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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인된 도박장'에서 누군가 지금 당신의 돈을 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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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되풀이됩니다. 숫자로 표현되는 경제학 역시 오랜 역사를 거치며 정립됐습니다. 어려운 경제학을 익숙한 세계사 속 인물, 사건을 통해 쉽고 재미있게 풀어보려 합니다. 경제 관료 출신으로 울산과학기술원(UNIST) 글로벌산학협력 센터장으로 근무하는 조원경 교수가 들려주는 ‘세계사로 읽는 경제’는 3주에 한 번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자본주의의 꽃인 주식시장에서 뉴턴도 아인슈타인도 한 방을 노리다 훅 가버렸다. 아인슈타인은 노벨상 상금으로 주식 투자를 했다가 대공황을 거치며 투자금의 대부분을 잃었다. 그는 1918년 이혼하면서 부인에게 노벨상을 받으면 상금을 위자료로 주겠다고 했으나 약속을 지키지 않고 돈만 날렸다. 세계적 천재도 주식 시장에서만은 고개를 들지 못한 것이다.
증권의 역사는 인류문화사와 함께 발전했다. 로마시대부터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해 이탈리아를 거쳐 네덜란드에서 꽃피웠다. 공식적으로 최초의 주식회사는 1602년 설립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이다. 16세기 인도 항로와 아메리카 항로가 개척되며 무역으로 엄청난 수익을 얻어 수많은 이가 무역업에 투자했다.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으로 증권 산업은 더욱 발전했다. 오늘날 증권 산업은 자본 시장의 근간이지만, 한편으로는 공인된 도박장이라는 오명을 안고 있다. 4월 ‘소시에테제네랄(SG)증권발’ 8개 종목 무더기 주가폭락 사태에 이어, 14일에도 상장사 5곳이 무더기로 하한가를 기록했다. ‘제2의 SG 사태’가 터진 것 아니냐는 우려 속에서 증권 시장에 오명을 남긴 크고 작은 역사를 살펴봤다.
1815년 6월 18일 워털루 전투는 나폴레옹의 유럽지배라는 망령을 몰아냈다. 영국·프로이센 동맹군과 나폴레옹 군은 워털루 전투에 명운을 걸었다. 영국 정부가 발행한 채권(Gilts)이 승기를 잡았다는 희소식으로 치솟았을 때 런던 증권거래소에서 누구보다 기뻐한 자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네이선 로스차일드로 다국적 금융자본가로 성장한 인물이다. 네이선은 승리를 이끈 영국의 웰링턴 장군이 승전 공문을 갖고 런던으로 향하기에 앞서 비둘기와 전용 쾌속선이란 개인정보망으로 승전 정보를 입수했다. 그는 이후 무표정한 얼굴로 국채를 내다팔았다. 시장에서는 영국이 프랑스에 패했다는 유언비어가 나돌았다. 투자가들이 영국 국채와 주식을 팔자 국채는 액면가의 5% 이하로 떨어졌다. 네이선은 그때 채권과 주식을 사 모은다. 승전 소식이 공식적으로 전해지자 천정부지로 치솟은 증권 가격 덕분에 네이선은 하루 사이에 20배 차익을 얻었다. 영국 채권의 62%를 거머쥔 그는 마침내 영란은행 주식 대부분을 사들였다. 이 얘기는 유대인 음해설이란 주장도 있으나 사실로 보는 게 유력하다.
고전경제의 세계 3대 버블은 네덜란드 튤립버블, 영국의 남해회사 버블, 프랑스의 미시시피 버블이다. 미시시피 버블의 한가운데에 존 로(John Law)라는 스코틀랜드 경제학자가 있었다. 그는 살인혐의로 사형선고를 받고 옥살이를 하던 중 탈옥에 성공, 네덜란드를 거쳐 프랑스로 건너간다. 프랑스에서 중앙은행과 국영회사를 만드는 데 공을 세운 덕분에 프랑스 금융의 책임자로 오른다. 마침내 서인도와 신대륙인 북아메리카 지역의 무역 독점권을 가진 미시시피 회사 경영권까지 손에 쥐게 된다. 그가 세운 은행이 왕립 은행이 되면서 미시시피 회사를 통해 프랑스 동인도회사를 비롯한 여러 무역회사를 흡수해 해상 무역을 독점했다. 로가 신대륙 루이지애나의 경제 가치를 과대 포장하자 본질 가치를 몰랐던 투자가들의 투자 광풍이 이어졌다. 미시시피 회사 주식은 주당 500리부르에서 1만8,000리부르까지 올랐다. 로는 프랑스에서 제일가는 부자 서열에 우뚝 섰고 재무장관 자리까지 올랐다. 그는 미시시피 회사의 주가를 올리려고 화폐를 더 찍어낼 궁리만 했다. 한 건물에 있는 주식 발행 사무소와 은행권 발행 사무소를 왕복하며 돈을 찍어 주가를 올렸다. 요즈음 용어로 내부거래이자 폰지 사기이다. 루이지애나가 벌레가 들끓는 늪지임이 밝혀지면서 루이지애나와의 무역 독점권은 쓸모없게 된다. 미시시피 회사의 주가는 폭락해 휴지 조각이 된다. 로는 프랑스에서 쫓겨나 유럽을 배회하며 도박에 빠져 살다 폐렴에 걸려 사망한다. 이후 프랑스는 급격한 불황에 휩싸이고 혁명으로 이어진다.
2차 대전 이후 세계 금융의 중심이 된 미국에서도 크고 작은 주가 조작 사건이 끊이지 않았다. 가장 유명한 주가 조작 사태는 2001년 있었던 글로벌 에너지 기업 엔론 사례다. 최고경영자(CEO)인 제프리 스킬링은 회사를 문어발식 확장하며 부채를 유령 자회사로 넘겼다. 통신사업에서의 실패, 선물투기, 닷컴 버블과 ‘엔론 온라인’ 사업 실패로 회사는 몰락해 갔다. 당황한 경영진은 외부감사기관인 아서 앤더슨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부실을 숨기고 매출을 조작했다. 하지만 엔론은 130억 달러의 사상 최고 부채를 남긴 채 파산했다. 케네스 레이 엔론 회장은 재판에서 징역 24년 4개월형을, CEO 스킬링은 24년형을 각각 선고받았다. 레이 회장은 재판 중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2003년 스탠퍼드대를 중퇴한 엘리자베스 홈스는 바이오기업 테라노스를 창업했다. 여자 스티브 잡스로 불린 그녀는 손가락에서 채취한 몇 방울 혈액만으로 암을 포함한 240여 개 질병을 진단할 획기적 기기를 개발했다고 홍보했다. 2015년 10월 월스트리트 저널 기자 존 캐리루의 취재와 테라노스 전 직원과 내부고발자의 폭로로 홈스의 주장이 거짓임이 드러났다. 2016년 테라노스는 주식 시장에서 퇴출됐고 45억 달러로 평가받던 홈스의 주식은 휴지가 됐다.
2021년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폰지 사기를 행한 버나드 메이도프 전 나스닥 비상임 회장이 감옥에서 사망했다. 그는 약 38년간 136개국 3만7,000여 명의 투자자들에게 고수익 주식·채권 투자를 권해 175억 달러를 유치했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배우 케빈 베이컨,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작가 엘리 위젤 같은 명사가 그에게 돈을 맡겼다. 500억 달러 수익을 허위 문서로 꾸몄고 새로 유입된 투자자 자금으로 기존 투자자에게 10% 이상의 고수익을 지급했다. 주식이나 채권은 사지도 않았다. 2008년 금융위기로 투자자들이 돈을 돌려달라고 하자 사기 행각이 드러났다. 미국 언론은 메이도프가 옥사 한 직후 ‘지금의 월가는 무엇이 달라졌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우리가 어딘가에서 투자 도사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환상은 어린애 같은 순진한 생각이다. 인생에 한 방을 노리는 사람은 누군가의 먹잇감이 되기에 충분하다. 실제 메이도프에게 돈을 맡겼다가 노후 자산을 모두 잃은 작가 위젤은 "그(메이도프)를 신처럼 믿었다"고 후회하며 말했다.
1조6,000억 원대 고객자산을 빨아들인 라임사태를 비롯해 크고 작은 주가 조작 사건이 우리나라에서도 빈번했다. 암흑 속에서 고감도 나노 센서로 영상을 잡아내는 기술이 상용화될 거라는 가짜뉴스로 주가를 띄운 사건을 보라. 신약 임상 통과란 희망 고문으로 주가 띄우기에 골몰하다 폭락한 바이오 주식은 어떤가. 순진한 사람에게 높은 허위 수익률을 보여주며 1,500억 원을 모아 루보라는 베어링 회사 주식을 매집한 세력의 수법이 더 크게 재현되고 있다. 허위 수익률로 “회원 여러분도 하실 수 있습니다”라고 유혹하는 리딩방의 메시지는 끔찍하다. SG발 주가조작에 투입된 돈은 조 단위로 연예인, 의사를 비롯해 알 만한 기업 오너도 주가 조작 일당에 돈을 맡겼다. 소수의 전주 자금을 모은 전통 방식을 넘어 다단계로 레버리지형 차액결제거래(CFD) 방식까지 동원했다. 하루빨리 당국이 그 전말을 밝혀 더 이상의 피해를 막아야 한다. 중범죄임에도 외국에 비해 솜방망이 처벌을 하는 것을 개선하자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미국 법원이 메이도프에게 내린 형량은 징역 150년이었다.
조원경 UNIST 글로벌산학협력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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