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몬 테크를 아시나요' 월경 문제 해결 나선 디에이엘의 김은하 김한나 공동대표

입력
2023.06.21 04:30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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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월경 유형 분석해 적절한 대처법 알려줘
구독형 서비스로 미국 진출 예정

최근 국내에 생소한 호르몬 테크 연합이 등장했다. 정보기술(IT)을 이용해 호르몬 때문에 발생하는 여성들의 건강을 챙기는 신생기업(스타트업)들의 연합이다. 월경 관리 앱을 개발한 디에이엘컴퍼니, 유기농 생리대를 만든 이너시아, 디스크 형태의 생리컵 제조사 듀이랩스, 질 유산균 검사업체 쓰리제이 등 7개 여성용품 스타트업들이 참여했다. 중심에 선 기업이 연합 결성을 주창한 디에이엘이다. 2021년 디에이엘컴퍼니를 창업한 김은하(26) 김한나(27) 공동대표를 만나 호르몬 테크의 등장 배경을 알아봤다.

김은하(왼쪽), 김한나 디에이엘컴퍼니 공동대표가 서울 세종대로 한국일보사 스튜디오에서 인공지능을 이용해 월경을 관리할 수 있는 '달채비' 앱을 보여주며 설명하고 있다. 안다은 인턴기자

김은하(왼쪽), 김한나 디에이엘컴퍼니 공동대표가 서울 세종대로 한국일보사 스튜디오에서 인공지능을 이용해 월경을 관리할 수 있는 '달채비' 앱을 보여주며 설명하고 있다. 안다은 인턴기자


AI로 여성들도 잘 모르는 월경 문제 분석

김은하 대표는 디에이엘을 여성들의 월경 문제를 해결하는 스타트업이라고 정의했다. "월경, 피임, 여성질환 등 3가지 문제를 하나씩 해결하고 싶어요. 우선 호르몬 변화에 따른 월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생활습관을 개선하는 서비스를 시작했어요. 월경을 기록해 여성 질환과 관련 있는 호르몬 변화를 파악하고 다음 월경일을 예측하며 월경 문제를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서비스입니다."

이를 위해 '달채비'라는 스마트폰용 소프트웨어(앱)를 내놓았다. 김한나 대표는 달채비를 '3초 기록 앱'이라고 설명했다. "3초 만에 이용자의 상태를 기록할 수 있도록 쉽게 만든 앱이죠. 기분, 몸 상태, 성관계 여부 등을 간단하게 이모티콘으로 기록할 수 있어요."

앱을 만든 이유는 많은 여성들이 월경 관련 신체 변화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여성들이 월경 전후, 배란 당일 몸의 변화를 잘 몰라요. 가슴 통증이나 부정 출혈이 있어도 월경 때문인지 근본적 호르몬 변화인지 모르죠. 월경 전후 상태를 기록해 놓으면 앱에서 보내준 보고서를 통해 신체의 이상 징후를 파악할 수 있죠."

앱에 적용된 AI는 다음 월경일도 예측한다. "개인별 호르몬 변화를 분석해 다음 월경일을 AI가 정교하게 예측해요. 월경이 불규칙한 사람은 다음 월경일을 모르거든요. 그래서 AI 예측이 중요해요."

병원들과 월경 MBTI 개발

재미있는 것은 인공지능(AI)을 이용한 월경 유형 검사기능이다. 월경 유형 검사는 성격 유형 검사인 MBTI처럼 월경을 특성에 따라 16가지 유형으로 구분해 보여준다. 김한나 대표에 따르면 월경에 관심 없는 여성들의 주의를 끌기 위한 시도다. "경희의료원, 이대 목동병원과 6개월간 협업해 개발해 비즈니스 특허를 냈어요."

검사 방법은 간단하다. 월경 주기의 규칙성과 월경량, 호르몬 영양도, 질환과 통증 등을 최대 30가지 객관식 질문을 통해 파악한다. "앱에 나오는 문진표에 따라 답을 선택하면 AI가 120가지 데이터 라벨링을 거쳐 월경 유형을 측정해요. 여기 필요한 월경 패턴 데이터를 10만 건 이상 갖고 있죠."

검사 결과는 재미있는 그림과 함께 MBTI처럼 유형별 글자로 표시된다. 여기에 유형별 특징, 의사가 소개하는 대처 방법, 관련 상품 등이 함께 나온다. 예를 들어 '지옥의 활화산'(ISFP) 유형은 호르몬 영향이 심해서 월경이 불규칙하고 양이 많으며 통증이 있다. 이런 경우 의사는 금주와 질 유산균 사용을 권했다. "핵심은 각자의 월경을 재미있게 알자는 것이죠. 5만 명 이용자 가운데 80% 이상이 월경 유형 검사를 해요."

검사 결과에 따라 AI가 유형별로 맞춤형 생리대를 추천해 주기도 한다. 이를 위해 두 대표는 국내 시판 중인 생리대를 모두 사용해 보고 생리대 제조공장 서너 곳을 직접 찾아가 성분 조사까지 했다. "정부 지원 사업으로 확보한 식품의약품안전처 자료를 활용해 생리대 성분을 일일이 데이터 라벨링한 뒤 AI 학습에 활용했죠."

디에이엘에서 개발한 월경 유형 검사 사례. 디에이엘 제공

디에이엘에서 개발한 월경 유형 검사 사례. 디에이엘 제공


"생활 습관 개선으로 월경 증상 바꿀 수 있어"

월경 유형을 파악하고 월경과 생활 습관을 기록하면 불편한 월경 증상을 개선할 수 있다는 것이 김은하 대표의 주장이다. "월경 기록과 식습관, 운동과 수면 자료, 복용 약 등을 기록하면 점수로 바꿔서 보여줘요. 생활 습관 점수가 낮으면 월경에 문제가 생겨요."

김한나 대표는 좋지 않은 생활 습관 때문에 월경이 영향받는 대표 사례로 다낭성 난소증후군을 들었다. "다낭성 난소증후군의 경우 호르몬 변화로 월경이 불규칙하고 여드름이 잘 나며 탈모 증상이 있어요. 병원에서는 피임약을 처방해 주며 스트레스받지 말고 푹 자라고 권고하죠. 우리는 이를 만성 질환으로 보고 생활 습관 개선을 강조하죠."

하지만 날마다 생활 습관을 앱에 기록하고 개선 활동을 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김은하 대표는 보상 제도를 도입했다. "하루 3㎞ 달리기 등 생활 습관을 바꾸기 위한 활동을 하면 현금처럼 활용할 수 있는 포인트를 보상으로 줘요. 포인트로 앱에서 각종 여성용품이나 건강기능식품 등을 구입할 수 있죠. 생리대를 무료로 쓰는 셈이죠. 관련 상품들은 홍보가 필요한 업체들이 제공해요."

김한나 대표는 이용자들의 좀 더 편한 기록을 위해 스마트 손목시계 등 착용형 디지털 기기로 체온, 심박수, 걸음 등을 자동 수집하는 기능을 연내 앱에 넣을 계획이다. "체온으로 월경 주기를 알 수 있어요. 배란 때 체온이 올라가요. 자동 수집을 위해 착용형 디지털 기기를 만드는 기업들과 만남을 가졌어요."

올해 3년 차 된 디에이엘컴퍼니를 이끌고 있는 김은하 공동대표는 여성건강 정보 등 프리미엄 콘텐츠를 제공하는 유료 구독 서비스로 올해 미국에 진출할 예정이다. 안다은 인턴기자

올해 3년 차 된 디에이엘컴퍼니를 이끌고 있는 김은하 공동대표는 여성건강 정보 등 프리미엄 콘텐츠를 제공하는 유료 구독 서비스로 올해 미국에 진출할 예정이다. 안다은 인턴기자


4분기 북미 진출 예정

현재 달채비 앱은 누적으로 5만 명 이상 내려받았다. 이 가운데 월간 이용자 숫자는 3만 명이다. 김은하 대표는 괜찮은 실적이라고 강조했다. "앱을 처음 내놓은 것은 지난해 8월이지만 시험 기간을 거쳐 올해 1월부터 정식으로 알렸어요. 짧은 홍보 기간을 감안하면 많이 사용하는 셈이죠."

관건은 매출이다. 아직까지 매출은 많지 않지만 기업들의 광고를 통해 올리고 있다. 김한나 대표는 매출 확대를 위해 매달 '월경채비단'이라는 이름의 이용자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여성건강에 도움 될 제품을 매달 한 개씩 선정해 이용자들이 무료 체험하고 후기를 올리는 프로그램이죠. 체험단은 무료로 상품을 써보고, 기업들은 유료 광고 기회를 얻죠. 체험단은 월 100명 정도 모집해요."

특이한 것은 이용자 후기에 월경 유형이 같이 표시된다. "같은 유형의 이용자들이 제품을 고를 때 도움이 되도록 월경 유형을 표시해요."

궁극적으로는 매달 앱 이용료를 받는 별도의 유료 구독으로 매출을 올릴 계획이다. 다만 김한나 대표는 아직 국내 시장이 유료 구독 사업을 하기에 충분히 무르익지 않았다고 본다. "유료 구독자에게 정기 진단과 건강 프로그램 등 프리미엄 콘텐츠를 제공할 생각입니다. 4분기 북미에서 먼저 시작하고 국내에서는 시장이 커지면 그때 시작해야죠. 북미는 시장이 크고 콘텐츠를 구독하는 이용자들이 많아요."

그만큼 이들에게는 여성용품 시장이 승부를 걸어볼 만큼 크다. "전 세계 여성용품 시장은 2027년까지 79조 원에 이를 것으로 봐요. 국내 생리대 시장만 해도 1조 원이 넘죠."

이들은 해외 진출 등 사업 확장을 위해 투자를 받고 있다. "스마일게이트인베스트먼트에서 종잣돈으로 1억 원을 투자받았어요. 7억~15억 원을 목표로 추가 투자 유치를 진행 중입니다."

학생창업으로 스타트업을 시작한 김한나 디에이엘컴퍼니 공동대표는 월경박람회와 호르몬 테크 스타트업 연합 등 여성 건강을 위한 활동을 꾸준히 진행할 계획이다. 안다은 인턴기자

학생창업으로 스타트업을 시작한 김한나 디에이엘컴퍼니 공동대표는 월경박람회와 호르몬 테크 스타트업 연합 등 여성 건강을 위한 활동을 꾸준히 진행할 계획이다. 안다은 인턴기자


"생리 아니고 월경" 당당하게 말하자

이화여대 동문인 두 대표는 전공은 다르지만 창업경영수업에서 처음 만났다. 김한나 대표는 경영, 김은하 대표는 환경공학을 전공했다. "기술로 여성의 건강문제를 해결하는 일에 관심이 있었죠. 기술은 발달하는데 왜 월경은 생리대에만 의존하는지 의문이었어요. 마침 각자 월경 때문에 고생한 경험이 있어 이를 해결하고 싶었어요. 교내에서 월경박람회를 개최하며 의기투합해 학생창업을 했죠."

월경을 금기시하는 문화를 깨트려 보려는 생각도 한몫했다. "남녀 불문하고 월경을 성과 관련해 생각하기 때문에 금기시하는 경향이 있어요. 여학교에서도 생리대를 숨겨서 갖고 다녀요. 편의점에서 생리대를 사면 까만 봉투가 필요하냐고 묻죠. 건강 문제인데 부끄럽다고 생각하니 정작 여성들도 알아야 될 것을 모르죠."

김은하 대표는 월경을 생리로 표현하는 것도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생리라는 표현은 월경을 하품처럼 생리현상으로 감추는 표현입니다. 당당하지 못하죠."

두 대표는 주기적으로 월경박람회를 개최하고 탈북 여성 등 소외계층에게 생리대 기부를 하는 등 월경에 대한 인식 개선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사회 구성원들이 월경에 관심이 없으면 바뀌지 않아요. 그래서 매년 11월 월경박람회를 열어요. 사회적 약자의 월경 문제 해결을 위한 기부 및 교육활동도 하죠."

특히 김한나 대표는 80만 건 이상 조회수를 기록한 '채비 백서'라는 월경 영상을 직접 만들고 출연까지 하면서 여학생들 사이에 '월경 언니'로 유명하다. "유튜브, 틱톡 등에 월경 등 여성 건강 정보를 담은 영상을 올리는데 제법 인기를 끌었죠."

호르몬 테크 스타트업 연합도 같은 맥락에서 확대할 계획이다. "좀 더 월경 문제에 집중하고 싶어서 지난달 28일 세계 월경의 날에 호르몬 테크 스타트업 연합을 만들었죠. 여성들이 겪는 월경 문제를 우수한 서비스로 해결해 주는 것이 목표죠. 우리가 관련 스타트업을 모으는 허브 역할을 하고 싶어요. 관련 스타트업들의 기술과 제품을 달채비 앱을 통해 소개할 예정입니다."

최연진 IT전문기자
이가흔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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