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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권 존중 vs 잔혹 범죄 응보… 세번째 심판대 오른 사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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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년간 사형이 집행되지 않으면서, 한국은 실질적 사형 폐지 국가로 분류됐다. 그러나 사형수 59명은 여전히 수감 생활 중이다. 헌법재판소는 사형제에 대해 두 차례 합헌 결정을 내린 뒤, 이르면 올해 세 번째 판단을 내놓을 예정이다. 한국일보는 헌재 결정을 앞두고 사형제를 둘러싼 양자택일의 소모적 공방을 지양하고 더 나은 길이 무엇인지 고민해봤다.
"사형제는 생명권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할뿐더러 범죄 예방 효과도 과학적으로 입증된 바 없다."
"국민 생명보호란 중대 공익을 위한 형벌로 사회 보호와 범죄 예방이란 목적성과 정당성이 인정된다."
지난해 7월 14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선 2018년 '부천 부모 살해 사건'으로 무기징역이 확정된 윤모(35)씨가 한국천주교주교회의를 통해 제기한 사형제 위헌 여부에 대한 헌법소원심판 공개변론이 열렸다. 윤씨 측은 1심 재판 중 검찰이 사형을 구형하자 이에 반발해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청구인 측은 사형을 형벌로 규정하는 형법 41조 1호와 존속살해죄에 사형을 선고할 수 있도록 한 형법 250조 2항을 위헌이라고 주장한 반면, 법무부는 합헌이라고 반박했다. 특히 '생명권을 침해하는 제도'라는 의견과 '반인륜적 범죄에 대한 불가피한 처벌'이란 목소리가 9명의 재판관을 앞에 두고 낮고 무겁게 오가며 충돌했다.
헌재는 1996년 11월과 2010년 2월 사형제에 대해 이미 두 차례 합헌 결정을 내렸다. 그간 결과만 보면 사형제에 대한 헌재의 세 번째 결론도 합헌 쪽으로 예상되지만, 사형집행이 중단된 1997년 이후 사회적 인식은 조금씩 변해 왔다. 실제로 재판관 9명의 합헌·위헌 의견은 1996년 7대 2에서 2010년 5대 4로 바뀌었다. 올해 헌재에서 세 번째 판단을 하게 된다면 결과를 예단하기 쉽지 않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사형제가 위헌인지 여부를 가를 핵심 쟁점은 크게 3가지다. △생명권 침해 △범죄 예방 △응보(應報·범죄에 대한 응당한 보복) 처벌에 대한 재판관 9명의 생각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재판관들 사이에서도 치열한 논쟁이 예상된다.
헌재는 1996년 11월 사형제를 합헌으로 판단하며 그 근거로 '합당한 응보의 처벌'을 내세웠다. 살인 및 강간미수 등 혐의로 1·2심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정석범이 사형제도를 규정한 형법 41조와 250조에 대해 제기한 헌법소원 사건에서 재판관 9명 중 7명이 합헌 의견을 냈다. "사형은 죽음에 대한 인간의 본능적 공포심과 범죄에 대한 응보 욕구가 서로 맞물려 고안된 필요악"이라는 게 다수 의견이었다. 헌재는 사형제가 헌법상 비례 원칙에 반하지 않고, 형법 41조에 적시된 형벌의 한 종류인 만큼, 헌법 질서에도 반하지 않는다고 봤다.
소수 의견도 있었다. 김진우·조승형 재판관은 사형제가 생명권을 침해하는 성격이 크다는 데에 무게를 뒀다. 이들은 "사형제로 달성하려는 목적인 범인의 영구적 격리는 무기징역에 의해서도 달성될 수 있다"며 "사형은 범죄자 생명을 박탈하는 것이므로 형벌의 목적 중 하나인 개선 가능성을 포기하므로 정당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위헌 의견을 냈다. 특히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해 필요한 경우에 한해 제한할 수 있어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 내용은 침해할 수 없다'는 헌법 제37조 2항의 단서 조항을 위헌 의견의 근거로 내세웠다.
헌재는 2010년 2월에도 재차 사형제가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봤다. 다만 재판관 의견은 5(합헌)대 4(위헌)로 팽팽했다. 위헌으로 결론 나려면 재판관 9명 중 6명 이상이 위헌 의견을 제시해야 한다. 재판관 2명이 판단을 달리했다면 사형제는 역사 속으로 묻힐 뻔했다.
다수 재판관들은 사형제가 범죄 예방 측면에서 어떤 효과를 낼지에 대해 새로운 의견을 제시했다. 합헌 의견을 낸 이강국·이공현·민형기·이동흡·송두환 재판관은 "사형제로 달성되는 범죄 예방을 통한 무고한 국민의 생명 보호 등 중대한 공익 보호, 그리고 정의 실현 및 사회 방위라는 공익은 극악한 범죄를 저지른 자의 생명권이라는 사익보다 결코 작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사형제가 인간의 공포 본능을 이용한 궁극의 형벌로 범죄 예방에 효과가 있다고 본 것이다.
반면 조대현·김희옥·김종대·목영준 재판관은 "사형제를 통해 범죄 예방의 목적이 달성되는지 불확실하다"고 선을 그었다. "무기징역이나 종신형으로도 범죄자를 격리시켜 재범을 예방할 수 있다"는 게 재판관 4명의 판단이었다. 조 재판관 등은 우리나라가 1997년 12월 30일을 마지막으로 사형집행을 하지 않아 '실질적 사형 폐지 국가'로 분류된 만큼, 형벌로서 사형의 실효성이 상실됐다는 점도 강조했다.
법조계에선 헌재가 세 번째 헌법소원 심판에선 앞선 두 차례와는 다른 결론을 내릴 수도 있다고 조심스레 전망한다. 첫 판단 이후 27년, 두 번째 판단 이후 13년이 흐르는 사이 사형제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조금씩 달라졌기 때문이다.
헌재 내에서 진보 성향 재판관이 다수를 차지하는 점도 변수가 될 수 있다. 헌재 재판관 인사청문회 당시 사형제 폐지나 위헌 가능성을 언급한 재판관은 9명 중 6명으로 위헌 정족수와 일치한다. 인사청문회에서 유남석·이은애·문형배·이미선 재판관은 사형제 폐지에 비교적 긍정적 입장을 밝혔다. 이영진 재판관은 "우리나라는 1997년부터 사형 집행을 안 해서 사실상 사형 폐지국으로 분류된다"며 "찬반 의견 모두 나름 타당한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입법 정책적으로 사회적 합의를 모아서 (존폐 결정을)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정정미 재판관 역시 “국가가 국민의 생명을 빼앗을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보면 사형 폐지론 쪽으로 생각이 좀 기운다”고 답했다.
김기영 재판관은 “확실하게 결론을 못 냈다”며 유보적 입장을 보였고, 김형두 재판관 인사청문회에선 관련 질의가 없었다. 이종석 재판관은 “사형제 폐지 논의에서 제일 중요한 흉악범죄 발생을 막는 위하력(잠재 범죄인에 대해 무거운 형벌 등을 통해 범죄를 예방하는 힘)이 있는지 실제 검증했으면 좋겠다”며 “국민은 흉악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극형인 사형까지 생각하기 때문에 국민 감정도 사형제 폐지에 중요한 고려 대상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 다시 쓰는 사형제 리포트
<1> 죄와 벌, 그리고 59명의 사형수
<2> 사형제 폐지? 논쟁의 끝은
<3> 두 번의 합헌, 세 번째 결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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