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탐지 최선봉 '네 발 관문지기' 에반... "새 가족 찾아요"

입력
2023.06.05 08:00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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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배치됐다 돌아온 탐지견 사연
마약탐지 훈련 통과 못한 14두 분양
관세청, 7일까지 서류접수 후 현장평가

1일 인천 영종도 내 위치한 관세청 탐지견훈련센터 초지훈련장에서 민간분양 대상견인 '에반'이 남혜원 사회화훈련담당의 "기다려"란 말을 듣고 가만히 서 있다. 영종도=변태섭 기자

1일 인천 영종도 내 위치한 관세청 탐지견훈련센터 초지훈련장에서 민간분양 대상견인 '에반'이 남혜원 사회화훈련담당의 "기다려"란 말을 듣고 가만히 서 있다. 영종도=변태섭 기자


“기다려. 앉아.”

한때 마약탐지견이었던 ‘에반’은 초지훈련장에 들어서자 꼬리를 연신 흔들어 댔다. 목적물 찾기 훈련을 거듭한 이곳이 익숙한 듯 에반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즐겁게 산책하다가도 남혜원 사회화훈련담당이 말하면 곧장 걸음을 멈추거나, 제자리에 앉았다. 그때마다 사료가 보상으로 주어졌다. 먹이를 받아먹은 에반은 다시 꼬리를 흔들었다. “산책 나갈 때 큰길을 막 건너거나, 행인들과 부딪히면 안 되니까 민간 분양 전 간단한 명령에 따르는 사회화 훈련을 반복해요.”

이달 1일 찾은 인천 영종도 소재 관세청 탐지견훈련센터에선 조조·비의 사회화 훈련도 한창이었다. 보통 센터 주변 2㎞를 산책하지만 가끔은 인근 지하철역에 가서 지하철·버스도 눈에 익힌다. 에반을 포함해 이번에 민간 분양을 앞둔 훈련견은 래브라도리트리버종 14마리. 이들은 왜 관문을 지키는 ‘네 발의 에이스’가 되지 못한 걸까.

2019년 3월 태어난 에반은 생후 3개월부터 12개월까지 진행된 자견 훈련을 통과했다. 각종 놀이활동을 통해 탐지견 자질을 증명한 것이다. 이어 양성 훈련(16주)도 우수하게 졸업했다. 양성 훈련은 실질적인 탐지활동을 배우는 과정이다.

처음(1~2주)엔 마약 냄새부터 익힌다. 3~8주 차가 되면 마약을 찾은 후 짖거나, 그 자리에 앉는 반응 표현을 연습한다. 마약 은닉 난도를 높여 훈련을 반복(9~12주)한 뒤 공항 입국장이나 화물청사에 투입된다. 남은 기간 실제 탐지활동을 하며 최종 평가를 받는 것이다. 소유욕·지구력·활동성·집중력·대담성 등 5가지 항목 평균 점수가 60점 이상이어야 탐지견이 된다. 1개 항목이라도 40점 미만 점수를 받으면 불합격 처리된다. 현재 국내에서 활동 중인 탐지견은 총 39마리. 38마리가 마약, 1마리가 폭발물 탐지를 맡고 있다.

합격률이 절반 남짓(45~50%)에 불과한 탐지견 양성 훈련을 통과한 에반은 2020년 12월 대구세관에 배치됐다. 하지만 ‘관문지기’ 기간은 짧았다. 현장 탐지견 능력을 살피는 순회평가(연 1회)에서 탈락, 이듬해 5월 탐지견훈련센터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에반과 함께 일한 전보물 탐지조사전문경력관은 이렇게 말했다. “큰 체구(몸무게 32㎏)와 달리 성격은 애교가 많고 소심한 편이에요. 낯선 환경에 대한 조심스러움이 커 살펴봐야 하는 화물이 있는데도 컨베이어벨트 등 높은 곳엔 아예 올라가려 하지 않았어요.”

1일 인천 영종도 소재 관세청 탐지견훈련센터 초지훈련장에서 민간 분양 대상견 구름(왼쪽부터)·조조·비가 사회화훈련담당자들과 산책하고 있다. 영종도=변태섭 기자

1일 인천 영종도 소재 관세청 탐지견훈련센터 초지훈련장에서 민간 분양 대상견 구름(왼쪽부터)·조조·비가 사회화훈련담당자들과 산책하고 있다. 영종도=변태섭 기자

2020년생 ‘화랑’은 높은 곳에 있는 물품을 탐지하지 않아서, 2019년생 ‘구름’은 탐지 의욕이 떨어져 이번에 민간 분양 대상견이 됐다. 목적물 찾기보다 장난치는 걸 더 좋아한다는 얘기다. 2017년생 ‘르노’는 터질 위험이 있는 폭발물 탐지를 오히려 너무 활동적으로 해 탐지견 양성 훈련을 통과하지 못했다.

이달 7일까지 서류를 접수하면 서류 심사→현장 평가→탐지견증여심의위원회 의결을 거쳐 최종 민간 분양자가 선정된다. 서류심사 성적 상위 1·2순위자의 주택에 직접 가 대형견을 키울 수 있는 환경인지 살펴본 뒤 분양이 이뤄지는 것이다. 1순위자가 탈락하면 현장 평가를 통과한 2순위자가 분양을 받는다. 분양대상견당 서류접수 경쟁률은 보통 15대 1 안팎이다.

에반의 가족 찾기는 벌써 세 번째다. 2021년과 2022년에는 서류 심사 1·2순위자가 모두 현장 평가에서 불합격해 새로운 가족이 될 기회를 놓쳤다. 민간 분양 업무 담당 황세정 주무관은 “탐지활동보다 사람을 잘 따르고 활력이 넘치는 애들인 만큼 사랑받으며 사는 새 삶을 꾸려 나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인천= 변태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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