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시장의 ‘성다수자 권익’

입력
2023.06.11 16: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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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축제반대 발언 속에 나타난 차별 의식
법원서 늘 기각당하는데도 집회 금지 지지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지난해 10월 1일 대구 중구 대중교통전용지구에서 열린 제14회 대구퀴어문화축제의 한 장면. 뉴시스

지난해 10월 1일 대구 중구 대중교통전용지구에서 열린 제14회 대구퀴어문화축제의 한 장면. 뉴시스

홍준표 대구시장이 최근 페이스북에 “성소수자의 권익도 중요하지만 성다수자의 권익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며, 오는 17일 대구 동성로 등지에서 개최 예정인 대구퀴어문화축제를 반대했다. 대구 기독교총연합회 등이 대구지법에 퀴어축제 집회 금지 가처분 신청을 낸 것을 지지하면서다. 서울시도 기독교 단체가 주관하는 청소년·청년 콘서트가 우선이라며, 서울광장에서의 퀴어축제를 불허했다. 이 때문에 올해 서울퀴어문화축제는 7월 1일 을지로에서 열린다.

□ 2015, 2016년에 이어 2019년에도 퀴어축제를 막아달라는 가처분 신청이 있었으나 모두 기각됐다. 법원은 “집회 개최 자체를 금지하면 헌법상 기본권인 표현 및 집회의 자유를 제한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했고 “집회의 의미, 성격, 참가 인원 등에 비춰볼 때 아동과 청소년에 한해 집회 참가를 제한하는 것이 필요하다거나 가능하다고 볼 수도 없다”고 밝혔다.

□ 홍 시장은 성소수자와 성다수자의 권익을 등치시키는 듯 발언했지만, 그 ‘권익’에 있어서 큰 차별을 뒀다. 다수자에겐 소수자(퀴어축제)를 안 볼 권리가 있으니, 소수자는 헌법이 보장한 집회의 자유도 포기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누구에게도 불법이 아닌 어떤 존재를 보지 않을 권리란 없다. 보기 싫으니 드러내고 집회하지 말라는 건 가장 근본적인 ‘혐오’의 형태이다. 이 때문에 더욱 성소수자들은 ‘가시화’를 중요하게 여긴다.

□ ‘소수자’의 대비어가 ‘다수자’인 것도 아니다. 다수를 차지하더라도 정치·사회·경제적으로 권력의 열세에 있다면 사회적 소수자가 될 수 있으며, 규모면에서 소수여도 소수자가 아닐 수 있다. 예를 들어 여성은 인구의 절반이지만 소수자로 분류되며, 남아프리카공화국은 흑인 인구가 백인보다 월등히 많지만 흑인이 소수자이다. 이는 고교 사회·문화 교과서에도 나오는 내용이다. ‘소수자’를 순전히 적은 규모로만 보고 ‘다수자’라는 말과 단순 대비하는 것은, 권력의 우세를 업고 소수자에게 가해지는 복합적 차별에 눈감는 방식이다.

이진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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