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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렌스키의 열망 '73년전 헤스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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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8일 런던을 깜짝 방문한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영국에 도착해서 가장 감사한 것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영국이 지지해준 것이라고 답할 줄 알았는데, 잠시 침묵 후) '따뜻한 영국차(English tea)'라고 조크를 날렸다. 그리고 전투기 조종사 헬멧을 선물하면서 전투기를 간청했다. 이어 프랑스, 독일, 일본, 몰도바에서 그의 전투기 '애착'은 계속되고 있다. 전쟁의 교착국면에서 벗어나려면 전투기가 필수품이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73년 전 참혹했던 6·25전쟁과 비슷한 상황임을 알 수 있다. 당시 한국은 전투기 한 대 없이 수송기만 몇 대 있는 초창기 공군이었다.
미국은 1950년 7월 전투기 부대를 창설하고, 딘 헤스(Dean Hess) 대령(당시 소령)을 부임시킨다. 헤스 대령이 이끄는 F-51은 지상의 탱크를 격파시키는 공대지 전투기이다. 전쟁 초기 북한군은 미그기로 제공권을 잡고, 소련제 탱크를 앞세우는 지상군 위주의 전투를 펼쳤다. 이 난국에서 헤스 대령은 밀려드는 적을 부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다만 그의 투혼에도 불구하고 불리한 전황으로 상당기간 우리나라는 풍전등화 위기에 몰렸다.
헤스 대령은 왜 한국에 왔을까. 어렸을 때 키 작고 힘이 약한 헤스 대령은 가장 가성비 높은 직업임을 알고 조종술을 배웠다고 한다. 2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유럽으로 날아가 나치군을 폭격하였고, 전역한 이후 다시 한국전에까지 뛰어든 군인다운 군인이었다.
김신(장군) 등 한국군의 F-51기 조종훈련도 시키면서, 헤스 대령은 250차례 정도 출격한다. 전투기 출격은 조종사에게 엄청난 긴장과 체력이 소모되는 일인데도 불구하고, 초인적으로 임무를 수행했다. 전장에서, 속성으로 우리나라 공군의 전투기 부대를 창설하고, 귀국 후 세상을 떠날 때까지 한국에 대한 사랑을 우리 국민 못지않게 간직했던 인물이다. 보훈의 달을 맞이하여 헤스 대령을 비롯한 나라를 위해 헌신한 외국인 영웅들에게 명예 한국인 국적 부여를 하는 등 존경하는 마음을 키워야 한다.
나아가서, 국군의 참의미를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군사정권의 어두운 터널을 겪으면서 우리의 무의식 속에는 군의 가치가 저평가되어 있다. 의대에는 인재들이 개미떼같이 몰리는 반면, 학군단은 모집이 안 되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현대전은 하늘을 지배하는 자가 이긴다. 젤렌스키가 희구하는 F-16은 500억 원이나 되는 첨단 전투기이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훈련에 2년이 필요한 조종사뿐만 아니라 정비사 등 지상의 많은 인력이 필요하다. 젤렌스키한테 필요한 것은 전투기보다는 헤스 대령과 같은 조종사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세계 경찰을 자처하는 미군의 인적자원관리를 보자. 아프간 참전 장교에게 제대 이후 MBA 진학을 지원하고, 전업 학생으로 2년 동안 월급도 준다. 정부는 군인력에 엄청난 재원을 투입하고, 일상에서 미국인의 베테랑에 대한 존경심이 크다.
이제 G7에 들어가 세계 역사의 주역이 되려 한다면, 우리 군의 위상도 달라져야 한다. 조국과 세계평화를 위해 목숨 바칠 준비가 된 군인다운 군인을 기르고, 온 국민은 군의 명예를 존중해 주는 문화로 바뀌어야 한다. 군의 인적자원관리를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공군사관학교 부지도 확장하고, 단순히 군사학교를 넘어 첨단과학을 연구하는 기능을 강화하여 항공우주산업 발전에도 기여토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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