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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수교 30년 잘해보자"더니... 왜 1년 만에 급변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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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양국이 상호 존중의 정신에 기반해 보다 성숙하고 건강한 관계로 나아가길 희망한다."
윤석열 대통령 지난해 8월 24일 '한중 수교 30주년' 기념식 축사
1년 전만 해도 한중관계는 훈풍을 타는 듯했다. 지난해 8월 24일 한중 수교 30주년 기념식은 중국의 코로나19 봉쇄로 인해 서울과 베이징에서 각각 열렸지만, 윤석열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축하 메시지를 교환하며 우호를 다졌다. 지난 6년간 한중 관계를 극한으로 몰았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갈등 이후 오랜만에 보는 풍경이었다.
당시는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었다. 중국은 지난해 5월 윤 대통령 취임식에 역대 최고위급인 왕치산 부주석을 보냈고, 윤 대통령은 같은 해 9월 공산당 서열 3위 리잔수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원장이 방한했을 때 예방 일정을 소화했다. 그 직전인 8월 한국을 찾은 낸시 펠로시 당시 미 하원의장을 여름 휴가를 이유로 만나지 않았던 것과 대조적이었다.
그랬던 윤 대통령이 지난 14일 내정간섭 논란을 일으킨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의 발언을 공개적으로 문제 삼으며 "외교관으로서 상호 존중이나 우호 증진의 태도가 있는 것인지 의심스럽다"며 "싱 대사의 부적절한 처신에 우리 국민이 불쾌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통령실은 "중국의 적절한 조치를 기다리고 있다"고 했지만, 중국은 이를 즉각 거부했다. 양국의 태도가 왜 1년 만에 급변했을까.
수교 이래 한중 관계를 관통하는 것은 '화이부동(和而不同)' 정신이다. 조화를 추구하면서도 서로 다름을 인정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지난 1년간 화이부동 정신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분석이 많다. 강준영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는 "윤석열 정부가 가치외교를 표방하며 한미동맹을 강화하고 한미일 3각 공조를 중시하는 것을 알면서도 중국은 1년간 지속적으로 '미국과 가까이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보냈다"며 "우리 정부 입장에선 '중국이 뭔데 대한민국의 외교정책을 바꾸려고 하느냐'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8월 당시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박진 외교부 장관을 만났을 때 양국이 지켜야 할 5가지 사항을 언급하며 "독립자주를 견지하며 외부 장애에 영향을 받지 말자"고 강조한 것이 대표적이다. 우리 정부의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른 상황에서 "미중 경쟁에서 미국이 승리하고 중국은 패배할 것이라는 베팅은 잘못된 판단으로 나중에 후회할 것"이라고 한 싱 대사의 협박성 발언은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한미동맹과 한미일 3각 공조 수위가 높아지면서 한중 간 균열이 커진 측면도 있다. 박병광 국가안보전략연구원 국제관계연구실장은 "윤석열 정부 출범 첫해였던 지난해는 중국 입장에선 관찰의 시기였다"며 "올 들어 우리 정부의 한미동맹 강화가 본격화하자 중국의 대응이 시작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미일 3국 정상은 지난해 11월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만나 북한의 미사일 경보 정보 공유에 합의했고 올 5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계기로 가진 회담에선 새로운 수준의 공조를 약속했다. 한미도 지난 4월 정상회담에서 미국 핵 자산의 △정보 공유 △공동기획 △공동 실행을 담은 핵협의그룹(NCG)을 창설키로 하며 날로 밀착하고 있다.
한중 간 이상신호가 감지된 것도 이때부터다. 지난해 말 부임한 친강 중국 외교부장과 박 장관과의 대면 만남은 아직 성사되지 않았다. 지난해 8월 박 장관과 당시 왕이 부장이 코로나19로 베이징이 봉쇄되자, 제3의 장소인 중국 칭다오에서 만난 것과 대조적이다. 양국 정부와 민간이 참여하는 1.5트랙 대화 가동 등 지난해 11월 한중 정상회담 합의사항들도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중국이 민감해하는 대만해협 문제를 거론한 윤 대통령의 4월 외신 인터뷰도 현 정부가 문재인 정부의 '전략적 모호성' 기조에서 벗어나 미일과 밀착하는 '전략적 선명성'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중국은 이에 "불장난하면 불에 타 죽는다"며 격한 반응을 보였다.
한미 동맹을 중시하는 보수 정권인 데다 국내 반중 감정이 어느 때부터 높다는 점도 정부의 강경 드라이브에 힘을 싣는다. 싱 대사의 발언에 대한 여당인 국민의힘의 대응은 이명박 정부 집권기였던 2008년 광우병 사태 당시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의 발언에 대한 한나라당(현 국민의힘)의 대응과도 대조적이다.
버시바우 대사는 당시 우리 정부의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입 중단 요청'에 "재협상 필요를 못 느낀다"고 거부하고, 광우병에 대한 국민적 우려에 대해서는 "한국 국민들이 과학과 사실을 좀 더 배우길 희망한다"고 말해 '국민을 모독한 망언'이라는 논란이 크게 번졌다.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가 직접 버시바우 대사를 만나 중재에 나섰다. 반면 현재 국민의힘은 싱 대사의 '외교적 기피 인물'(페르소나 논 그라타) 지정을 요구하며 추방까지 주장하고 있다.
관계 개선을 모색할 계기를 찾아야 한다는 견해도 만만찮다. 당장은 다음 달 14일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교장관회의에서 박진 외교부 장관과 친강 중국 외교부장이 대면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아울러 우리나라가 주최국으로서 올 연말 개최 예정인 한중일 정상회의도 주요 계기가 될 수 있다. 최근 관계 경색과 맞물려 한중일 정상회의 관련 한중 간 실무협의가 연기됐지만, 우리 정부의 한중일 정상회의 개최 의지는 여전한 만큼 이를 반전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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