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김승민 큐레이터는 영국 왕립예술학교 박사로 서울, 런던, 뉴욕에서 기획사를 운영하며 600명이 넘는 작가들과 24개 도시에서 전시를 기획했다. 미술 시장의 모든 면을 다루는 칼럼을 통해 예술과 문화를 견인하고 수익도 창출하는 힘에 대한 인사이더 관점을 모색한다.
"예술 재테크에 관심이 생겼어요. 그런데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첫 작품은 어떤 걸 사는 게 좋을까요?"
큐레이터로서 자주 받는 질문이 있다. 경제적 가치는 물론, 미학적인 동시에 트렌디한 작품을 구매하고 싶다는 바람이다. 상대방이 누구냐에 따라 답변은 달라진다. 질문자의 성향과 취향, 예산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예술의 역사는 길고, 예술사조도 다양하다. 예산도 작품 구매 폭을 천차만별 뒤집을 수 있다. '가장 투자 가치가 높은 작품'을 원하는지, 아니면 '집에서 한참 즐기다 후손에게 물려줘도 좋겠다'는 걸 원하는지에 따라서 선택 방향은 크게 달라진다. 한국일보 애독자들의 연령대가 이 신문의 연륜만큼 깊고 다양해 이 주제에 대해 오래 고민했다. 명색이 현직 큐레이터인데, '결국 가장 좋아하는 작품을 살 것'이라는 쉬운 말만 남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곰곰이 따지면, '좋아하는 작품'이라는 말에 작품 구매의 지름길이 있다. '당대 미술 산업의 구조를 관통하는 비교적 저렴한 작품부터 구매할 것'이라는 답변도 유추할 수 있다. 미술 작품과 컬렉터가 만나 불어넣는 예술 시장의 '힘'을 이해하고, 시류를 반영해 작품을 구매한다면 '작품을 샀다'라는 것 이상의 가치가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미술 시장의 구조는 어떻게 배울까? 나의 첫 번째 조언은 '미술품 거래 시장을 직접 경험해볼 것'이다. 미술계도 그들만의 '언어'가 있다. 다이아몬드도 전문가가 크기, 밝기, 투명도 등으로 가치를 책정하는 것처럼, 미술 작품도 경제적 가치를 환산하는 어떤 기준이 있을 터. 백문불여일견이라 했던가. 서로 다른 다이아몬드를 양 손에 들고 들여다보는 것처럼, 작품도 직접 미술관과 갤러리에 가고, 관련 옥션에 가서 보면 달리 보이는 게 있을 것이다.
아트페어는 좋은 시작이 될 수 있다. 그 이름처럼 갤러리들이 모여 구매자를 만나는 장을 펼치는 곳인 만큼, 미술 작품 구매 시류의 일면을 볼 수 있다. 각 갤러리의 특징 그리고 작가와 갤러리의 소속 관계도 볼 수 있으니, 그야말로 미술계의 단면을 볼 수 있는 순간이다. 게다가 페어인 만큼 당당하게 가격도 물어볼 수 있다.
아트페어를 먼저 한 바퀴 돌며, 맘에 드는 작품과 갤러리를 마음의 장바구니에 담는 것을 권한다. 그리고 다시 한 바퀴 돌며, 이 중 왜 몇 작품이 맘에 와닿는지에 대해 생각한다. 해당 아트페어의 성격에 대해 고민하며 다른 아트페어와 비교해본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뜬구름 같던 머릿속의 미술품 거래 시장의 시류가 선명해질 것이다.
대규모 아트페어는 행사장 주변으로 여러 위성 아트페어가 열린다. 마이애미의 경우, 아트바젤의 경우 주변에 '스펙트럼', '언타이틀', '아트 마이애미' 등이 열려 일주일간 관람할 정도다. 독특한 신진 작가가 궁금할 때는 'New Art Dealers Alliance'라는 뜻의 'NADA 아트페어'로, 보다 상업적인 작품을 보고 싶을 땐 '아트 마이애미'로 향했다. 가구 작품을 찾는다면 '디자인 마이애미'로 간다.
이렇게 저마다 다른 관점으로 미술 시장에 '직접 참여'하다 보면, 구매자로서의 '관점'이 선명해진다. 자꾸만 내 눈에 띄는 작품이 무엇인지에 대해, 나의 예산으로 가장 큰 효율을 낼 수 있는 작품에 대해, 더 가까이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구매자'의 입장으로 미술 시장을 이해하다 보면 그들만의 리그처럼 보이던 미술계의 면면이 다채롭게 펼쳐지며 또 다른 매력을 깨닫게 된다. 직접 발로 뛰고, 눈으로 보는 것만큼 정확한 건 없다. 직접 보고 느끼며 깨달은 정보와 시류는 책과 포털 사이트를 통해 배우는 것과 다른, 미술계 일원과 예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이들이 누리는, 삶을 예술로 향유하는 방식이라는 점에서도 값지다. 미술 작품을 구매하는 건 단순히 투자 가치뿐 아니라, 삶에 예술을 더하는 방법이 될 것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