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국민 10명 중 8명이 병원에서 사망하는 현실. 그러나 연명의료기술의 발달은 죽음 앞 인간의 존엄성을 무너뜨린다. 과연 우리는 어떻게 죽어야 할 것인가.
밤 9시경, 40대 남성 환자가 본인의 병상에서 심정지 상태인 것을 병실 담당 간호사가 발견했다. 코드블루와 함께 심폐소생술을 실시하고 중환자실로 옮겨 소생을 위한 시술을 하였으나 환자는 결국 사망했다. 최초 발견 당시 큰 정맥에 연결되어 있던 수액 라인이 빠져 있었고 환자복에 피가 흥건했던 정황으로 미루어 환자의 섬망 증세로 인한 사고 혹은 자살 시도가 의심되었으나 명확한 증거는 없었다.
해당 환자는 3개월 전에 급성백혈병으로 진단되어 항암제 치료를 받아 일시적 호전을 보이다가, 암이 뇌척수막으로 전이되면서 병세가 다시 악화되고 있었다. 환자는 불면증으로 밤새 병실을 배회했으며 특히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하고 계속해 깜짝 놀라서 깨는 증상이 반복적으로 있었다.
사망 수일 전에도 환자는 새벽 4시에 병실 옆 비상계단에 쓰러져 있는 상태로 발견된 적이 있었고, 이때도 정맥주사 연결관이 빠져 환자복 하의에 많은 피가 묻어 있었는데 환자는 그 정황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 섬망 증세의 악화로 사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한 의료진은 신경안정제를 투약했고, 환자 가족에게 24시간 간병할 보호자가 필요하다고 강력히 요구했다. 하지만 환자의 아내는 일곱 살 난 아이가 집에 혼자 있어서 밤에는 집에 가야 한다고 했다. 경제적 여유가 없어 간병인을 고용할 형편도 안 되고, 도움을 청할 가까운 인척도 없는 딱한 사정이었다.
간호사 한 명이 입원환자 10~20명을 돌보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 의료 상황에서 위와 같은 사고가 일어나면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까? 간호 인력을 충분히 고용하지 않은 병원을 비난할 수도 있으나 지나치게 낮게 책정되어있는 환자 돌봄에 대한 건강보험수가는 병원이 간호 인력을 추가로 고용하는 것을 현실적으로 어렵게 만들고 있다.
우리나라의 건강보험제도가 처음 시작되던 1977년에는 대가족이 대부분이어서 입원환자의 간병을 가족들이 하는 것을 전제로 건강보험수가가 정해졌었다. 환자 병상 옆에 보호자용 침상을 기본적으로 비치하고 가족이나 간병인이 입원실에 24시간 머무르는 것은 다른 선진국의 병원에서는 보기 힘든 일이며, 간병인을 고용하지 못하면 가족 중 누군가는 직장생활을 중단하는 희생까지 감수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은 전체 가구 중 3인 이하 가구가 81.1%이고, 33.4%가 1인 가구이다. 간병이 큰 부담이 되고 있음에도 한국의 의료정책은 이를 외면하고 있다. 간호간병통합서비스를 통해 병원이 입원환자의 간병까지 책임지는 제도는 10년째 시범 사업만 진행 중이다.
최근 3년여에 걸친 코로나19 사태로 환자 가족들의 병원 출입이 제한된 상황에서도 끝까지 환자를 지킨 간호사들의 헌신적인 노력을 지켜보면서, 그들의 열악한 근무조건과 과중한 업무부담을 목격했다. 아쉽게도 우리나라의 건강보험은 아직 효능이 충분히 입증되지 않아 선진국에서도 보험급여를 꺼리는 고가 신약이나 신의료기술에 대한 급여에는 많은 재원을 쉽게 사용하면서도, 환자를 돌보기 위한 신체적 노동과 감정노동에 대한 비용 지불에는 인색하다. 이러한 문제는 간호사뿐만 아니라, 소아청소년과와 같은 필수 진료과 의사 인력이 항상 부족한 이유이기도 하다.
가족의 희생적 간병을 전제로 짜인 후진국형 건강보험수가 체계는 이제 바뀌어야 한다. 의료서비스는 의료기기나 약품과 같은 물적 자원과 환자의 돌봄을 위해 일하는 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 등 다양한 인적 자원이 유기적으로 연계되어야 완성된다. 의료의 인적 서비스에 대한 보험수가를 적정 수준으로 올리는데 들어가는 재원은 건강보험료를 추가로 더 징수해야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 건강보험급여의 우선순위를 합리적으로 재조정하는 것만으로도 시작할 수 있는 일이다.
필수의료 인력의 업무에 대한 적절한 보상과 이를 통한 인력 충원으로 과중한 업무부담을 줄일 수 있어야 우리가 현재 누리고 있는 의료서비스는 지속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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