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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 양극화, 시험대 오른 외교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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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 출범 1주년에 맞춰 발표된 KBS 여론조사에서 국정운영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국민들은 외교정책을 가장 큰 이유(28.7%)로 들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국정운영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이유 중에서도 가장 높은 응답률(33.2%)을 기록한 분야가 바로 외교정책이었다는 사실이다. 과거 빈부 격차나 교육 격차처럼 사회경제적 문제를 다룰 때에 사용되던 양극화라는 분석틀이 외교정책에서도 낯설지 않게 되었다. 외교정책 당국자들은 적어도 두 가지 질문에 답해야 한다. 외교정책을 여론에 의지하는 것이 옳으냐 그르냐 하는 질문이 첫 번째이고, 여론을 고려한다면 어느 정도 수준에서 정책에 반영할 것인지가 두 번째 질문이다.
국제정치학자들 사이에는 외교정책과 여론에 대한 상반된 견해가 존재한다. 외교정책의 과정이 대중들에게 공개될수록 개인이나 특정 집단의 이익을 넘어 공공선이 실현될 것이라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개인의 이기심과 집단이익에 의해 여론에 기댄 외교정책이 국익 추구의 일관성을 해칠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외교정책에서 여론의 비중이 커질수록 어떤 결과가 초래될지에 대해서는 더 많은 사례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외교정책에서 여론의 영향력이 점점 커질 수밖에 없다는 가설은 기정사실이 되었다. 가장 큰 이유로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째, 민주주의 정치 참여의 형태가 투표와 정당 참여 등 전통적 형태에서 온라인 여론 형성과 팬덤 정치 등 비전통적 방식으로 변화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온라인 소통과 영어교육열에서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한국에서는 외교정책이 정쟁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더욱 비일비재하다. 광우병 파동, 효순·미선 사건, 사드 배치 등 외교적 해결이 시급한 사안을 놓고 나라가 두 쪽 난 듯 싸우는 일이 한국 정치에서는 너무도 익숙한 풍경이 되었다. 후쿠시마 오염수 처리를 둘러싼 외교 현안은 이제 한일 간 문제가 아니라 국내 정쟁으로 비화했다.
둘째, 세계화의 시대가 저물고 경제 안전보장과 기술동맹 구축이 외교정책의 목표로 부상하면서 국내 이해관계자가 늘어나는 동시에 다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사문제나 고용정책과 관련한 국내 압력단체들의 입장은 정책 담당자들이 무시할 수 없는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그동안 외교정책에 대한 이익단체들은 존재 여부조차 불분명했다. 그러나 이제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반도체 외교의 결과에 따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가 출렁거리면 외교정책에 대한 여론도 출렁거릴 것이다.
여론의 속성이 불안정하고 때로는 비합리적이어서 일관성이 없다는 지적도 무시해서는 안 된다. 문재인 정부 1주년 KBS 여론조사에서 국민들은 대선 공약 중 남북관계 및 외교정책(64.5%)을 가장 잘한 분야로 꼽았다. 문 전 대통령이 15만 평양시민 앞에서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역설할 때 대북정책 지지여론은 최고점을 찍었을 것이다. 그러나 5년 후 여론조사에서 '윤석열 정부가 북한에 대해 잘못 대응하고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2.7%(KBS)에 불과했다. 허망한 일이다. 북한은 북한대로 국내 여론의 추이를 적절히 활용한다. 영변 냉각탑을 무너뜨리고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해 때로는 헛된 기대감을 증폭시키고 때로는 막연한 불안감을 자극한다. 외교정책 수립에서 여론은 일종의 기회비용으로 인식될 수 있다. 문제는 기회비용을 늘리느냐 줄이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제대로 지출하느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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