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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공군의 인내심은 바닥났다… 독무대 기회 잡은 한국 T-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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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와 남중국해 등 주요국 전략자산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현장의 다양한 에피소드를 흥미진진하게 전달해드립니다. 이일우 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이 격주 화요일 풍성한 무기의 세계로 안내합니다.
요원지화(爎原之火).
최근 한국 방위산업의 세계 시장 석권을 사자성어로 표현했을 때 이보다 더 적합한 말은 없는 것 같다. 벌판의 불이 무서운 형세로 타는 모습. 어떤 일이 막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게 퍼져 나가는 것을 뜻하는 말로 최근 K방산, 특히 항공기 분야는 여러 호재가 쏟아지며 이 불길이 더욱 커지는 모양새다.
우리나라는 최근 폴란드와 말레이시아에 FA-50 블록 20 모델을 판매하며 전투기 수출국 반열에 올랐지만, 두 나라 수출 물량을 다 합쳐도 66대에 불과해 세계 군용기 시장 판도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하는 듯했다. 그런데 최근 미국에서 수백 대 단위, 어쩌면 1,000대가 넘는 ‘골든 이글’을 구매할 움직임이 포착됐다. 사실 우리나라의 ‘미국 잭팟의 꿈’은 2018년 미국의 T-X 프로그램에서 보잉-사브 연합이 승리를 거머쥐면서 산산조각 났었다.
당시 보잉-사브 연합은 197억 달러의 예산으로 고등훈련기 351대를 도입하는 사업에 ‘파격’을 넘어 ‘충격’적인 가격을 제시하며 우선협상대상자 자리를 꿰찼다. 록히드마틴-한국항공우주(KAI) 연합은 T-50A를 내세워 351대 납품에 160억 달러의 조건을 제시했는데, 보잉-사브는 92억 달러의 비용으로 미 공군 요구량보다 훨씬 많은 475대를 납품하고 덤으로 120대의 시뮬레이터까지 제공하겠다는 입찰서를 냈다. 주계약자인 보잉 측은 경쟁사보다 압도적으로 싼 가격에 훈련기를 제공할 수 있는 비결로 ‘4차 산업혁명’을 이야기했다. 항공기 개발 과정에서 많은 비용이 소요되는 각종 실험들을 최첨단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대체하고, 주요 부품을 3D 프린터로 찍어내 가히 혁명적인 비용 절감을 이뤄냈다는 것이 업체의 주장이었다. 보잉은 이러한 첨단 기술로 제작된 T-7A ‘레드호크’를 미 공군 훈련기로 납품하고, 이를 기반으로 무장형과 경전투기 모델을 개발해 세계 훈련기 시장과 경전투기 시장을 석권할 것이라고 자신만만하게 선언했다.
2018년 가을, 보잉의 야심 찬 선언으로부터 5년이 지났지만, T-7A는 아직도 ‘개발 중’이다. 진작에 개발이 완료돼 올해부터는 양산이 시작됐어야 했고, 2024년 초기작전운용능력(IOC)을 획득해야 했지만, 연이어 중대결함이 발견되면서 양산 결정이 지연되고 있다. T-7A가 대량 생산돼 진작 대체했어야 할 노후 기체인 T-38은 1961년부터 1972년 사이에 생산된 항공기다. 우리나라에서도 노후화가 극심해 잦은 추락 사고를 내다가 퇴역한 F-5A/B ‘프리덤 파이터’의 원형으로 F-5보다 훨씬 이전에 생산된 항공기를 미 공군은 아직도 사용 중이다.
항공기는 노후되면 매년 비행 가능 시간은 줄고 정비 시간이 급격히 늘어난다. 당연히 유지비도 폭등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지난 4월 말, 데이비드 얼빈 미 공군참모차장은 하원 군사위원회에 출석해 T-7A의 지연 때문에 매년 전투조종사 양성에 큰 지장이 발생하고 있고, 이로 인한 조종사 부족 문제가 심각하다고 보고했다. 얼빈 차장에 따르면 미 공군 조종사들은 비행 가능한 훈련기 가 부족해 짧게는 18개월에서 길게는 24개월을 기다려야 한다. 이러한 대기 기간 때문에 전투조종사 양성 기간이 4년에 육박하는 상황이 됐다. 노후 기체 비행에 따른 안전 비용으로 1,260만 달러라는 돈도 날리고 있다. 얼빈 차장의 하원 보고는 보잉이라는 특정 업체를 위해 공군이 더 이상 희생할 수 없다는 메시지였다.
미 공군이 T-7A를 성토한 직후, 미국의 감사원이라고 할 수 있는 회계감사원(GAO)도 보고서를 냈다. 이 보고서는 T-7A에서 불거진 각종 결함과 공군·업체의 대응 문제를 다뤘는데, 보고서의 결론은 업체가 현재 제시하고 있는 개발 완료 일정이 또 지연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었다. GAO 보고서에서 언급된 T-7A는 군용기로서는 대단히 치명적인 결함 2가지를 가지고 있었다. 모형 기체와 실물 기체를 이용해 실시했어야 했을 공기 역학 실험을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대체해 발생한 ‘윙 록(Wingrock)’과 사출좌석 결함이었다. 윙 록 결함은 항공기가 상승 또는 하강할 때 특정 각도에 도달하면 기체가 전복되거나 안정성을 잃고 요동치는 현상을 말한다. 높은 기동 성능이 요구되는 군용기에서 이 결함은 대단히 치명적이다. GAO는 보고서에서 “공군의 요구사항에는 높은 받음각에서 고기동이 가능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T-7A는 고기동 시 전복되거나 안정성을 상실할 가능성이 크다”며 T-7A가 군의 작전요구 성능을 충족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물론 보잉은 이 문제를 소프트웨어 개선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GAO는 공군 엔지니어들의 보고를 인용해 예정된 완료 일정보다 최소 2년 이상 지연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렇게 되면 T-7A의 개발완료 시기는 2025~2026년 이후로 미뤄지며, 양산도 2027~2028년으로 연기된다. 이미 T-38을 한계까지 굴리며 운용하고 있는 미 공군이 수용할 수 없는 일정이다.
GAO 보고서에서는 사출좌석 결함 문제도 지적됐다. 기존 사출 시스템에는 폭약이 과도하게 배치돼 비상탈출 레버를 당기면 캐노피 내부 압력이 폭증해 20%의 확률로 조종사가 뇌진탕을 입는 것으로 나타났다. T-7A의 개선된 사출 시스템은 폭약량을 줄였지만, 이 때문에 캐노피 유리가 완전히 파쇄되지 않아 그 파편에 조종사가 중상을 입는 것으로 나타났다. 뇌진탕과 파편상을 피하더라도 사출좌석의 로켓이 오작동을 일으켜 낙하산이 펴진 후에도 좌석을 가속시키는 문제도 지적됐다.
윙 록 문제 때문에 조종 안정성이 떨어져 추락 위험이 높은 기체인데, 추락했을 때 사출하더라도 사출 시스템 문제로 중상을 입거나 사망할 가능성이 높은 훈련기를 과연 누가 타려 할까. 보잉은 GAO 보고서 발표 직후 반박 자료를 냈지만, 미 국방부와 공군은 “본계약 체결 전 어떤 조건에서 양산을 수락할지 명확히 하라”는 GAO의 권고를 수용한다고 발표했다. 아울러 미 공군은 5대의 시제기 외에는 아직 단 1대의 T-7A도 발주하지 않았다는 말도 덧붙였다. 즉, T-7A가 T-X 사업에서 승리한 것은 맞지만 그것이 곧 양산 계약 체결을 의미하는 게 아니며, 미 공군이 요구하는 조건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 T-7A는 양산될 수 없다는 의미이다. 보잉은 이미 T-7A 개발 지연에 따른 추가 비용 때문에 11억4,000만 달러의 손실을 보고 있다. 2018년 써낸 계약서대로 92억 달러에 475대의 훈련기와 120대의 시뮬레이터를 납품할 경우, 11억4,000만 달러 손실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물론 GAO의 지적대로 결함 해결에는 앞으로 최소 2년이 더 소요될 것이기 때문에 이 손실 비용은 계속해 불어날 것이다.
이제 T-7A의 선택지는 두 가지다. 납기 지연과 성능 미달에 따라 ‘계약 위반’으로 미 공군에게 계약 해지를 통보받는 것이 하나이고, 두 번째는 보잉 스스로 사업을 포기하는 것이다. 어떤 선택지를 고르든 T-7A는 시장에서 사라질 것이고, 이제 서방제 고등훈련기 시장에 남는 것은 T-50과 M-346뿐이다. 다만 M-346은 그 기반 설계가 러시아의 YAK-130이어서 미 공군이 T-X 사업 때 가장 먼저 탈락시킨 모델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T-50의 독무대다. 현재 KAI는 록히드마틴과 함께 280~400대 규모의 미 공군 고등전술훈련기(ATT) 사업에 입찰하기 위해 T-50A의 개량형인 TF-50을 제안 중이다. ATT 사업은 T-7A가 퇴출될 경우 그 물량도 고스란히 흡수해 630~750대 규모까지 늘어날 수 있다. 여기에 미 해군의 고등훈련기 사업인 UJTS 사업 200~280대, 가상적기 사업인 TSA사업 64대 물량을 합치면 미군 물량만 1,100대에 육박하게 된다. 2023년 현재 시점에서 T-X와 ATT, UJTS와 TSA의 요구 성능을 모두 충족하는 기종은 지구상에 T-50 하나뿐이고, 미 공군과 해군이 T-50을 도입하면 ‘미군 제식’ 프리미엄이 붙어 각국이 앞다퉈 도입할 가능성이 높다. 이들 사업의 결과는 늦어도 내년 말까지는 모두 발표될 예정이다. 어쩌면 2023년이 ‘한국 표준 T-50’의 ‘글로벌 표준화’가 되는 원년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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