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술한 위기대응과 우왕좌왕 대피 문자

허술한 위기대응과 우왕좌왕 대피 문자

입력
2023.06.03 00:00
22면

지난달 31일 서울시가 보낸 긴급재난 문자와 행안부가 20여 분 후 오발령이라고 재차 보낸 긴급재난문자. 홍인기 기자

5월 31일 새벽 6시 반경. 사이렌 소리가 울려서 잠에서 깼다. 그 뒤 뭐라 뭐라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듯했지만 무슨 말인지는 정확히 들리지 않았다. 이게 무슨 일인지 멍 때리면서 9분이 흘렀다. 그리고 재난 문자가 도착했다. 경계경보가 발령됐으니 대피하라는 것이었다. 대피? 갑자기 무슨 상황이지? 북한이 공격했나? 하지만 지금까지 북한이 핵실험을 하거나 연평도에 공격을 한 경우에도 나에게 직접적인 위협 상황은 아니었다. 한두 번 도발한 것이 아니라 무뎌진 것도 사실이었다. 그렇지만 대피하라는 재난 문자가 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번에는 진짜 서울 도심에 사는 내가 대피해야 하는 상황인가? 그런데 어디로 대피해야 하지? 두려움과 의구심으로 가득 찼다. 이게 무슨 상황이고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그래서 뉴스를 확인하고자 네이버에 접속했다. 하지만 나 같은 사람이 잔뜩 몰린 탓인지 네이버 뉴스는 접속이 되지 않았다.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역시 당황스러운 목소리였다. 우리는 둘 다 혼자 산다. 의지할 수 있도록 만나서 같이 있자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서로 멀리 떨어져 사는데 어디에서 만나야 할까? 우리가 이런 상황에 아무 준비도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 엄마한테 카톡이 왔다. 상황을 전혀 모르는지 다른 이야기를 하는 카톡이었다. 서울 쪽에만 재난 문자가 온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진짜 북한이 폭격한 거면 서울이 아닌들 무사할까? 우왕좌왕하는 동안 다시 한번 사이렌이 울리고 안내 방송이 이어졌다. 뭐라고 하는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그리고 한참 뒤 다시 한번 재난 문자가 왔다. 경계경보가 오작동이란다. 황당해서 할 말을 잃었다.

이번 일은 우리 사회 위기 대응 체계의 허점을 크게 보여준 사건이었다. 정부와 개인 차원 양쪽에서 말이다. 먼저 정부 대응에 문제가 있었다. 사이렌이 울린 시간과 재난 문자를 받은 시점이 9분이나 차이가 났다. 9분이면 우리 집에서 대피소까지 대피할 수 있는 시간이다. 사이렌 안내 방송이 무슨 말인지 거의 들리지 않았기 때문에 재난 문자가 중요했는데 너무 늦게 울렸다. 또, 문자 내용이 너무 모호했다. '왜'와 '어디로'가 빠진 채, 다짜고짜 경계경보가 내렸으니 대피하라는 문자는 혼란만 가중시킨다. 마지막으로 서울시가 보낸 재난문자를 행정안전부가 굳이 '오작동'이라는 단어를 써서 정정해야 하는지 의문이다. 사태에 대한 정확한 내용을 전달하되 더 세련된 표현이 있지 않았을까. 난데없는 대피 문자가 '오작동' 때문이라니 신뢰도가 하락해 다음에 진짜 위기 상황에서도 사람들이 믿지 않을 것이 걱정스럽다.

개인적인 대응도 문제가 있었다. 나를 포함해서 대부분의 친구들이 문자를 받고 걱정만 했지 실제로 대피를 하지 않았다. 대피소가 어디인지도 몰랐고 생존가방 같은 것도 없었다. 전쟁이 일어나면 통신사 기지국부터 타격당해 인터넷이 먹통이 되지 않을까? 그때 가서 방법을 찾으면 늦는다. 어떻게 어디로 대피하고 가족, 친구와 어떻게 연락하고 만날 것인지 위기 대응 프로토콜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아무쪼록 이번 소동을 반면교사로 삼아 정부와 개인이 제대로 된 대응 방안을 수립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곽나래 이커머스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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