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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 실종시대, 국어사전에 없는 벌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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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자주 틀리는 맞춤법으로 ㅐ/ㅔ 혼동이 있다. 현대 한국어에서 둘의 발음이 사실상 같아졌기 때문인데, 원래 'ㅐ'는 'ㅏ'에 가깝게 'ㅔ'보다는 입을 좀 더 크게 벌려야 하나 이렇게 소리를 내는 사람이 이제 드물다. 발음의 변화에 따라 때로 철자법도 바뀌지만 아무래도 동음이의어가 느는 불편도 생기는 등 이런저런 이유로 철자는 다소 보수적이다. 정도는 다를지언정 어느 언어든 이런 문제는 생기게 마련이다.
떼를 지어 몰려드는 모습은 흔히 '벌떼처럼 몰려들다'로 빗댄다. 다른 곤충도 떼 지어 날기도 하나 아무래도 벌만큼 강렬한 인상을 주지는 않는다. 앞서 말했다시피 이 말도 '벌때'로 틀릴 때가 꽤 많다. '때'로 쓰면 '벌 때 벌어라'처럼 말 자체가 달라진다. 돈을 꿀벌처럼 부지런히 '벌 때처럼' 달려든다고 풀이해도 되겠다고 갖다 붙일 만은 하다.
근데 '벌 때'와 마찬가지로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원칙적으로 '벌 떼'도 띄어쓰기를 한다. 떼(무리)가 붙어 합성어로 인정받는 말은 뜻밖에도 드물다. 새카맣게 모여드는 모습을 종종 빗대 일컫는 개미떼, 파리떼, 메뚜기떼 따위도 띄어 써야 하고 곤충뿐 아니라 소떼, 양떼, 쥐떼, 오리떼, 새떼, 참새떼, 고기떼, 송사리떼 따위 척추동물 무리도 붙여 쓰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거지떼, 도적떼 및 구름떼 역시 없다.
표준국어대사전 표제어 가운데 동물 떼는 '개떼'와 '모기떼', 사람 떼는 '강도떼' 말고 드물다. '개떼'야 당연히 있을 만한데 '강도떼'는 적어도 한국에서는 몰려다니며 강도질을 일삼는 무리가 이제 매우 드물어 고색창연한 느낌마저 든다. 앞서 예시한 말들은 모두 고려대국어대사전에는 표제어로 올라 있고 연세현대한국어사전 및 북한의 조선말대사전 또한 '벌떼'나 '개미떼'를 비롯해 상당수가 나온다. 언론 기사 등 실제 용례에서도 붙여 쓸 때가 잦고 합성어냐 문구냐의 경계가 매우 모호해서 꼭 표준국어대사전 표제어를 일일이 따질 필요는 없다.
'하이에나 떼'야 앞 성분이 글자가 긴 외래어라 띄어쓰기가 자연스럽지만, 코끼리떼, 원숭이떼, 고양이떼 따위는 두 사전 모두 표제어에 없으나 붙여 써도 괜찮다. 떼 지어 다니는 '동물+떼'를 모두 사전 표제어로 올릴 수는 없겠으나, 특히 '떼' 같은 단음절어는 크게 무리가 없을 때 앞의 성분과 이어서 써도 되겠다.
영어는 게르만어 중에서 붙여쓰기가 적은 편이라 swarm of bees(벌 떼)와 bee swarm(벌떼)처럼 합성어 성격이 좀 애매한데, 여러 게르만어 및 우랄어 등은 합성어 '벌떼'를 쓰고 주요 사전에도 표제어로 등록했다(독일어 Bienenschwarm, 스웨덴어 bisvärm, 헝가리어 méhraj, 핀란드어 mehiläisparvi).
꿀벌은 꽃가루를 옮기며 지구 생태계를 지킨다. 이런 벌들이 사라지면 인간의 삶도 물론 위태로울 텐데 벌의 개체 수가 점점 줄고 있다. 대책으로 소형 드론을 활용해 인공 수분을 하는데 영어 drone의 원뜻은 '수벌'이다. 수벌은 여왕벌과의 교미가 주된 임무라서 꽃가루를 옮기는 데는 암벌이 훨씬 더 큰 구실을 한다.
딴 '떼'야 그렇다 쳐도 표준국어대사전에 '벌떼'만이라도 실어 경각심을 높이면 어떨까 싶다. 뜻은 같으나 거의 안 쓰는 한자어 봉군(蜂群)은 표제어로 있는데 정작 '벌떼'는 없으니 구색이 안 맞는다. '드론떼'보다는 '벌떼'부터 그 사전에 등재되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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