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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론 제재 뒤 한국에 손 내민 중국... K반도체 '줄타기' 아슬아슬

입력
2023.05.29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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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EC·IPEF 회의 개최…반도체·공급망 논의
중국, 회담 후 '반도체 협력 강화 합의' 주장

안덕근(오른쪽)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25일(현지시간) 미국 디트로이트 WBC호텔에서 미국, 일본, 중국, 캐나다 등 21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원국 통상 담당 장관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APEC 통상장관회의'에서 다자무역체제 강화, 지속가능‧포용적 성장을 위한 무역의 역할 강화에 대한 의제 등을 논의했다. 산업부 제공

안덕근(오른쪽)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25일(현지시간) 미국 디트로이트 WBC호텔에서 미국, 일본, 중국, 캐나다 등 21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원국 통상 담당 장관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APEC 통상장관회의'에서 다자무역체제 강화, 지속가능‧포용적 성장을 위한 무역의 역할 강화에 대한 의제 등을 논의했다. 산업부 제공


미국이 반도체 공급망 재편을 앞세워 중국을 향한 압박 강도를 높이자 중국은 한국에 반도체 협력을 강화하자며 손을 내밀었다. 전문가들은 미중의 줄다리기가 본격화하면서 두 나라 사이에서 어떤 전략을 택하느냐에 따라 한국 반도체 산업의 앞날이 좌우될 수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한국과 반도체 협력 강화"… 일방적으로 주장한 中

중국 상무부가 홈페이지에 공개한 안덕근(왼쪽)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과 왕원타오 중국 상무부장의 26일(현지시간) 회담 후 모습. 중국 상무부 홈페이지 캡처

중국 상무부가 홈페이지에 공개한 안덕근(왼쪽)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과 왕원타오 중국 상무부장의 26일(현지시간) 회담 후 모습. 중국 상무부 홈페이지 캡처


중국 상무부는 26일(현지시간)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과 왕원타오 중국 상무부장이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무역장관 회의에서 만나 회담한 뒤 두 나라가 반도체 산업 공급망에서 대화와 협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했다는 내용의 자료를 27일 알렸다. 발표문은 "양측은 산업 및 공급망의 안정성 유지와 양자, 지역 및 다자 협력 강화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는 데 중점을 뒀다"며 특히 반도체 분야를 강조하며 "양측은 반도체 산업망과 공급망 영역에서 대화와 협력을 강화하는 데 동의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산업부는 같은 날 회담 뒤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이 같은 내용을 언급하지 않았다. 산업부는 "안 본부장은 중국 측에 교역 원활화와 핵심 원자재·부품 수급 안정화를 위한 관심과 지원을 요청했다"며 "중국 내 우리 투자기업들의 예측 가능한 사업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협조를 당부했다"고만 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한국일보와 통화에서 "이번 회담은 '합의'나 '동의'를 목적으로 한 자리가 아닌 주무부처 관계 장관급 간 회의"라며 "공급망이나 반도체 관련 협력을 강화하는 등 구체적 내용은 다루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공급망 재편 과정 속 전략적 판단 중요성↑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27일(현지시간)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 장관회의에 자리하고 있다. 산업부 제공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27일(현지시간)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 장관회의에 자리하고 있다. 산업부 제공


중국과 한국의 엇박자는 왜 난 걸까. 강준영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장은 "중국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공장을 갖고 있는 한국과 공급망뿐 아니라 반도체 분야까지 협력하자는 뜻을 내비친 것"이라고 지적했다. 중국이 미국 메모리 반도체 회사 마이크론의 중국 내 제품 판매를 금지하고 미국 역시 수출 규제 등 대중 압박을 이어가는 상황에서 중국이 사실상 한국에 반도체 협력 강화 사인을 보낸 것이라는 것이다.

미국은 여전히 중국의 마이크론 제재를 비롯한 고강도 조치를 강도 높게 비판하고 있다.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부 장관은 27일(현지시간)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 장관급 회의 뒤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명백하게 그것(마이크론 제재)을 경제적 강압으로 본다"며 "우리는 그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며 성공할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한국과 한국 반도체 업계가 매우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미국이 일본, 네덜란드 등 국가들과 함께 중국 견제를 위한 공조를 강화하는 상황에서 한국이 반대 행보를 보이는 것은 위험하다는 분석이다.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도 "미국이 마이크론의 빈자리를 채우지 말라고 압박하는 상황에서 (이번 발표는) 한미 간 틈새를 만들 공산이 있어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중국은 대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 입장에서 여전히 최대 교역국 중 하나다. 조상현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미중 관계가 파괴적 긴장 관계까지 가진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미중과 전략적 대화 채널을 유지하면서 양극단적 시각은 지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블룸버그통신은 이날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한국 정부는 마이크론이 (중국 정부의) 제재로 상실한 중국 시장 지분을 한국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확보하도록 장려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삼성과 하이닉스는 이와 관련 확인된 바가 없다는 입장이다. 장영진 산업부 1차관은 22일 기자간담회에서 마이크론 제재에 관한 우리 반도체 기업의 대응과 관련 "정부가 관여할 사항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나주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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