째 포항에서 살고 있다. 전공인 언론 분야에서 활동하고 싶었으나, 포항에서 그런 일자리를 찾기 힘들었다. 지금은 청년창업 등 다양한 청년 활동을 돕는 사회적기업인 쉐어라이프에서 문화기획도 하고 소셜벤처 컨설팅도 한다. 문화 기획 쪽에 주로 관심이 있어서 한국 도자기 아트를 상품화하려는 도자기 기업 창업 등을 도왔다.

김민지(창포종합사회복지관 선임사회복지사, 이하 김)=포항에서 태어나 쭉 포항에서 살았다. 현재 복지관에서는 ‘포항청년포럼(디사이드 코리아)’이라는 청년사업을 맡고 있다. 포항 청년을 모으고, 사회 진출과 공동체성 강화를 돕는 역할이다.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지원으로 연간 2억 원 예산으로 청년들과 함께하는 프로젝트 사업을 운영했다. 취업난이나 고된 직장생활에 지친 청년들이 용기를 잃지 않도록, 취업을 위한 교육비 지원은 물론 여행, 봉사활동 등 지역 청년이 하고 싶은 일을 지원했다. 쉬는 여유를 통해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찾도록 돕는 사업이다.

-포항 20대 인구의 남성 대 여성 비율은 58 대 42로 심각한 성 불균형 상황이다. 20대 여성을 만나기 힘드니, 결국 20대 남성도 떠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북카페 ‘B급취향’ 운영 양희연씨

북카페 ‘B급취향’ 운영 양희연씨

양=포항의 직장은 대부분 남성 채용 위주로 구성돼 있다. 여기에는 해병대 부대도 해당된다. 이런 곳에 근무하는 남성을 따라 이주하는 여성도 있으니 젊은 여성의 유입 요인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이주한 여성은 출산과 동시에 경력이 단절된다. 이후 구할 수 있는 직업은 주로 시간제직이다. 요양보호사나 서빙, 안내, 경리 등 남성을 보조하는 역할이다. 결혼하지 않고 아이가 없는 여성은 오히려 남자가 너무 많아서 떠나고 싶다고 말하는 경우도 있다.

김=포항은 작기도 하고 크기도 한 중소도시다. 포스코나 에코프로 등 청년 남성이 취업하기에 좋은 직장이 많다. 하지만 청년 여성들이 봤을 때는 뭐가 있지? 싶을 정도로 취업 방향이 좁고 특히 문화적인 요소가 부족하다.

박=시골인 영덕에서 자라 포항은 도시 느낌이 든다. 제가 알고 있는 포항 거주 여성 중에는 대학에 근무하고 인테리어 디자이너, 영상 기획을 하는 사람도 있다. 물론 같은 직종의 또래 여성 친구를 찾기 어려워 아쉽기도 하지만, 남초 현상 때문에 20대 남ㆍ여가 포항을 떠난다는 건 지나친 일반화로 들린다.

-기획을 위해 비수도권 거주 청년들의 글을 찾아 읽었는데, 느껴지는 주된 정서는 쓸쓸함과 답답함으로 요약할 수 있다. 답답함은 변화가 빠른 수도권과 달리 아무 일도 안 벌어지는 것 같은 소외감이고, 외로움은 마음을 나눌 사람들을 찾기 어려운 것으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여러분도 내가 사랑하는 포항에 있고 싶기도 하고, 떠나고 싶기도 할 것 같은데 어떤지 궁금하다

양=카페를 열기 전에 3년 동안 ‘페미나’(Femina)라는 이름으로 포항 청년 여성들과 독서 모임을 운영했다. 많을 때는 10명까지 모였다. 참석자들은 여성으로 사는 삶 등 고민을 함께 나눌 사람을 찾기 힘들어 외로웠는데, 독서모임에 오면 ‘숨통이 트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참석자 대부분은 방과후 교사, 파트타임 카페 알바 등 임시직이 대부분이라 직업을 찾아 수도권으로 하나둘 떠나 오래 지속할 수 없었다. 그래서 북카페를 열었는데, 온라인 등에서 소식을 접하고 찾아오는 손님들도 거짓말처럼 페미나 모임원들과 비슷한 말을 털어놓는다.

창포종합사회복지관 선임사회복지사 김민지씨.

창포종합사회복지관 선임사회복지사 김민지씨.


김=주변 지인들만 봐도 예술이나 문화 분야에서 일하려는 친구들은 대부분 포항에 자리 잡기 힘들어 수도권으로 떠난다. 나 역시 문화생활을 하기 위해 종종 인근 지역으로 떠나곤 한다. 그런 부분이 보강된다면 떠난 친구들도 고향에서 같이 어울려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포항은 자동차로 20분에서 1시간 정도면 전역을 다 돌 수 있다. 그만큼 청년 네트워킹이 쉬울 수도 있다. 비수도권에 속해 있지만 포항 지역에서 청년 사업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다.

박=같은 세대끼리 공감대를 나눌 만한 장이 없다는 것은 맞지만, 긍정적인 변화도 진행 중이다. 지인이 ‘낫싱(Nothing) 방’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는 방에 모여 자유롭게 책도 읽고 아트클래스도 하고 산책도 하는데 많이들 참여한다. 또 온라인을 통해 마라톤, 농구 등 동호회도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내가 하는 일과 관련해 고민을 나눌 사람을 찾기 어렵다. 그래서 서울보다 트렌드를 따라잡기 쉽지 않을 때 떠나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양=나를 떠나고 싶게 만드는 이유 중 하나는 빈약한 대중교통이다. 버스를 놓치면 15분 이상 기다려야 한다. 저상버스도 턱없이 부족해 노인이나 장애인은 이용할 엄두도 못 낸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내가 포항에서 늙으면 나도 저런 처지가 되겠다 하는 생각이 든다. 또 아무리 투표해도 내가 원하는 후보가 당선되기 불가능하다는 생각도 떠나고 싶게 만든다. 그래도 마음이 맞는 사람이 포항을 떠날 때 받았던 상처를 생각하면, 비슷한 상처를 받을 동료들 생각에 떠날 결심을 하기 힘들다.

-거창한 지원 사업이 아니더라도, 이거 하나 정도 있으면 청년들이 포항에 남지 않을까 아쉬웠던 것들이 있다면.

양=최근 무리하게 지은 아파트 단지에 공실이 많다. 이런 주택을 청년이나 신혼부부에게 저렴하게 임대했으면 좋겠다.

김=청년들이 실감할 수 있는 지원 정책이나 지역 청년행사가 필요하다. 지역 내에서 청년은 늘 수혜자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아직까지 모든 정책이 기성세대의 눈높이에서 기획되고 시행된다. 세대 간 공감이 부족한 것 같기도 하다.

쉐어라이프 문화기획자 박은빈씨

쉐어라이프 문화기획자 박은빈씨


박=포항은 걸어 다니기 힘든 도시다. 우선 횡단보도 보행 시간이 짧다. 또 도심에는 자전거 도로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 쏘카 같은 공유 자동차 체계도 부족하다. 청년이 쉽게 모일 수 있는 교통 인프라부터 갖춰야 한다.

인터뷰 정리 = 변한나 사원

정영오 논설위원
변한나 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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