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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한 공기

입력
2023.06.17 04:30
22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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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식당에 처음 갔을 때 공깃밥 하나만 시켰어요." 외국인들이 흔히 하는 실수이다. 공깃밥을 시킨 이유는 간단하다. 가장 싸기 때문이다. 나중에 공깃밥은 단독으로 주문할 수 없는 메뉴라는 것을 알게 되지만, 하얀 밥 한 그릇을 '공깃밥'으로 부르는 이유는 오랫동안 궁금해한다.

공기란 밥을 담는 그릇의 이름이다. 우리는 매일 그릇을 쓰며 살고, 모든 그릇에는 이름이 있다. 가장 작은 그릇은 간장, 고추장을 담는 '종지’고, 가장 흔한 그릇은 '접시'일 듯하다. 접시는 반찬, 과일, 떡을 담는 납작한 그릇이다. 접시 물에 코를 박는다든지, 접시 밥도 담는 솜씨에 따라 다르다든지 하는 등 납작한 접시 모양에 빗대는 재미있는 표현들이 많다. 반찬을 담는 접시 중 놋쇠로 된 '쟁첩'도 있지만, 현재 놋쇠 그릇을 잘 쓰지 않는지라 듣기 어려운 말이 되었다.

쓰임이 다른 그릇으로 가 보자. 사기로 만든 국그릇이나 밥그릇은 '사발'이다. 컵라면 중 한 제품은 사발의 모양을 따라 만들고 이름도 그대로 썼다. 김치나 깍두기를 담는 사발은 '보시기', 또는 '김칫보'이고, 보시기보다 아가리가 더 벌어진 반찬 그릇은 '바라기'이다. 전통음식을 하는 곳에 가면 장독 뚜껑과 같이 생긴 그릇에 반찬을 담아 내오는데, 질그릇으로 된 이것의 이름은 '소래기'이다. 우리 밥상에서는 찌개도 반찬이다. 국물을 바특하게 끓인 찌개나 찜을 '조치'라 하니, 그런 반찬을 담아내는 그릇의 이름은 '조칫보'이다.

그릇은 재료와 모양, 쓰임에 따라 이름이 다 다르다. 같은 밥그릇, 국그릇이라도 놋쇠로 만들면 '바리, 밥소라, 갱지미'이고, 나무로 만들면 '두가리'이다. 심지어 놋쇠그릇 중에는 밥을 먹는 사람의 성별에 따라 달리 불리는 것도 있다. 시대가 바뀌고 그릇이 달라지면 그 이름도 같이 사라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간장 한 종지, 떡 한 접시, 밥 한 공기, 냉면 한 대접, 막걸리 한 사발'처럼 그릇은 여전히 그 음식을 세는 단위로 살아 있다.

요즘에는 한국 아이들이 '공깃밥'을 공기(空氣) 밥으로 이해한다. 집에서 아이에게 접시를 가지고 오라고 하면 종지를 들고 온다. 그릇 이름들이 우리 소통망에서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시대가 흐르고 식생활이 바뀌었지만, 우선 어른들조차 그릇 이름을 불러주지 않기 때문이다. '플레이트, 샐러드볼, 디시' 같은 말을 쓰는 중에 우리 그릇의 다양한 이름도 불러주어야 그 말들이 살아남지 않겠는가?

이미향 영남대 글로벌교육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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