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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서울살이 접고 삶이 확 폈어요" K바이오 1번지 사람들은 느림을 즐긴다

입력
2023.07.15 04:30
수정
2023.07.15 15:1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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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송도 '단일 생활 문화권' 자리매김
쇼핑·공원 등 편의시설 인프라 잘 갖춰
바이오기업 커플·국제캠퍼스 학생 등
출퇴근 전쟁 없고 저녁 있는 삶에 만족
미완성 젊음의 도시는 끊임없이 진화 중

5월 18일 인천 연수구 송도 현대프리미엄아울렛 야외 분수대에서 물놀이를 하는 어린이들. 송도=양윤선 인턴기자

5월 18일 인천 연수구 송도 현대프리미엄아울렛 야외 분수대에서 물놀이를 하는 어린이들. 송도=양윤선 인턴기자


"CT-P17 드디어 나왔더라."
"그래? 앞으로 SB5랑 치열하겠네."


드라마 속 국가정보원 요원이나 영화 시리즈 007 주인공의 대화가 아니다. 이 암호 같은 알파벳과 숫자의 조합은 바이오 기업이 신약 개발 프로젝트를 외부에 공개하기 전 부르는 이름이다. CT-P17은 5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허가를 받은 셀트리온의 바이오시밀러(복제약) 프로젝트를, SB5는 삼성바이오에피스가 앞서 FDA로부터 허가 받은 프로젝트를 가리킨다. 둘 다 전 세계 의약품 시장 1위를 지켜온 미 애브비의 자가면역치료제 휴미라를 복제했는데 두 약이 미국 시장에서 경쟁하게 될 거라는 얘기다. 국내에서 가장 많은 바이오 기업이 터를 잡고 있는 인천시 연수구 송도에서 이런 대화를 듣는 것은 어렵지 않다. 14일 송도의 한 직장인은 "카페에서 이런 대화를 들을 때 '아, 여기가 바이오 클러스터였지' 하고 실감한다"고 전했다.

송도에서만 자주 들을 수 있는 줄임말들도 있는데 송현아, 센팍, 트스가 대표적이다. ①송현아는 송도 현대프리미엄아울렛, ②센팍은 송도센트럴파크, ③트스는 트리플스트리트몰을 뜻한다. 이들 모두 번화가를 가리킨다는 점을 감안하면 기업과 인력이 처음 모이기 시작한 10년 전과 눈에 띄게 달라졌다. 통근이나 통학, 쇼핑은 물론 여가 시간을 보낼 공원과 편의시설 등 모든 인프라가 잘 갖춰졌다. 굳이 서울에 가지 않아도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하나의 생활권이 된 것이다.

송도에서 만난 이들은 가장 큰 장점으로 '느리게 살기'를 꼽았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서울살이에 시달리던 이들은 인구 밀도가 낮은 송도에 온 뒤 만원 버스에서 출퇴근 전쟁을 치르지 않고 교통 체증이 없어 어디든 10~30분이면 갈 수 있는 이곳 생활에 만족한다고 입을 모았다. 신도시의 쾌적함에 더해 젊은 세대가 모여 형성된 문화는 덤이다.

8일 트스에서 흰색 티셔츠를 맞춰 입고 산책을 하던 세 식구도 한적함에 반해 5년 전 이곳으로 이사했다고 한다. A(37)씨는 "직장은 인근 지역인데 한적한 송도가 아이 키우기 좋을 것 같아 이사 왔다"고 말했다. 근처 벤치에서 커피 한 잔을 들고 남편과 햇살을 즐기던 B(56·여)씨도 "시골은 좀 그렇고 도심이면서 한적한 곳을 찾아 이사왔다"며 "서울에 비해 조용하고 (도시 자체에) 여유가 있는 게 가장 좋다"고 말했다. B씨 남편이 다소 긴 출퇴근 시간을 감수하고도 이곳을 택한 이유다.

치열한 수험 생활을 마치고 대학에 입학한 새내기들도 차분한 이곳 분위기를 마음에 들어 했다. 연세대 1학년 과정을 국제캠퍼스에서 다니는 C(20·여)씨는 "송도는 서울의 대학가와 달리 매우 조용하다"며 "도시와 시골을 반반 합친 느낌"이라고 설명했다. 전동 킥보드를 타고 넓게 뻗은 송도 거리를 지나던 D(20)씨도 "도심보다는 탁 트이고 한적한 걸 더 좋아하는데 평화롭다"고 말했다.



어느 30대 직장인의 송도살이 일주일

인천 지하철 1호선 캠퍼스타운역 2번 출구 인근 상가 단지. 송도=양윤선 인턴기자

인천 지하철 1호선 캠퍼스타운역 2번 출구 인근 상가 단지. 송도=양윤선 인턴기자


대체 서울살이와 어떻게 다르길래 이들은 입을 모아 송도살이를 극찬하는 걸까. 4년째 송도에 살며 바이오 기업으로 출퇴근하는 30대 직장인 E씨의 일주일을 들여다봤다.


5월 22일(월)

오전 7시 30분. 기분 좋게 눈을 떴다. 아침을 먹고 출근 준비를 한 뒤 50분에 집을 나선다. 그가 다니는 회사 사무실은 차로 6분 거리. 주말을 꽉 채워 보내고도 잠을 푹 잘 수 있는 이유다. 출퇴근 시간이 짧고 붐비는 '지옥철'을 타지 않아도 돼 월요병도 덜하다. 월요일은 대게 바쁘게 지나간다. 오후 5시 30분 회사를 나와 피트니스센터로 향한다. 오후 6시부터는 온전히 혼자만을 위한 시간이다.


23일(화)

외부 미팅이 있어 낮에는 오랜만에 서울에 다녀왔다. 남편 직장도 송도에 있어 서울에 갈 일이 많지 않다. 오후 8시. 평소보다 퇴근이 늦었지만, 넉넉잡아 10분이면 집에 닿을 수 있으니 야근을 해도 부담이 적다. 회사 내 피트니스센터에서 운동을 마친 남편과 집 근처 식당에서 만났다. 근처 공원에서 산책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24일(수)

캠타(송도 캠퍼스타운역) 근처에서 영어회화 모임이 있는 날. 젊은 직원이 많아 20, 30대들로 구성된 소모임을 찾는 건 어렵지 않다. 캠타에 가면 평균 연령이 더 낮아진다. 연세대 국제캠퍼스를 비롯해 여러 해외대학의 캠퍼스가 모여 있어 왁자지껄한 대학가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25일(목)

점심에 직장 동료와 송도 맛집에 다녀왔다. 점심시간은 여느 회사와 같이 한 시간이지만 차로 10분이면 시내 맛집에 닿는다. 오랜만에 만나니 할 얘기가 많았다. 서울에선 점심 먹고 나면 자리가 있는 카페를 찾느라 시간을 꽤나 써야 하지만 여기선 빈자리가 있는 카페를 쉽게 들어갈 수 있다.


26일(금)

금요일 오후 6시. 정시 퇴근 후 매직세팅펌을 예약해 둔 미용실로 향한다. 최소 네 시간은 걸리는 미용 시술을 받기 위해 소중한 주말을 낭비하지 않고 평일을 이용할 수 있다. 이제 송도에도 뷰티숍이 많이 생겨서 굳이 서울까지 갈 필요가 없다.


27, 28일(토, 일)

서울에서 가족이 놀러 왔다. 대형 쇼핑몰 트스엔 서울에 있는 웬만한 유명 맛집과 프랜차이즈 식당, 카페가 들어와 있다. 식사를 마친 뒤 센팍에 사는 사슴을 구경하고 공원 안 인공호수에 가서 투명 카누와 문보트를 타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드론쇼가 열리는 다음 달 가족들을 다시 초대하기로 했다.



"송도 커플·사내 부부가 많아요"

인천 송도국제도시의 삼성바이오로직스 3공장 전경. 삼성바이오로직스 제공

인천 송도국제도시의 삼성바이오로직스 3공장 전경. 삼성바이오로직스 제공


E씨가 이처럼 여유로운 송도라이프를 누릴 수 있는 건 부부가 모두 송도에서 직장을 다니는 덕분이다. E씨와 남편은 2020년 지인의 소개로 만났다. 집과 회사가 가깝고 무엇보다 출퇴근 전쟁을 벌이지 않으니 퇴근 후 '저녁 있는 삶'을 살게 됐고 집 주변 공원은 단골 데이트 장소였다.

또 다른 30대 직장인 F씨도 배우자를 송도에서 만났다. 길을 가다 부딪히는 사람들은 죄다 생명공학 또는 화학 등 이과계열 전공자들이라고 우스개를 할 정도로 바이오 인력이 많고 한 다리만 건너면 대학 선후배로 연결되니 미팅이 활발하단다. F씨는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만 봐도 송도서 만나 가정을 꾸린 부부가 다섯 커플은 넘는다"며 "나이도 비슷하고 하는 일도 같은 경우가 많아 이웃끼리 교류도 많다"라고 전했다.



서울 갈 일이 없어요

인천 연수구 송도 복합쇼핑몰 트리플스트리트에 열린 송도시장. 송도=양윤선 인턴기자

인천 연수구 송도 복합쇼핑몰 트리플스트리트에 열린 송도시장. 송도=양윤선 인턴기자


송도 주민들은 주거와 일자리, 인프라 삼박자를 갖춘 동네에서 생활에 부족함을 크게 느끼지 못한다고 말한다. 송도에서 배우자를 만나 결혼한 사내부부 G(35)씨는 "서울에 다녀온 지 한 달 넘었다"며 "지역 동호회가 많아 퇴근 후와 주말 시간을 보낼 방법이 많다"고 전했다. 실제 그가 다니는 회사엔 배드민턴과 테니스, 자전거 등 여러 동호회가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

H씨도 사는 곳을 바꾼 그 선택이 자신의 삶을 이 정도로 바꿔놓을 줄 몰랐다고 한다. 처음엔 왕복 네 시간을 차에서 보내며 서울에서 출퇴근하던 그는 얼마 뒤 회사 기숙사에 살아 보고 신세계를 경험했다. H씨는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직장을 다닌다는 건 평일에도 여가를 즐길 수 있다는 뜻"이라며 "갑자기 시간이 많아지니 처음엔 남는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가 고민이었다"고 말했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다. 도시가 발전하고 살기 좋아지니 주거비가 올랐다. 7년 차 직장인 I씨는 최근 송도에서 전셋집을 알아보다 독립을 미루기로 했다. 입사 초인 2017년만 해도 33㎡(10평) 크기 원룸을 얻으려면 전세는 1억5,000만 원, 월세는 60만 원 수준이었는데 3월 알아보니 이 시세가 전세 1억8,000만 원, 월세 75만 원으로 뛰었다고 했다. 그는 "이 동네가 하나의 생활권으로 자리를 잡고 주거 수요도 많아졌다는 방증"이라며 "예전엔 약속이 있어도 송도에서 갈 곳이 마땅치 않았지만 지금은 번화가가 됐다"고 설명했다.



젊고 북적이는 신도시… 차 없으면 이동 불편

인천 연수구 송도동 연세대 국제캠퍼스 전경. 송도=양윤선 인턴기자

인천 연수구 송도동 연세대 국제캠퍼스 전경. 송도=양윤선 인턴기자


대학생들이 많은 캠타역(캠퍼스타운역)은 더욱 활기가 넘친다. 이날 캠타역 2번 출구 방향 번화가로 나서자 카페와 PC방, 미용실, 헬스장 등 생활에 필요한 거의 모든 상점이 다 있었다. 대학교 1학기 기말고사 기간인 이날은 모자를 쓰거나 편안한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다니는 학생들이 여럿 보였다.

송도 시내에서 대중교통의 배차 간격이 크다는 점은 아쉬운 요소다. C씨는 "대중교통이 적어서 버스를 타는 것보다 걸어가는 게 더 빠를 때도 있다"며 "그래서 킥보드나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엄청 많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여름에 걸어가면 더운데 이거 타면 시원하기도 하고요"라고 덧붙였다. 실제 이날 찾은 송도에서 마주한 모든 길목과 공원, 횡단보도 옆 길가엔 킥보드와 자전거가 세워져 있었다. 횡단보도엔 자전거 도로가 그려져 있다.

아직도 발전하고 있는 미완성 도시지만 불과 몇 년 전과 비교해도 천지개벽했다는 게 이 도시의 옛 모습을 아는 이들의 증언이다. 2017년 연세대에 입학해 국제캠퍼스에 살았던 J(25)씨는 "원래는 과잠(학과 점퍼) 입은 사람밖에 안 보였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져서 놀랐다"고 말했다. 이날 오랜만에 송도를 찾았다는 그는 "6년 전엔 공터에 공사장 푯말만 꽂혀 있어서 지름길처럼 공터를 지나다니고 상점도 많이 비어 있었다"며 "이제는 식당이 아주 다양해졌고 아이들과 외국인들이 눈에 띄게 늘어서 유동 인구가 많아졌다는 걸 실감한다"고도 했다.

송도= 박지연 기자
송도= 양윤선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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