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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댕 '지옥의 문' 7번째 에디션…삼성 소장품이 진품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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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래기술이 발전하면서 모든 미술 작품에는 가격이 매겨진다. 일반 회화는 물론이고 여러 번 복사가 가능한 판화와 동상, 심지어 행위예술도 나름의 논리에 따라 거래된다. 그림이나 도자기 등 단일체로 존재하는 작품은 희소가치와 예술가치에 따라 값이 결정되지만, 원본에서 파생한다고 볼 수도 있는 판화나 주조 동상은 모두 진본이고 가치가 동일할까. 또 최근 우크라이나를 돕기 위해 마리나 아브라모비치가 재연한 행위예술(본보 5월 2일 자·우크라이나를 위한 70대 예술가의 2억 원 가치 동작)은 어떻게 2억 원의 가치를 인정받았을까.
먼저 우리에게 익숙한 프랑스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1840~1917)이 자신의 삶을 깎듯 30여 년간 몰두했던 '지옥의 문'을 중심으로 동상 제작과 가격이 매겨지는 과정을 살펴보자. 삼성문화재단을 통해 우리나라도 한 점 소장한 이 작품은 서울 태평로 플라토미술관 폐관(2016) 이후 대중에 공개되지 않고 있다. 이 작품은 진품으로 인정받는 전 세계 8개 작품 중 7번째 에디션(edition)이다. 거꾸로 말해 진품으로 인정받는 동일 작품이 8개나 된다는 것이다. 로댕은 어떻게 청동 작품을 제작했고, 한 작품에는 몇 개의 에디션까지 존재할까? 사후에 제작된 작품도 그의 작품으로 인정될까?
청동 작품은 원형 하나를 가지고 다수의 작품을 제작할 수 있다. 원형의 재료는 찰흙이나 석고 등 여러 가지가 될 수 있다. 이렇게 만든 원형을 토대로 빈 주형을 만들고, 그 주형에 밀랍(왁스)을 부어 왁스형을 만들고 다시 왁스를 녹여 그 안으로 청동물을 붓는 것이 기본이다. 왁스는 녹고 그 빈 공간에서 청동물은 굳어지는데 이후 점토를 깨서 그 안의 청동을 가져가는 것이 포인트다. 이를 '밀랍주조법(lost wax casting)'이라고도 한다. 직지를 찍은 세계 최고 금속활자도, '지옥의 문'도 이 기법이 이용됐다. 밀랍주조법을 이용한 청동 주조 과정은 10단계로 나눌 수 있다.
청동 작품은 진품이 여러 개 존재할 수 있지만, 그 에디션들의 원형은 단 하나다. ‘지옥의 문’의 원형은 프랑스 오르세이 미술관에 있다. 로댕이 세상을 떠난 1917년의 ‘지옥의 문’은 지금의 형태가 아닌 수많은 파편들이었지만, 이들을 모아 석고 원형으로 제작됐다.
작품은 1880년 당시 프랑스 미술부 차관인 에드몽 투르케에 의해 주문됐다. 로댕은 단테의 <신곡>을 주제로 삼고 단테가 지옥에서 만난 180여 명의 인물을 표현했다. 독립적인 작품으로 알려진 <생각하는 사람><키스>도 이 ‘문'의 일부였는데, 다만 '지옥의 문' 자체를 하나의 앙상블로는 완성시키지 않았다. 로댕은 사망 전에야 이 작업들을 청동으로 만드는 것을 허락했고, 다시 10년이 지난 후에나 미국 미술관의 요청에 의해 청동 작업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로댕은 찰흙이나 석고까지만 직접 작업했다. 찰흙으로 원하는 모양을 빚고 만족할 경지에 이르면, 이후에는 공방의 장인들에게 '마스터(대가)의 원형 작품'을 대리석이나 석고, 청동 등으로 복사본을 만들도록 지시했다. 여러 재료를 이용한 작업 중에서 청동 주조는 가장 고난이도다. '지옥의 문'은 높이 6.35m, 폭 3.98m, 무게 7톤으로 청동 작품 중에서도 최고의 스케일을 자랑한다. 주조에는 고도의 기술과 상당한 자금이 들기에 세계 각지의 ‘지옥의 문’은 긴 시간차를 두고 제작된다.
로댕은 죽기 전 자신의 전 재산을 나라에 기부하기로 프랑스 정부와 합의했다. 집과 작업실, 판매되지 않은 작품과 개인 소장품뿐 아니라 사후에도 작품을 계속 캐스팅할(뜰) 권리도 부여했다. 그가 만든 석고 원형에서 가져온 주형을 이용해 공인된 작품을 만들고 생전 작품과 마찬가지로 값어치를 매긴다.
프랑스는 법으로 로댕의 청동 작품 수를 제한했다. 기관(public)이 주문할 경우 8개, 개인(private)이 주문할 경우 4개까지다. 지식 재산권 코드 R 122-3 조항은 예술가의 사본을 포함하여 총 12개까지를 예술 원본으로 간주한다고 규정한다. 기관 주문 시 1/8에서 8/8까지 8개, 개인 주문시 I/IV~IV/IV 4개, 총 12개의 작품만 인정되는 것이다. 또한 작가·스튜디오의 서명과 도장이 찍힌 진품서가 발급되는데, 작가와 컬렉터를 보호하는 사실확인 문서다.
첫번째 청동 ‘지옥의 문’은 1926년 미국 필라델피아미술관의 요청으로 제작됐다. 이어 1928년 프랑스 로댕미술관, 1930년 일본 도쿄, 1949년 스위스 취리히를 위해 주조됐다. 이후 5~7번째 작품은 1978년 미국 스탠퍼드대학, 1992년 일본 시즈오카현립미술관, 1994년 한국 삼성문화재단이 주문했다. 한동안 기관용으로 인정되는 마지막 8번째 '지옥의 문'을 누가 가져갈지가 관심사였는데, 9년에 걸친 협상 끝에 2021년 멕시코 재벌 카를로스 슬림이 건립한 소우마야(Soumaya) 미술관에 가기로 결정됐다.
가격에 대한 정보는 외부에 거의 공개되어 있지 않다. 1920년 일본의 마츠카타기업과 로댕미술관이 사인한 계약서에는 '60만 프랑'으로 기재됐는데, 오늘날 가치로 1,000만 달러(약 130억 원)에 해당한다. 2016년 뉴욕 소더비 옥션에서 약 2,000만 달러에 팔린 로댕의 대리석 작품 <영원한 봄날(1901)>이 지옥의 문 일부를 독립시킨 작품이라는 점에서 그 가치를 넉넉히 짐작할 뿐이다.
한편, 물리적으로 보존이 불가능한 행위예술의 가치는 철저한 현장 촬영과 작가의 완벽한 사인으로 완성된다. 공연 장면을 동영상과 사진으로 찍고, 그 사진에 작가가 대체 불가능한 '원본'임을 인정하는 사인을 하는 방식이다. 앞서 언급한 마리나의 2010년 공연도 이런 방식으로 기록돼 1억 원에 거래됐고, 지난해 션 켈리 갤러리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지원을 위한 전시도 2010년 작품이 프로젝션되는 전시장 속에서 마리나와 마주하는 장면을 찍고, 작가가 그에 사인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최근 서울 리움미술관에 전시된 1억5,000만 원 상당의 현대미술 작품(카텔란의 '코미디언')의 소품으로 쓰인 바나나를 관람객이 먹어 치우고도 작품 훼손에 대한 손해배상 등의 책임을 지지 않은 것도 같은 이유다. 요컨대 미술품의 가치는 해당 미술품의 존재 형태와 추구하는 미의 형태에 따라 달라지는 셈이다.
김승민 큐레이터·슬리퍼스써밋 CEO
국제전시기획 전문가다. 런던소더비인스티튜트에서 학사(예술사), 유니버시티컬리지런던(UCL)에서 석사(미술사), 왕립예술학교에서 철학박사(큐레이팅) 학위를 받았다. 2007년-2011년 주영한국문화원 창립 큐레이터로 활동한 후 슬리퍼스써밋과 이스카이아트를 설립하고, 뉴욕과 런던을 중심으로 600여명의 작가와 전시를 개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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