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내는 기사
40여 년간 의료 봉사한 ‘히말라야의 슈바이처’ 강원희 선교사 소천
이미 가입된 회원입니다.
만 14세 이상만 회원으로 가입하실 수 있습니다.
네팔·방글라데시 등에서 40여 년간 의료 봉사를 한 강원희 선교사가 26일 오후 4시께 노환으로 소천(召天)했다. 향년 88세.
고인은 1934년 함경북도 성진에서 태어나 6ㆍ25전쟁 중이던 1ㆍ4 후퇴 때 남한으로 피란 내려와 전쟁의 비참함을 겪으며 평생 아픈 사람들을 위해 살겠다고 다짐했다.
고인은 세브란스 의대(현 연세대 의대)를 다니면서 슈바이처 전기를 읽고 감동을 받아 틈만 나면 무의촌 진료를 다녔다. 1961년 의대 졸업한 그는 1970년 강원도 간성ㆍ속초 등 무의촌에서 병원을 열었다. 병원에 환자가 넘치고 돈도 많이 벌었지만 고 한경직(1902~2000) 목사 권유로 1982년 49세에 선교사가 되려고 잘 되던 병원을 정리했다.
고등학교 1·2학년생 두 자녀를 둔 그가 늦깎이 선교사가 되려는 것을 부인이 극구 말리자 “내 인생을 하나님께 바치고 싶은데 생선에 비유하면 머리와 꼬리가 아니라 가장 좋은 가운데 토막을 바치고 싶다”고 설득했다.
고인은 1982년부터 네팔·방글라데시·스리랑카 등에서 40여 년간 의료 봉사 활동을 펼쳤다. 의료 선교 활동을 하면서 자신의 피를 중환자에게 수혈해 살리기도 했다. 고인은 “수술이 끝난 다음 환자가 쇼크에 빠졌는데 피가 준비가 안 돼 있었어요. 얼른 제 피를 뽑아서 맞춰 보니깐 환자와 맞아서 2병(400㏄)을 뽑아 줬다”고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퇴원한 환자의 집에 식료품을 사 들고 찾아가는 열정에 감동한 현지인들은 그를 ‘바제(네팔 말로 할아버지)’로 부르며 ‘히말라야의 슈바이처’로 칭송했다.
고인인 1999~2002년 경북 안동성소병원장을 맡았다가 병원 경영이 안정되자 병원장 자리를 내놓고 곧장 에티오피아로 떠나 7년간 그곳 오지에서 의료 봉사 활동을 펼쳤다.
이같은 공로로 고인은 보령의료봉사상(1990), 연세의학대상 봉사상(2000), 제24회 아산상 의료봉사상(2012), 연세를 빛낸 동문상(2012), 국민훈장 동백장(2014), 제17회 서재필 의학상(2020) 등을 받았다.
고인은 2011년 자전 에세이 ’히말라야의 슈바이처’에서 "하나님이 부르실 때까지 그렇게 섬기며 살면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하나님이 부르시는 장소가 한국일 수도 있고, 네팔일 수도 있다. 하나님이 나를 부르실 자리가 어디든 무슨 상관이겠는가. 언제 어디서라도 하나님이 부르시면 그 부르심을 따를 뿐이다. 살아도 천국이고 부르시면 정말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닌가”라고 했다. 같은 해 고인의 이야기를 담은 종교 다큐멘터리 영화 ‘소명 3-히말라야의 슈바이처’(감독 신현원)가 개봉됐다.
유족은 부인 최화순 씨와 1남 1녀(강근표ㆍ강은주 씨)가 있다. 며느리 이경혜·사위 김철수 씨. 빈소는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특2호실, 발인 29일 오전 7시. 장지는 강원 양양군 선영. (02)2227-7500
신고 사유를 선택해주세요.
작성하신 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로그인 한 후 이용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구독을 취소하시겠습니까?
해당 컨텐츠를 구독/취소 하실수 없습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