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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달한 디저트 대신 '꾸덕' 그릭 요구르트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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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재 음식평론가가 격주 토요일 흥미진진한 역사 속 식사 이야기를 통해 ‘식’의 역사(食史)를 새로 씁니다.
그저 개인의 푸념이었다. 요즘 우리의 그릭 요구르트는 왜 이다지도 퍽퍽할까? 수분인 유청(乳淸)을 지나치게 걷어낸 나머지 생치즈보다도 더 퍽퍽하고 목이 메는 그릭 요구르트의 경향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이야기를 트위터에 썼다. 그랬더니 반응이 실로 엄청났다. 5,000회 가까이 ‘리트윗’된 가운데 2,000건 가까운 의견이 인용으로 덧붙었다.
그 가운데 상당수가 부정적인 반응이었다. '목이 메면 물을 타서 먹으면 되는 거 아니냐' 등의 의견이 두드러졌다.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은 곧 나를 향한 공격’이라 받아들이는 입장이 많았다. 음식평론가로 15년 가까이 일하면서 이런 경우를 많이 겪었지만 그릭 요구르트가 그런 대상일 거라는 예상까지는 못했기에 놀라웠다.
인기가 정말 상당하구나. 물론 그릭 요구르트의 인기는 세계적으로 검증받은 지 오래이다. 이미 2006년, 미국의 건강 월간지 ‘헬스’가 그릭 요구르트를 세계 5대 건강식품으로 선정한 바 있다. 탄수화물의 비율은 적고 단백질과 지방은 물론, 칼슘의 비율이 높은 데다 매끄럽고 풍성한 질감도 매력적이다. 과일이나 견과류를 조금만 섞어도 한 끼 식사 역할을 너끈히 해낼 정도로 포만감도 상당하다.
이래저래 인기를 못 끌면 이상할 음식이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요즘 쏟아져 나오는 제품의 상당수가 그다지 반갑지 않다. 과일 등 부재료를 섞어 먹을 수 없을 정도로 수분이 적어 퍽퍽한 가운데, 이를 사실은 부정적인 형용사였던 ‘꾸덕하다’로 포장해 긍정적인 이미지로 둔갑시켰다. 그릭 요구르트를 워낙 좋아해 국내에도 연착륙하기를 십 년 이상 기다려온 사람으로서 허무함을 느낄 정도이다.
국내의 그릭 요구르트는 왜 이다지도 퍽퍽할까? 두 갈래의 가설을 세워 보았다. 첫 번째는 ‘가격 대 성능비’의 구현이다. 유청은 쓸모가 없는 요소라 생각하고 적을수록 좋다고 판단해 최대한 걷어낸 것이다. 두 번째는 ‘밥과 최대한 닮은 질감’이다. 정확히 닮지는 않았지만 수분을 많이 걷어내면 그릭 요구르트는 밥과 상당히 흡사해 보인다. 흰색이라는 점에서 더더욱 그렇다.
어쨌든 이런 상황을 겪고 음식평론가로서 일말의 의무감을 느꼈다. 물기 없이 퍽퍽한 그릭 요구르트를 바꿀 능력은 없지만 촉촉함을 불어넣는 유청 같은 지식과 정보는 얼마든지 제공할 수 있다. 그리하여 원래 준비했던 원고를 일단 접고 부랴부랴 그릭 요구르트의 이모저모에 대해 간략히 정리해 보았다.
요구르트의 기원은 확실히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유산균 락토바실러스 델브릭키이를 분석한 결과 식물의 표면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밝혀냈다. 우유의 유산균 발효가 우연히 발견됐으리라는 방증인 가운데, 요구르트의 역사는 기원전 5,0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중앙아시아와 메소포타미아의 신석기인들이 처음으로 만들어 먹었으리라 추정하고 있다.
한편 요구르트라는 단어는 튀르키예에서 비롯되었다. ‘반죽하다’ 또는 ‘걸쭉하게 만들다’라는 의미의 ‘요구르막(yoğurmak)’에서 ‘yoğurt’가 파생된 것이다. 한편 그리스에도 요구르트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옥시갈라(οξύγαλα)가 존재했으니, 의사 갈레노스(129?~199?)가 꿀과 함께 먹는다는 언급을 한 바 있다.
그렇다면 ‘그릭(greek)’, 즉 그리스식 요구르트는 일반적인 제품과 어떻게 다른 걸까? 섭씨 42도 안팎으로 따뜻하게 데운 우유에 유산균을 더해 발효시키면 우유의 산도가 높아지고 카제인이라는 단백질이 응고된다. 그 결과 순두부와 비슷한 굳기의 요구르트가 생성되고, 여기에서 물리적으로 유청을 걸러내면 걸쭉한 그리스식 요구르트가 된다. 산업적인 규모에서는 우유를 발효 전 한 번 농축시켜 미리 수분을 걷어내기도 한다.
그리스식 요구르트의 세계화는 ‘파예(Fage)’가 처음 시도했다. 파예는 1974년 아테네에서 설립된 후 1981년부터 수출을 시작해 벨기에,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네덜란드를 거쳐 2001년 미국에 진출한다. ‘토털(Total)’이라는 제품명을 앞세운 한편 ‘그릭’이라는 수식어를 붙여 물리적인 농축의 차별점을 소비자에게 각인시켰다.
파예가 닦아 놓은 그릭 요구르트의 시장은 곧 포화상태에 이르렀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또 다른 브랜드가 틈새를 비집고 들어와 입지를 넓힌다. 바로 ‘초바니(Chobani)’이다. 튀르키예 출신의 함디 우루카야가 2005년 설립한 초바니는 사업 시작 6년 만에 그릭 요구르트 시장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큰 인기를 누린다. 하지만 그 탓에 초바니는 시장을 먼저 개척한 파예와 그릭 요구르트 전쟁을 치러야만 했다.
쟁점은 원산지였다. 2012년 9월, 초바니의 영국 지사는 미국에서 생산한 그릭 요구르트의 수입 판매를 시작한다. 이에 파예는 초바니가 그릭 요구르트를 사칭하고 있다며 영국 고등법원에 고소한다. 그리스에서 생산해 영국에 수출하는 파예와 달리 초바니의 미국산 요구르트는 ‘그릭(그리스의)’이라는 형용사를 붙일 수 없다는 주장이었다.
파예가 그 근거로 ‘벨기에 맥주(Belgian Beer)’를 제시하자 초바니도 나름의 논리로 맞섰다. ‘그릭’이라는 형용사는 ‘그리스의’ 보다, 유청을 물리적으로 걷어내는 ‘그리스식’이라는 의미이므로 미국산에도 붙일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말하자면 세계적으로 자리를 잡은 음식인 ‘프렌치 토스트’의 ‘프렌치’와 같은 용례라는 것이었다.
그릭 요구르트의 왕좌를 놓고 벌인 전쟁은 파예에 유리하게 돌아갔다. 법원이 파예의 주장을 받아들여 미국산 초바니 요구르트에 ‘그릭’이라는 용어의 사용을 금지한 것이다. 초바니는 항소했지만 2014년 패소해 파예가 최종 승자로 남게 된 가운데, 그리스는 원산지 명칭 보호를 통해 ‘그릭 요거트’라는 명칭과 형식의 독점을 시도했지만 아직 결실을 보지 못하고 있다. 둘 다 국내에 수입이 되는 가운데, 미국의 미식 잡지 ‘본아페티’에서는 파예의 맛이 초바니보다 한 수 위라고 평가했다.
한국의 그릭 요구르트 역사는 이제 쓰이고 있는 중이다. 그릭 요구르트가 국내에 진출한 건 대략 10년 전이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인기를 누리기 시작한 건 불과 몇 년 동안의 일인데 품질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지금까지도 완전히 벗어 버렸다고 하기 어려울 정도로 국내 유제품 업계는 타성에 젖어 품질 관리를 소홀히 했다. 그리고 이는 떠먹는 요구르트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젤라틴 등의 증점제로 굳힌 데다가 설탕을 지나치게 많이 쓴 제품들이 오랫동안 전부였다.
소비자의 선호도가 그릭 요구르트로 옮겨 가는 가운데서도 유제품 업계는 한동안 아랑곳하지 않았다. 초창기의 국산 그릭 요거트는 사실 오래전에 일반 제품으로 내놓았어야 할 정도의 굳기를 지닌 제품이었고, 단맛에서도 벗어나지 못했다. 단 그릭 요거트라니! 사실은 꽤 끔찍한 제품이었다. 21세기 들어 가장 강력하게 건강식품으로 각인된 그릭 요구르트와는 맞지 않는 전개 방향이었다.
그런 가운데 변화는 대기업보다 중소업체들로부터 시작되었다. 고품질 요구르트를 소규모로 생산해 온 업체들이 그릭 요구르트로 눈길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나마 그릭 요구르트가 침체에 빠진 국내 유제품 시장에서 유일하게 구원투수 역할을 할 제품이라 생각하면 대기업들은 좀 더 분발할 필요가 있다.
2022년 뉴스에 의하면, 전년도인 2021년까지 국내 발효유 시장은 연평균 2%의 성장률을 보여 왔다. 그 가운데 선두주자는 단연 그릭 요구르트이다. 시장 조사업체 닐슨 코리아에 따르면, 2021년 국내 그릭 요구르트 시장 규모는 약 291억 원, 전년 대비 35% 성장했다. 발효유 전체 시장의 규모가 1조9,442억 원임을 고려하면 미미하지만 뚜렷한 성장세는 무시할 수 없다. 태생적으로 우유를 많이 소비할 수밖에 없는 그릭 요구르트의 향후 성장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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