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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크로법 전과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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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인종분리 차별의 상징어가 된 짐 크로(Jim Crow)는 19세기 미국 유랑 배우 토머스 다트머스 라이스(Thomas Dartmouth Rice·1808~1860)가 1828년 처음 선봬 큰 인기를 끈 흑인 광대쇼 ‘점프 짐 크로(Jump Jim Crow)’에서 유래했다. 그는 장애인 흑인 노예로 분장한 채 우스꽝스러운 춤과 노래로 노예제 시대의 백인들을 웃겼다. 남북전쟁 이후의 남부 주들은 흑백 분리차별법을 잇달아 제정하며, 흑인의 상징으로 ‘짐 크로’를 환기했다. 짐 크로법은 ‘재건시대’가 끝나는 1876년부터 ‘시민권법’이 제정된 1964년까지 약 90년간 지속됐다.
짐 크로 시대는 재건시대 흑인들의 약진에 대한 백인들의 불안이 반영된 거였다. 1863년 노예해방 선언과 이듬해 수정헌법 13조(노예제 폐지)로 시작된 미국 재건시대는 내전 상처를 극복하자는 취지로 붙인 이름이지만, 거기에는 핍박과 굴욕의 세월을 견딘 해방 노예들의 인권과 참정권 신장도 포함됐다. 흑인들은 교육받고, 취업하고, 공공시설을 이용하고, 참정권을 행사했다. 1867년 루이지애나 주지사에 의해 세인트 마틴빌 시장에 임명된 마틴 베이커 이래 약 10년간 6명의 흑인 시장도 탄생했다. 그 변화에 따른 백인들의 법적 방패가 짐 크로법이다.
1973년 6월 3일, 만 38세 흑인 여성 도리스 데이비스(Doris A. Davis)가 캘리포니아 콤프턴(Compton) 시장에 당선됐다. 흑인 여성 최초로 인구 7만8,611명(1970년 기준)의 LA 근교 주요도시 시장이 된 거였다. 교사 출신인 그는 1965년 만 30세에 첫 흑인 시의원이 된 뒤 3선 했고, 2차례 시 서기도 지냈다.
근년 미국 흑인 여성은 총인구의 약 14%. 2000년 이후 24명의 흑인 여성이 시카고 애틀랜타 샌프란시스코 등 인구 50만 명 이상 주요 도시의 시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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