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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요커의 '아침밥'에서 '유행 빵'으로...베이글의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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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재 음식평론가가 격주 토요일 흥미진진한 역사 속 식사 이야기를 통해 ‘식’의 역사(食史)를 새로 씁니다.
최근 뉴욕타임스는 한 베이글 기술자의 일상을 소개했다. 지면은 물론 유튜브 비디오로도 공개된 콘텐츠의 주인공은 셀레스티노 가르시아. 새벽 2시 45분 브루클린의 집을 나서면서 시작되는 그의 베이글 여정은 세 군데의 매장을 거쳐 15시간 계속된다. 말하자면 ‘쓰리 잡’을 뛰며 베이글을 만든다.
우리네식으로 표현하자면 베이글 ‘달인’이라 할 수 있는 그의 손놀림은 빠르고 또 정확하다. 믹서에 돌려 만든 반죽의 큰 덩어리를 가래떡처럼 길게 뽑은 뒤 정확하게 베이글 한 개 분량씩을 떼어내 손바닥으로 굴려 고리 모양으로 말아낸다. 모든 베이글의 무게와 생김새가 같은 가운데 1분에 무려 17개를 빚어내는 광경이 비디오에 담겨 있다.
요즘 베이글에 부쩍 관심이 쏠려 영상이며 기사들을 찾아보는데 참으로 보석 같은 콘텐츠였다. 요즘 미국의 베이글은 다시 손으로 빚어 만드는구나. 콘텐츠가 나간 뒤 유튜브 댓글로 주 6일 세 군데의 가게에서 일하는 셀레스티노의 건강에 대한 우려가 표출되자 고용주가 댓글을 달았다. “요즘 셀레스티노 같은 베이글 기술자는 귀하고, 따라서 보상을 잘 받는다. 정확한 연봉을 밝힐 수는 없지만 우리는 10만 달러 단위의 연봉을 지급한다. 그의 노동 여건 또한 늘 최선으로 보장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베이글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있을까? 요즘 한국에서 베이글이 부쩍 유행을 타고 있다. 문도 열기 전에 줄을 서야 간신히 먹을까 말까 한 매장도 있다. 베이글이 유행이라니 사실은 신기한 일이다. 기본 가운데 기본인 빵이고, 기억을 더듬어 보면 나는 1998년부터 국내에서 베이글을 먹었다. 그렇게 베이글이 유행인 가운데 신기한 점은, 세계적으로 정형화된 문법이 망가져 있다는 점이다. 차차 살펴볼 여러 요인 덕분에 베이글은 쫄깃해야 되는데 물렁한 빵이 같은 이름으로 팔리고 있다.
역시 뉴욕에서 이민자들에 의해 자리를 잡고 세계 음식이 된 피자처럼, 베이글 또한 세월에 걸쳐 정형화된 문법을 엄격히 따지는 음식이다. 미국의 음식 평론가 에드 르바인은 베이글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베이글이란 단순하고 우아한 재료로 만든 둥근 빵이다. 고(高)글루텐 밀가루, 소금, 물, 효모와 맥아만으로 만든다. 반죽은 2차 발효 후 한 번 삶은 뒤 굽는데, 덕분에 진한 캐러멜색이 돌아야 한다. 달리 말해 색이 연하거나 노란색을 띠면 안 된다는 말이다. 베이글은 한 개에 114g(4온스)이거나 그 이하여야 하며 베어 물면 파삭, 하고 껍질이 갈라지는 소리가 나야 한다. 베이글은 따뜻하게, 그리고 웬만하면 구워낸 지 4, 5시간 안에 먹어야 한다. 이런 특성이 없는 빵은 베이글이 아니다.”
“이런 특성이 없는 빵은 베이글이 아니다”라니 누군가는 지나치게 단정적이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우리의 된장과 고추장을 생각해 보자. 우리는 어떤 것이 된장 혹은 고추장이고 아닌지에 대한 기준을 확실하게 가지고 있다. 음식의 문법은 역사 속에서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굳어지곤 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걸 대체로 전통이라 규정한다.
베이글의 역사는 장구하다. 크게 4부로 나눠 생각할 수 있는 가운데 넉넉히 600년은 거슬러 올라가며 발원지는 폴란드이다. BBC의 편집자를 역임한 마리아 발린스카는 베이글의 기원이라 할 수 있는 1부의 가능성을 두 갈래로 나눠 제안한다. 첫 번째는 14세기 독일에서 폴란드로 이민이 발생하면서 프레츨이 유입되었을 가능성이다. 프레츨이 베이글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오바르자넥(obwarzanek)이 됐으며 이를 야드비가 여왕(1373 또는 1374~1399)가 즐겨 먹어 자리를 잡았다는 설이다.
또 다른 시나리오는 17세기 오스트리아로 거슬러 올라간다. 1683년 비엔나의 제빵사가 폴란드의 왕 얀 3세 소비엔스키(1629~1696)를 경배하기 위해 구웠다는 설이다. 승마를 좋아하는 왕을 위해 빵의 모양을 안장에서 발을 걸치는 고리, 즉 등자(독일어로 보이겔 beugel) 모양으로 둥글게 잡은 것이 오늘날까지 전해 내려온다는 설이다. 크루아상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빵의 발원지인 오스트리아이기에 나름 설득력이 있다.
어떤 설이 진짜이든 베이글의 원형이 유입된 폴란드에는 유대인들도 많이 살고 있었다. 유럽 어느 나라와 지역보다 차별이 덜했었던 폴란드였기에 정착해 살기 좋았던 가운데, 유대인들은 생계 수단으로 베이글을 구워서 팔기 시작했다. 그 결과 폴란드에서 베이글은 점차 유대인의 전통 음식으로 각인이 될 수 있었다.
유대인의 베이글 생산은 사실 정치적 의사 결정의 산물이었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이미 13세기, 정확하게는 1264년부터 칙령에 의해 유대인도 기독교인처럼 자유로이 음식을 만들어 팔 수 있게 된 결과였다. 이 과정에서 기독교인은 유대인들이 음식에 독을 섞을까 봐 우려했으니, 유대인들은 반죽을 삶아 만드는 빵을 팔아야만 했다. 말하자면 일종의 공인된 살균 절차를 밟는 셈이었다. 겉을 삶아서 미리 익히면 구울 때 속이 많이 부풀지 못하게 되므로 베이글은 특유의 쫄깃함을 품게 된다. 말하자면 베이글의 쫄깃함은 전통이다.
베이글의 역사는 20세기 초반 미국에서 2부를 맞는다. 폴란드의 재정이 어려워지자 유대인들은 대거 미국 이민에 나선다. 맨해튼을 비롯한 뉴욕 인근 지역은 이민자들의 관문이었으니, 유대인들은 자리를 잡고 베이글을 구워 팔기 시작했다. 덕분에 피자가 미국에 자리를 잡듯 베이글도 나름의 입지를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제빵이 기본적으로 그렇기는 하지만 베이글은 상당히 노동집약적인 빵이다. 글루텐 함유량이 높은 밀가루를 쓰고 또한 밀가루 대비 물의 비율이 낮다. 더군다나 계란 등의 부재료도 쓰지 않아 반죽 자체가 굉장히 뻣뻣하고 질기다. 따라서 반죽을 치대고 모양을 빚는 데 힘이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20세기 초에는 이 모든 과정을 손으로 했으니 제빵사들의 기술은 중요한 무형 자산이었다. 그리하여 뉴욕의 베이글 제빵사들은 별도의 노조를 결성할 정도로 조직화가 되기도 했다.
이런 베이글의 세계에 가히 코페르니쿠스적이라고 할 수 있는 지각변동이 일어난 건 1960년대로, 역사로 치면 3부이다. 특유의 고리 모양을 훨씬 쉽고 원활하고 빠르게 잡아줄 수 있는 기계가 도입되는 한편, 냉동기술의 발달로 완제품 베이글의 유통이 가능해진 것이다. 역시 폴란드계 유대인인 해리 렌더가 주도한 변화는 베이글의 공업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베이글 전문 빵집 및 제빵 기술자들의 입지가 약해지는 한편, 만드는 방식도 달라졌다. 장작불 오븐은 철제로, 반죽은 삶지 않고 수증기를 쐬어 익히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베이글의 수준이 전반적으로 떨어지는 계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뉴욕을 넘어 세계적인 음식으로 자리를 잡은 베이글은 이제 다시 과거의 방식으로 일부 회기하고 있다. 4부의 마지막으로 현재진행형이다. 손으로 빚은 베이글이 멕시코 이민자 셀레스티노가 ‘쓰리 잡’을 뛸 만큼 수요를 띠게 된 것이다. 음식 전반에서 세를 넓혀 나가고 있는 ‘아티장(artisan)’, 즉 장인정신을 불어넣으려는 움직임이 베이글에도 영향을 미친 결과이다. 물론 이는 손으로 빚은 베이글이 기계로 찍어낸 것보다 질감의 면에서 더 낫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기에 가능한 변화이다.
이처럼 역사를 짚어보며 요즘 한국의 베이글에 대해 또다시 생각해 본다. 길게는 600년까지 세월을 헤아릴 수 있는 빵이, 그것도 원래의 형식으로서 이미 이삼십 년 동안 소비되었던 것이 어떤 연유로 갑자기 유행을 타게 되는 것일까? 또한 그렇게 유행을 타면서 세월 속에서 축적된 정형을 버리는 결과를 낳는다면 그것은 개선은 확실히 아니고, 개악에 가깝지 않을까? 그리고 그것이 개악이라면 우리는 한편 타국의 역사와 문화를 존중하지 않는 건 아닐까?
*사족: 사실 베이글이 뉴욕의 전유물만은 아니다. 캐나다의 몬트리올에도 독자적인 베이글의 세계가 있는데 뉴욕의 것과는 사뭇 다르다. 계란과 설탕을 써 좀 더 부드럽고 단맛이 두드러진다. 반드시 장작불 오븐에 굽는 것 또한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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