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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혹이 된 ‘둘리’, 그리고 K웹툰의 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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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 보고 조리 봐도 음음, 알 수 없는 둘리, 둘리.”
경쾌한 첫 소절만으로도 동심은 요동쳤다. 좌충우돌했지만 돌발상황에선 외계인으로부터 전수받은 초능력으로 위기를 모면하면서 시청자들에게 짜릿함도 선사했다. 1980~90년대 수많은 어린이들을 TV 앞으로 소환시킨 애니메이션 ‘아기공룡 둘리’ 주제곡의 도입부다. 예기치 못한 시나리오로 세상에 나왔지만 그 시절 세대들에 둘리는 둘도 없는 친구였다.
1983년 당시 어린이 만화 잡지였던 ‘보물섬’에서 초록색 공룡으로 태동한 둘리는 사실 군사정권 심의의 산물이다. 청소년 만화 속 주인공 설정조차 ‘모범생’으로 국한시킨 당시 서슬 퍼런 정부의 보수적인 검열 기준에서 잉태된 탓이다. 자유분방한 주요 등장인물을 기용할 수 없게 되자, 의인화된 공룡 둘리가 낙점된 것. 사람이 아닌 동물로 그려질 경우, 비교적 완화된 정부의 심사 방식에 올라탈 수 있어서였다. 결국 둘리는 규제를 피하기 위한 궁여지책으로 이용된 셈이다.
우울했던 당시, 우여곡절 끝에 탄생한 둘리는 토종 캐릭터로 위안과 웃음을 선사하면서 애니메이션의 대중화도 가져왔다. 그랬던 둘리가 올해로 ‘불혹’인 40대에 들어섰다. 중장년층에 추억 속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면서다.
둘리의 존재감은 산업적인 측면에서도 두드러졌다. 둘리는 특히 하나의 소재를 다른 장르에 적용, 부가가치까지 극대화시킨 ‘원 소스 멀티 유즈’의 표본으로 자리매김했다. 만화 잡지에서 출발했지만 극장 및 TV 애니메이션 제작과 뮤지컬 공연, 다양한 모형 인형 출시 등으로 이어진 선순환 구조의 정착은 국내 산업계에 기대 이상의 파급 효과를 가져왔다. 그동안 인터넷만화(웹툰)도 급성장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2017년 3,799억 원에 그쳤던 국내 웹툰 산업 매출은 2021년엔 1조5,660억 원대로 급증했다.
하지만 아이로니컬하게도 웹툰 작가의 처우는 여전히 바닥이다. 전근대적인 노동 환경부터 비정상적이다. 고료 지급도 없이 고무줄처럼 늘어나기 일쑤인 한 화당 컷(칸) 수는 당연한 관행처럼 굳어졌다. “10년 전만 해도 한 화당 기본 컷 수는 40~50컷이었는데, 지금은 70컷 가까이 늘었다”는 게 웹툰 업계의 공공연한 볼멘소리다.
기본적인 정기 유급 휴재권 또한 웹툰 작가들에겐 ‘그림의 떡’이다. 명절이나 공휴일 등을 포함한 연휴기간의 마감 독촉은 더 아프다. 차라리 법정 공휴일 없는 곳에서 살고 싶단 웹툰 작가들의 우스갯소리가 서글픈 이유다. 무차별적인 신상 털기 수준의 악성 댓글은 웹툰 작가들에겐 우울증과 수면 장애 등을 동반한 정신적 스트레스만 가중시킨다.
무엇보다 지나치게 플랫폼 사업자 위주로 치우쳐온 계약은 가장 취약한 아킬레스건이다. 수익 배분과 더불어 저작권 문제 등은 대부분 불리한 조건들로 구성되지만 협상 테이블에서 ‘을’인 웹툰 작가들의 입장에선 속앓이만 깊어질 뿐이다.
지난 3월이다. 1990년대 인기만화였던 ‘검정고무신’의 이우영 작가는 수년간 불공정 계약과 연관된 재판에 휘말리면서 결국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검정고무신의 공동 원작자인 이우진 작가는 형을 떠나보낸 이후에도 임계치에 다다른 불합리한 K웹툰 생태계에 달라진 건 없다고 했다. “작가들이 서 있어야만 하는 기울어진 운동장의 끝자락은 너무 위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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