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화차' 보고 피해자 옷 입은 정유정, 신분 탈취 노린 듯"

SBS '그것이 알고싶다' 정유정 범죄 분석
피해자 외 접촉한 과외교사에게도 '혼자 사냐' 물어봐

온라인 과외 앱을 통해 처음 만난 또래 여성을 살해한 뒤 시신을 훼손·유기한 혐의로 구속된 정유정(23)이 2일 오전 부산 동래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정유정은 지난달 26일 중고로 구입한 교복 차림으로 부산 금정구 소재 피해자의 집을 찾아가 자신이 중학생이라고 거짓말을 한 뒤 잠시 대화를 나누다 흉기로 살해했다. 부산=뉴스1

온라인 과외 앱으로 만난 또래 여성을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정유정(23)이 여러 과외교사들을 접촉할 때마다 '혼자 사느냐'는 질문을 반복하면서 범행 대상을 물색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피해자의 신분을 탈취하려 범행을 저질렀을 수 있다는 전문가 분석도 나왔다.

17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취재진은 정유정의 범행을 다룬 '밀실 안의 살인자'편에서 계획적 범행을 뒷받침하는 여러 단서를 제시했다.

먼저 정유정은 범행 3개월 전부터 '시신 없는 살인'을 집중 검색했다. 범행 사흘 전에는 긴 머리를 단발로 자르고, 중고로 산 교복을 입어 중학생으로 위장했다.

정유정이 피해자에게 범행을 저지르기 전 여러 사람에게 접촉한 사실도 드러났다. 정유정에게서 먼저 연락을 받았다는 여성 과외교사 A씨는 "대화를 하다가 갑자기 '혼자 사느냐'고 물어봐 흐름이 끊겼다"며 "보통은 상담할 때 그런 흐름으로 (대화를) 안 해서 '어? 이거 진짜 이상하다'는 느낌이 팍 들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과외교사 B씨도 '혹시 혹자 사시나요?' '선생님 댁에서 과외 가능하신지요?' 등의 질문을 받은 문자를 공개하며 "원룸이라 거절하긴 했지만, 투룸이어서 (공간이) 분리됐다면 가는 것보다 부르는 게 더 편하니까 오라고 했을 것 같다"고 안도했다. 이런 증언으로 미루어볼 때, 정유정은 20대 고학력자 중 혼자 살고 자택에서 과외가 가능한 여성을 범행 대상으로 노린 것으로 추정된다.

정유정이 경찰 조사 초기 "피해자의 집에 도착했을 때 이미 누군가 범행 중이었다"며 "그 범인이 제게 피해자의 신분으로 살게 해 줄 테니 시신을 숨겨달라고 했다"고 거짓 주장한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한 심리 전문가는 "당연히 거짓말"이라면서도 "거짓 진술에서도 정유정의 욕구를 살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전문가는 "시신 유기 대가로 피해자의 신분으로 살게 해주겠다는 말은 정유정에게 피해자 신분이 곧 보상의 의미라는 것"이라며 "피해자의 대학, 전공에 대한 동경이나 열망이 있어서 이러한 진술이 나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유정이 경찰 조사에서 영화 '화차'를 반복 감상했다고 언급한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화차'는 예비신랑(이선균 분)이 결혼을 앞두고 갑자기 사라진 약혼녀(김민희 분)를 찾는 과정에서, 예비신부가 한 여성을 살해한 뒤 피해자의 신분을 사칭해 살아온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는 내용이다.

전문가들은 정유정이 범행 후 피해자의 옷을 입고 집을 나온 것 역시 신분세탁 욕구를 반영한 것이라고 추정했다.

박민식 기자 bemyself@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