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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남편은 유급휴가, 스타트업 아내는 재택근무... '엔데믹의 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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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 목소리로 화상회의를 하는데 옆에서 쉬는 남편이 어찌나 부럽던지···.”
서울의 한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홍모(35)씨는 이달 4일 남편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걸렸다. 지난달 코로나19에 감염됐다면 부부가 나란히 일주일 유급휴가를 받았겠지만, 이제 두 사람의 처지가 달라졌다. 1일부터 7일 격리 의무가 ‘5일 권고’로 바뀌면서 회사별 방역 지침도 천차만별인 탓이다. 홍씨는 재택근무를 해야 했지만, 대기업에 다니는 남편에게는 유급휴가 3일이 주어졌다. 홍씨는 14일 “‘노비를 해도 대감집에서 하라’는 격언이 절로 떠올랐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코로나19 ‘엔데믹(풍토병화)’에 돌입한 지 2주가 지났다. 일상 회복을 마다할 국민은 없다. 다만 일부 직장인 사이에서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온다. 감염병 확진 판정을 받아 안 그래도 몸이 아픈데, 지침 변경으로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이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의 ‘코로나19 사업장 대응 지침’은 노동자가 확진됐을 때 약정된 유ㆍ무급 휴가, 또는 연차 활용을 회사에 ‘권고’하고 있다. 강제의무가 아니라 사측이 확진 직원에게 출근이나 재택근무를 지시해도 막을 방법은 없다. 정부는 확진 격리된 직원에게 유급휴가를 부여하는 사업주에게 하루 최대 4만5,000원(최대 5일)씩 지원하던 유급휴가비도 대폭 축소했다.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규모를 30인 미만 사업장으로 한정한 것이다. 기업 입장에선 인력 손실을 감수하면서까지 굳이 유급휴가를 줄 이유가 없어진 셈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기업 자금 여력에 따라 유급휴가를 둘러싼 빈부 격차도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대기업들은 통상 3~5일의 자체 유급휴가를 부여하지만, 규모가 작은 사업장이나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휴가는 언감생심이다.
9일 코로나19에 감염된 경남 창원 소재 대기업 직원 안모(24)씨는 엔데믹 전처럼 7일 격리와 함께 유급휴가를 받았다. 반면 2일 확진 판정을 받은 조모(42)씨가 다니는 중견기업은 엔데믹 선언과 동시에 격리 유급휴가를 없앴다. 업종 특성상 재택근무도 쉽지 않아 조씨는 아픈 몸을 이끌고 4일 일요일에 출근해 당직까지 섰다. 평일 근무를 하면서도 다른 직원들에게 병을 옮길까 봐 전전긍긍하다 결국 연차를 썼다. ‘워킹맘’인 그에게 휴가는 ‘금쪽’ 같은 시간이다. 조씨는 “코로나19 유행 당시 중단된 학부모 참관 수업, 운동회 등이 다 부활해 틈틈이 연차를 내고 학교에 가야 한다”며 “이러다 나중에 정말 필요한 상황에서 휴가를 쓰지 못할 것 같아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7일 확진되고도 계속 출근하는 직장인 박모(28)씨 역시 “정수기부터 구내식당 이용까지 온갖 회사생활에서 감염을 신경 쓰다 보니 몸이 더 힘들어졌다”면서 “지난해 처음 코로나19에 걸렸을 때 눈치 안 보고 쉴 수 있었던 시절이 그리울 지경”이라고 털어놨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건강권 보호에 관한 우려는 일찌감치 제기됐다.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질병에 따른 쉴 권리를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랐지만 정부는 별 대비 없이 빗장을 풀었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는 지난달 비정규직 직장인 절반 이상이 코로나19 확진에도 무급휴가로 격리했다는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유급 병가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는 응답도 정규직 69.3%, 비정규직 45.3%로 격차가 컸다. 격리 의무가 있던 시기에도 이 정도인데, 지금은 노동 약자들의 설 자리가 더욱 좁아졌을 것으로 보인다.
권남표 직장갑질119 노무사는 “아파도 일하는 게 당연한 사회로 다시 퇴보한 것”이라며 “아플 때 쉴 수 있도록 국가가 보장하는 ‘상병수당’을 실효성 있는 형태로 도입하는 등 근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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