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을 방문한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그제 카운터파트인 친강 외교부장을, 어제는 '외교라인 1인자' 왕이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과 '최고 지도자' 시진핑 국가주석을 차례로 만났다. 미 국무장관의 직전 방중이 5년 전 트럼프 정부 시절이었을 만큼 장기간 교착 상태였던 양국 외교 고위급 채널이 다시 가동되는 형국이다. 특히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몇 달 안에 시 주석을 만날 수 있길 희망한다"고 밝힌 가운데 시 주석이 블링컨 장관을 접견하면서 양국 정상회담 연내 성사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치열한 패권경쟁 중인 미중관계가 이번 회동으로 획기적 돌파구를 찾았다고 보긴 어렵다. 그제 있었던 양국 외교장관 회담만 봐도 8시간 가까이 격론을 벌인 뒤 공동 회견 없이 각자 짧은 회담 결과 요약문을 냈다. '규칙 기반 국제질서 수호에 동맹국과 함께하겠다'(미국), '대만 독립을 지원하지 말라고 미국에 요청했다'(중국) 등 양보 없는 입장차도 여전했다.
그럼에도 양국은 소통 채널 필요성에 공감하면서 고위급 교류 지속, 현안 협의 워킹그룹 추진에 합의했다. 근본적 관계 개선은 어렵겠지만, 다양한 경쟁 영역에서 이견을 상시 조율하면서 충돌을 피하고 협력을 모색하겠다는 의미다. 미소 냉전기와 달리 미중이 경제는 물론 기후 등 지구적 현안에서도 깊숙이 얽혀 있어 '협력 없는 경쟁'은 국익에 도움이 될 수 없는 현실이 반영된 결과다.
미중관계가 양국 목표대로 갈등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수준으로 나아간다면 우리에게도 외교적 입지를 넓힐 수 있는 기회다. 악화일로인 한중관계를 개선하고 이를 지렛대 삼아 꽉 막힌 남북 간 외교 공간을 여는 계기로 삼을 수 있다. 물론 이런 성과는 저절로 오는 게 아니다. 우리가 탈중국 대안시장으로 점찍은 중동만 해도 미중 외교전 속에 하루가 다르게 정세가 변화하고 있다. 미중관계 동향을 주시하며 우리 국익을 극대화할 방안을 찾아내는 치밀하고도 유연한 외교 전략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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