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보는 시각과 시선에 따라서 사물이나 사람은 천태만상으로 달리 보인다. 비즈니스도 그렇다. 있었던 그대로 볼 수도 있고, 통념과 달리 볼 수도 있다. [봄B스쿨 경영산책]은 비즈니스의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려는 작은 시도다.
'아차! 이쪽 길이 아닌데···.'
운전자가 탄식을 한다. 오늘 행선지는 오른쪽 길로 들어가야 하는데, 자주 다니던 왼쪽 길로 무심코 들어선 것이다. 자신의 행동을 의식적으로 컨트롤하지 않으면 평소 했던 행동 그대로 하는 모습을 종종 발견한다. 이처럼 의식적으로 주의 깊게 통제하지 않으면 평소했던 행동과정을 그대로 하는 현상을 설명하는 것이 인지적 지도(cognitive map)다. 심리학자 에드워드 톨먼(E. C. Tolman)은 쥐를 이용한 미로 탈출 실험을 통해 인간의 행동들이 뇌 속에 그려져 있는 행동들의 연결 과정들인 인지적 지도에 의해 수행됨을 규명했다. '세 살 적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이 내포하는 원리도 이에 해당할 수 있다. 우리 조상들은 인지적 지도의 현상을 알아채고 있었던 것 같다.
비슷한 개념으로 구조적 관성(structural inertia)이 있다. 물리학의 '관성(inertia)' 개념을 사회조직에서 기존의 관행과 관습을 지속하려는 현상에 원용해 구조적 관성이라고 한 것이다. 인지적 지도가 개인 차원에서의 개념이라고 한다면 구조적 관성은 집단차원에서의 개념으로 유사한 현상을 지칭한다. '통념' 또는 '도그마'도 이에 해당한다.
인간의 행동도 경험의 반복에 의해 행동들 간의 경로가 형성된다. 행동과정은 관성과 같은 힘을 갖게 된다. 특히 물체의 질량이 크면 클수록 관성도 커지게 되는데, 조직의 규모가 클수록 업력이 오래될수록 구조적 관성은 강해지고, 또한 나이가 들고 경륜이 쌓일수록 인지적 지도의 작용이 강해져 구조적 관성의 힘이 더욱 커지는 경향이 있다. 대기업일수록, 최고경영층의 평균연령이나 조직구성원의 평균연령이 높아질수록 구조적 관성이 커지거나 강해질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개인이나 조직이나 고집과 아집이 강해지는 것이다.
대기업의 관성의 진원지는 오랜 시간 동안 성공을 거두었고, 그만큼 많은 경영진을 배출한 성숙기의 주력 사업부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유형의 주력 사업들이 기업의 매출액 및 영업이익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클수록 구조적 관성의 힘은 강력할 수 있다.
이러한 인지적 지도나 구조적 관성을 차단하거나 변경시키거나 새로운 경로를 발견하거나 창조해 새로운 구조적 관성과 인지적 지도를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혁신이고 기업가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이때 활용되는 의식적인 행동이 '역발상' 같은 것이다.
1998년 4월, 고가로 판매만 하던 정수기를 기존 방식을 벗어나 업계 최초로 '렌털 서비스'와 '사전서비스(B/S:Before Service)'를 포함한 '코디(CODY: Coway Lady)'를 창안한 사례는 새로운 성공방식을 창조한 예다. 가격을 내리면 매출액이 증가할 것이라는 통념을 깨고 고급화해 고가로 소량 판매한 결과 오히려 매출액을 증가시킨 유아용품 시장의 사례도 그렇다. 다만 이제는 코디 시스템이나 고가격 소량판매 방식도 또 다른 인지적 지도와 또 하나의 구조적 관성이 됐다.
쉽지는 않겠지만 개인이나 회사는 인지적 지도나 관성이 갖는 위험을 깨닫고 이를 관리하려는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성공체험의 인지적 지도나 구조적 관성의 선례들을 모아 분석하고 비판적으로 토론하는 학습을 사내 프로그램으로 만드는 것도 그 방법 중 하나다. 타 조직의 성공경로 체험의 사례들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자신들의 인지적 지도와 구조적 관성이 무엇인지를 알아차릴 수 있는 계기를 만들 수 있다. 기존 인지적 지도나 구조적 관성을 변형하거나 역으로 바꾸어 보는 발상의 훈련은 새로운 혁신의 원천이 될 것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