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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니프로강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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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지난 5일 밤(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카호우카 댐 파괴로 범람한 강 이름은 드니프로다. 러시아 벨라루스 우크라이나를 거쳐 흑해까지 장장 2,290㎞를 흐르는 유럽에서 세 번째로 긴 강이다. 하류 유역은 비옥한 흑토로, 곡창지대인 만큼 이 땅을 노리는 정복자들의 잔혹한 유린이 반복됐다. 지금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충돌하고 있지만, 80년 전에도 사상자가 소련 130만 명, 독일 35만 명에 달할 정도로 치열한 전투가 1년 넘게 이어졌던 2차 대전 최대 격전지 중 하나였다.
□드니프로강에는 6개 댐이 있는데, 카호우카 댐만 파괴됐던 것은 아니다. 1941년 독일군의 침공에 드니프로강 동쪽으로 후퇴하던 소련군은 진격을 저지하기 위해 8월 23일 자포리자 댐을 폭파했다. 그 결과 하류 우크라이나 주민 2만 명이 사망하고 10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도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이날을 ‘검은 리본의 날’로 정하고 희생자를 추모하고 있다. 이 땅을 점령한 독일군은 댐을 복구했는데, 1943년 후퇴하며 다시 파괴했다.
□이번 카호우카 댐 파괴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피해는 진영을 가리지 않는다. 수만 명의 이재민과 수십만 명의 식수난에 직면한 우크라이나는 말할 것도 없고, 카호우카 댐에 저장된 물이 주요 물공급원인 크림반도 러시아인들도 심각한 물 부족 사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전 세계도 드니프로강 유역 곡창지대 파괴로 인한 곡물 가격 급등 고통을 피하기 힘들다.
□반복되는 드니프로강의 비극을 막는 방법은 양측이 현실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2013년 우크라이나 민주화 운동인 유로마이단 과정에서 확인됐듯이 드니프로강 서쪽은 친유럽 주민이 다수이고, 동쪽은 친러시아 주민이 다수다.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을 서방이 묵인한 것도 이런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드니프로강을 국경으로 합의한다면, 1년 넘은 전쟁을 끝낼 길이 열릴 수 있다. 드니프로강을 둘러싼 갈등의 답은 드니프로강에 있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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