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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사람을 돈으로만 봅니까" 외국인 가사노동자가 위험한 4가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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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서 저렴한 비용으로 여성들을 데려와 한국 맞벌이 부부의 육아를 돕게 한다.’
한국 정부가 설명한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 취지다. 한국인, 특히 여성의 육아·가사 노동 부담을 덜어 주면 여성의 경력단절 문제와 저출생 문제가 해결될 거라고 정부는 기대한다. 지난달 윤석열 대통령이 도입 적극 검토를 지시한 이후 논의가 급물살을 탔다. 고용노동부와 서울시는 동남아시아 출신 외국인 가사노동자 100명을 고용하는 시범사업을 준비 중이다.
정부는 '비용'과 '효율성'을 앞세운다. 외국 노동자들이 한국인과 동등한 인권을 가진 '사람'이란 점은 상대적으로 간과되고 있다.
세계에서 가사노동자를 가장 많이 해외로 보낸 나라인 필리핀, 한국 정부가 외국인 가사노동자 사용의 모범 사례로 언급하는 싱가포르에선 한국의 논의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한국일보는 싱가포르 이주노동자 지원 비정부기구 TWC2의 알렉스 아우 부회장과 필리핀의 대표 해외노동자 권리 단체 이민자옹호센터(CMA) 엘렌 사나 사무총장을 화상으로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싱가포르는 여성의 경제활동을 장려하기 위해 1978년 이주 가사노동자 제도를 도입했다. 필리핀, 인도네시아, 미얀마 등 출신의 26만8,000여 명이 각 가정에 고용돼 있다. 국제노동기구(ILO)에 따르면 전 세계에 1,150만 명의 이주 가사노동자가 있는데, 필리핀 여성이 4분의 1을 차지한다.
아우 부회장과 사나 사무총장은 "한국 정부가 외국인 가사노동자를 ‘돈’으로만 본다"고 지적했다.
싱가포르가 모범 사례로 꼽히는 건 외국인 가사노동자를 싸게 고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한국에서 육아도우미를 고용하려면 월 200만~300만 원이 드는데 싱가포르에선 38만~76만 원이면 된다”고 했다.
실제 싱가포르엔 최저임금 제도가 없어서 고용주가 노동자의 월급을 마음대로 정할 수 있다. 아우 부회장은 “가사노동자의 출신 국가에 따라 월급이 다른데, 대졸 사회 초년생이 받는 평균 월급(3,000싱가포르 달러·약 286만 원)의 5분의 1 수준”이라고 말했다.
사나 사무총장은 “한국의 논의는 '어떻게 하면 외국인 노동자에게 한 푼이라도 덜 주느냐’에만 맞춰져 있다"고 꼬집었다.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은 "(싱가포르처럼) 외국인 가사노동자는 최저임금(시간당 9,620원)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자"는 법안을 발의했다.
사나 사무총장은 “많은 나라에서 최저 임금 제도 등을 통해 노동자의 처우를 보장하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 주기 위해서"라면서 "외국인은 인간답게 살 자격조차 없다는 말인가”라고 꼬집었다.
아우 부회장과 사나 사무총장은 임금차별이나 인권 문제에 눈감고 성급하게 외국인 가사노동자 제도를 도입하면 후폭풍이 클 것이라고 경고했다.
싱가포르와 중동 국가에선 가사노동자 학대가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다. 이주 가사노동자들은 임금이 싼 대신 고용주의 집에 함께 살며 숙식을 해결한다. 이 때문에 고용주 가족에게 폭언, 폭행을 당하거나 하루 15시간 이상의 노동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 폐쇄회로(CC)TV를 통한 감시로 사생활도 없다. 임금체불, 성폭력 등도 자주 벌어진다.
사나 사무총장은 “목숨을 잃는 경우도 부지기수”라며 “젊은 여성들이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낯선 나라로 갔지만 살아서 고향으로 돌아가길 바라야 할 정도로 처우가 열악하다”고 말했다.
2016년 20대 미얀마 여성 노동자가 폭력과 굶주림에 시달리다가 체중이 24㎏인 채로 사망한 일도 있었다. 싱가포르 정부가 뒤늦게 △연 2~3회 의무 건강 검진 △근무 첫해에 정부와 두 차례 면담 보장 △월 1회 휴가 의무화 등의 조치를 내놨지만, 학대 문제는 해소되지 않았다.
아우 부회장은 “한국이 제도를 도입하는 단계에서부터 외국인 가사노동자 보호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더 값비싼 사회적 비용을 치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국 정부가 외국인 가사노동자를 저렴하게 쓰려고 하는 것에 돌봄 노동의 가치를 무시하는 시각이 깔려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사나 사무총장은 한국 정부가 쓰는 ‘가사도우미(Domestic helper)’라는 표현에 문제를 제기했다. 가사 노동을 노동의 영역에서 배제한다는 것이다. 그는 “2011년 국제노동기구(ILO)는 돌봄 노동에 종사하는 이들을 노동 3권을 적용받는 노동자로 인정했다”며 “가사노동자(Domestic worker)’라는 표현을 쓰는 게 옳다”고 말했다.
인건비가 싼 외국인 가사노동자의 도입이 한국 노동시장 전반의 임금 후려치기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아우 부회장은 “원칙에 한 번 예외를 두기 시작하면 균열이 생긴다. 처음엔 외국인 가사노동자만 최저임금을 보장받지 못하겠지만, 다른 산업 현장에서 그럴듯한 이유를 붙여 예외를 요구하지 않을 것이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가뜩이나 열악한 국내 돌봄 노동자들의 처우는 당장 위태로워질 수 있다.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이 효과적인 저출생 해소 대책인지에도 물음표가 찍혔다. 제도가 도입된 지 약 50년이 지났지만 싱가포르의 합계출산율은 1.05명(2022년 기준)으로 1977년(2.1명)의 반토막이 났다. 싱가포르는 한국, 일본과 함께 아시아의 대표적인 저출생 국가다.
아우 부회장은 “다른 나라들의 사례를 봐도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과 저출생 극복 사이의 유의미한 관계를 찾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싱가포르에서 가사노동자를 고용한 가정은 전체 가구의 20%"라며 "20%의 출생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외국인 가사노동자를 도입하기보다는 국가가 보다 근본적인 저출생 대책을 세우는 것이 효과가 클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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