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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보다 D램 5년, 낸드 2년 앞서... 팹리스·후공정 중국 우세 [한중 기술격차]

입력
2023.06.16 14:00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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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반도체 굴기의 현주소: ①어디까지 왔나]
한국-중국 반도체 기술 격차 세부 비교

편집자주

중국 반도체 기술이 한국을 맹추격 중입니다. 중국 반도체 수준은 어디까지 올라왔고 앞으로 얼마나 발전할까요? 미국과의 반도체 전쟁을 버텨낼 수 있을까요? 한국일보가 상세히 짚어봤습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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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공정은 이 기사 하나에 다 담을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다. 통상 칩 하나 제작에 두세 달이 걸리는데다, 세부 공정까지 따지면 단계가 600여 개에 달한다. 그만큼 최첨단 기술력이 집약된 산업이고, 손꼽히는 소수 국가의 소수 기업만이 압도적인 실력을 보유하고 있다.

다른 산업에선 기술이 부족해도 낮은 임금을 앞세운 국가·기업이 어떻게든 생태계를 유지할 수 있지만, 반도체 산업에선 '메모리 분야 치킨게임' 사례에서 보듯 철저히 기술·자본이 앞선 승자만 살아남아 시장을 독점(또는 과점)한다. 그렇게 서방 주요 국가들이 강력한 카르텔을 형성한 시장에, 후발주자 중국이 "생태계를 전부 국산화하겠다"며 도전장을 던진 것이다.

어차피 늦게 시작한 중국이 반도체 공정 모든 분야에서 단번에 1등이 될 순 없다. 한국 반도체 기업에게 중요한 것은 서방이 쌓아올린 '기술 만리장성' 중에서, 중국이 어느 지점을 가장 먼저 공략해 들어올 것인가를 예측하는 일. 결국 한국과 중국의 반도체 기술 격차가 좁혀진 분야가 취약점이다. 한국일보는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의 분석과 중국 반도체업계 현지 취재를 통해 한·중 반도체 기술 격차를 측정해 봤다.

메모리 분야 한국 우위 계속 유지될 듯

먼저 메모리반도체(정보 저장 용도)의 양대 축인 D램과 낸드플래시를 살펴본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버티고 있는 D램 분야에선 한국이 '지배적 사업자'다. D램 업체는 사실상 '빅3'가 모두 장악한 상태인데, 그 중 2곳이 한국 업체다. 대만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매출액 기준 세계시장 점유율은 삼성전자(43.2%), 미국 마이크론(28.2%), SK하이닉스(23.9%) 순이다.

한국과 중국의 기술격차는 최소 5년으로 추산된다. 통상 D램의 공정 기술이 한 세대를 뛰어넘으려면 2년에서 2년 반이 걸리는데, 삼성전자는 지난달 선폭 회로가 12나노미터(nm·1nm=10억분의 1m)인 5세대 D램 양산에 돌입했다고 밝혔다. SK하이닉스도 지난달 말 10나노급 5세대 D램을 개발해 검증 절차에 착수했다고 발표했다.

반면 중국의 공정 기술은 2세대에 머문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 제재로 한국과 중국의 기술격차가 더 벌어질 가능성도 크다. 중국에서 D램 분야의 가장 선도기업으로 꼽히는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는 현재 17나노미터 D램을 양산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앞서 미국 상무부가 18나노 이하 D램을 생산하는 중국 기업에 미국 장비 반입을 제한함에 따라, CXMT가 상위 공정 기술에 접근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연내로 예정됐던 CXMT의 제2공장 완공도 연기됐다.

한·중 반도체 분야별 기술 격차. 그래픽=송정근 기자

한·중 반도체 분야별 기술 격차. 그래픽=송정근 기자


낸드플래시에선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YMTC)가 국내 기업을 바짝 쫓아오다가 미국 제재의 철퇴를 맞고 주춤한 상황이다. 이 때문에 약 2년 정도였던 국내 기업과의 기술격차가 더 벌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통상적으로 소자를 수직으로 쌓아올리는 3D 낸드 플래시의 경우 적층 규모로 기술의 발전 단계를 가늠하는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최근 200단 8세대 낸드 플래시를 개발했다. YMTC은 지난해 말 176단 단계를 건너뛰고 232단 낸드 플래시를 출시해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YMTC는 미국의 수출 통제 명단(Entity list)에 올라 있는데, 이 때문에 미국 기업들은 정부 허가 없이는 YMTC와 거래할 수 없다. 이미혜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YMTC에 파견됐던 미국 장비 기업 직원들이 철수하는 바람에 장비 보수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을 것"이라면서 "200단 낸드 플래시를 개발했다 하더라도 생산량 확대가 제한될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이 선임연구원은 "게다가 글로벌 기업들이 미국의 블랙리스트에 오른 중국 회사와 거래하기도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파운드리도 기술 격차 5년 내외

반도체를 위탁생산하는 파운드리(foundry) 분야의 한·중 기술 격차도 5년 내외로 추정된다. 역시나 중국이 추월하기 어려운 분야다. 이미 대만 TSMC와 한국 삼성전자가 초미세 공정 단계예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데다, 초미세 공정을 준비하려면 네덜란드의 세계 최대 반도체 장비 기업인 ASML의 극자외선(EUV) 노광장비가 필수적이다. EUV를 생산할 수 있는 유일한 회사가 ASML이다. 현재 네덜란드도 미국의 대중 기술 통제에 동참하고 있어, EUV 노광장비의 중국 반입은 불가능하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해 6월 네덜란드 에인트호번 소재 ASML 본사를 찾은 모습. 삼성전자 제공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해 6월 네덜란드 에인트호번 소재 ASML 본사를 찾은 모습. 삼성전자 제공

만에 하나 중국이 스스로 EUV 노광장비를 개발한다 해도 파운드리 분야에서 한국과 대만을 압도하는 경쟁력을 갖기 어렵다는 의견이 중론이다. 이미 경쟁사들이 멀리 달아나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이미 3나노 파운드리 공정 양산에 안착했다. 반면 '중국의 TSMC'를 꿈꾸는 중신궈지(SMIC)의 기술력은 14나노 공정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이혁재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는 "SMIC가 7나노 공정 개발에 성공한 것으로 알려져있지만 수율이 떨어질 수 있고, 5나노 이하는 EUV 장비 없이는 불가능하다"면서 "파운드리 공정은 타이밍 싸움이라, 설령 중국이 장비 자국화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너무 늦은 성공은 의미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팹리스는 오히려 중국이 월등

다만 팹리스(fabless·반도체 공장 없이 설계를 전문적으로 하는 것)나 후공정(칩을 패키징하는 공정) 분야에서는 중국이 한국을 앞선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장비 분야 역시 미국 제재 이후 국산화가 촉진되고 있다.

먼저 팹리스는 중국의 경쟁력이 월등히 높다. 2021년 기준 팹리스 분야 중국의 세계 시장점유율은 9%로, 1%에 그친 한국을 크게 앞선다. 세계 50대 팹리스 기업에 포함된 중국 기업만 13개다. 미국(17개)에 이어 대만과 함께 공동 2위다. 전체 팹리스 기업 수를 봐도, 중국(2,810개)은 한국(120개)의 20배가 넘는 규모의 생태계를 구성하고 있다. 다만 업계 선두인 퀄컴(미국)·미디어텍(대만)과 자웅을 겨루던 화웨이의 하이실리콘이 2020년 미국 정부의 규제 이후 1년 만에 매출이 80% 넘게 감소한 상태다. 하이실리콘을 제외한 중국 팹리스 전체의 매출 규모는 2020년 93억 달러에 2021년 150억 달러로 전년 대비 61%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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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상하이에 본사를 둔 웨이얼반도체(Will Semiconducto)의 성장이 돋보인다. 웨이얼반도체는 2019년 미국 이미지센서 제조업체인 옴니비전을 인수하며 단숨에 세계 10대 팹리스에 이름을 올렸다. 고영화 베이징 한국창업원 원장은 "스마트폰, 컴퓨터, 가전을 다 만들어 '세계의 공장'이라 불리는 중국에서 얼마나 많은 종류의 반도체가 필요하겠느냐"며 "반도체를 설계하는 팹리스가 중국에서 성장하는 것은 시장 규모를 보면 당연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첨단 기술이 필요하지 않은 노동집약적 분야인 후공정은 중국의 세계 시장점유율(38%)이 가장 높은 분야다. 낮은 인건비가 가격 경쟁력의 핵심으로, 후공정을 담당하는 10대 업체 중 중국 업체만 3곳이다. 국내 패키징 업체에서 근무했던 한 관계자는 "아무래도 패키징이라는 공정 자체가 특별한 기술이나 특허가 필요하지 않은 만큼 가격 대비 성능이 괜찮은 중국 시장으로 많이 넘어가는 추세"고 전했다.

제재가 외려 '득'이 된 장비 분야

삼성전자 홈페이지에 소개된 반도체 제조의 8대 공정.

삼성전자 홈페이지에 소개된 반도체 제조의 8대 공정.

정리하자면 메모리와 파운드리는 한국 절대 우세. 팹리스·후공정 중국 완승이다.

문제는 반도체 장비 분야. 여기는 한·중 격차가 박빙 수준이다. 그동안 한국이 미세하게 앞섰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최근 중국이 추월했다는 게 전문가들 이야기다.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중국은 미국의 제재로 최신 장비 수입 규제로 큰 타격을 받았지만, 이후 적극적으로 자국 장비업체 투자에 나서면서 반도체 3대 공정(노광·식각·증착)의 각 분야에서 대표업체를 키워내는 데 어느 정도 밑바탕을 닦았다고 평가된다.

올해 3월에는 중국 반도체 기업 옌동마이크로가 75억 위안(약 1조4,000억 원)을 들여 순수 중국산 반도체 장비만을 사용해 65나노 웨이퍼(반도체 원판)생산에 나선 실험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고영화 원장은 "한국 반도체 장비의 기술 수준이 중국보다 좋다고 하지만 국산화율이 중국에 미치지 못한다는 데다 대부분 클리닝, 세척, 열처리 등 비핵심 공정 관련"이라며 "중국은 비록 느리지만 이 '축적의 시간'이 지나면 45나노 이상의 공정에서는 자립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국내 반도체 생태계에서 중국에게 잠식당할 위험이 큰 '약한 고리'를 정부와 산업계가 더 전폭적으로 뒷받침해줘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미혜 연구원은 "현재까지는 중국이 우리나라 반도체 장비의 최대 수출대상국이었는데 앞으로는 한국 기업이 중국 시장에서 장기간 매출을 올리기 어려워질 수도 있다"면서 "우리나라 장비 기업들이 독자적으로 기술력을 키우고 해외시장도 다변화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대영 전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국은 세계 반도체 2위·메모리 1위 강국이라지만 이를 기술적으로 계속 뒷받침할 연구 기반이 부족하다"면서 "앞으로도 반도체강국의 지위를 이어가려면 국가출연 전문반도체연구소를 설립해 지속적인 연구개발을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현주 기자
베이징= 이승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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